사탄의 도덕들 사이에서: 호치민 도덕경
화랑은 섹스를 많이 했다는 편견이 있다. 그것은 화랑세기에 대놓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꽃만 보면 섹스하는 무리가 우리들 인간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여행 가면 섹스하고, 봄꽃 축제에 섹스하고, 골을 넣어도 섹스하고, 새 오토바이를 사도 섹스하고, 그렇게 사시사철 섹스만 하다가, 섹스에 쫓기다가, 삼십 사십 그리고 오십까지 이를 수가 있다. 인간이 도덕경처럼, 늘 그렇게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러브버그처럼 지내는 것이, 때로는 운명처럼도 느껴진다. 도덕경이 한국경인지 아니면 중국경인지 논란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싶다. 문학은, 시경은, 결국 틈만 나면 수도권 진입금지 같은, 사탄의 도덕 잔치에 이르지 못하고, 그것들과 싸우지 못하고, 아무런 김변 박변 최변, 그런 것들......
꽃만 보면 섹스한다는 말. 그것은 치명적이다. 그리고 이상한 꽃장식.......
도덕이 낮은 사람일수록, 사탄의 영향권에 놓이기 일쑤이다. 당연히 돈만 많은 사람일수록, 오직 하루종일,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사탄의 눈치를 보느라고, 바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돈이 많이 없고, 도덕이 매우 높은, 그런 기형적인, 기형도 같은 인간도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가 중앙일보 기자였다는, 하이클래스였다는 것은 제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호치민의 시민들 사이에, 기형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사탄의 도덕을 실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기도, 우리가 모두 지금까지 이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도덕의 눈치를 보고, 또한 사탄의 눈치를 보고, 그렇다고 한다면, 사탄이 도덕을 갖고 휘두르는 칼에, 야사엘의 칼에, 그만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슬픔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슬프게 죽었다는 것은, 사탄이 아닌 것도, 단순한 도덕이 아닌 것을, 죽음의 숨결 속에서,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 옛날에, 옛날 미니 카세트를 갖고 싶어서, 으스름한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고, 얼굴을 보니까, 친구였던 것이다. 카세트 이름은 마이마이. 그친. 친구 중에, 그러니까 그냥 친구가 있고, 절친, 우리가 절까지도 함께 소풍을 다녀온 친구도 있는데, 그는 절친이었던 것이다. 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숨결처럼 시원하기는 했으나, 친구를 만나니 더욱 기쁜 것이, 죽으면서도, 도가도 비상도처럼,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마이마이였다. 남방국가에 불교가 창궐한 것도, 더위가 늘 그런 애틋한 문학적 소질을 가져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기면, 절을 짓고, 탑을 짓고, 하였던 것이다. 꼭 마이마이를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러니까, 울면서, 마이마이를 가져가는 자기 자신을 드디어, 발견한 것일 수 있다. 남방국가는 착하지 않은 것일까? 틈만 나면, 대도시 진입 금지 그런 고양이 프레이즈가 필요한 것일까?
부자들은,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타지만, 그래도 마음은 부자인 사람들은, 그런 친구들을 위해, 계획을 잡아야 한다. 많이 부자면, 한 달이면 될 것이고, 적당한 부자면, 일 년이면 될 것이다. 정말 마음만 부자면, 오 년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오토바이도 그렇다. 부지런히 레노, 그러니까 레노베이션을 하면, 연비가 좋고, 매연도 없는,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인데, 전기도 필요한 설비가 늘다 보면, 마침내 설비 자체가 환경 오염이 될 것인데. 천사가 사탄의 도덕주의를 흉내낼 때도 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다 하겠지만, 내가 항구에서 일하면서, 호치민을 상대하다가, 좋은 기분이 썩 많지가 않았다. 그것들은 꼭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해야 기분이 풀리는 생명체들 같았다. 몇 번을 내가 화를 내니까, 겨우 중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오 년이 지나, 모두가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시내를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울의 정책은, 호치민을 위한 포석이었을 수 있다.
유홍준이 민속 박물관장이 되어서, 그것을 기념으로, 강의를 한다는 것도, 그런 바알의 민족에게도 기적이나 예언이 가능하다는 과시일 수가 있다.
모든 경전은, 오년 정도가 되면, 독파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조금씩 좋은 책을 읽다 보면, 도시의 전경이 환하게 보인다.
처음에는 슬프고 가난한 도덕경이었다가, 나중에는 말에 문장력이 넘치는, 순경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논어와 맹자는 패스하는 것인가? 둘을 먼저 읽고, 순경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되지만, 순경을 밤낮으로 읽고, 오 년 내내 읽으면, 논어와 맹자마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순경을 읽고, 복음서와 바울서신을 읽으면, 아무런 문턱이 없다.
오 년이면 할 만하다............
오 년이 되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공무원과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지식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풍경을, 함께 순경된 처지에서, 돕고,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먼 곳으로 여행을 한다면, 다시금 휘발유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는가?
......
자기 것을 빌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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