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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가면 (한심한 국사 수업)

마음대로다 2021. 3. 24. 00:38

슬픔의 가면 (한심한 국사 수업)

 

 

 

 

 

 

 

 

 

우리는 슬픔이 많다. 왜냐하면, 너무 이데아적이기 때문이다. 이데아가 없다 보면, 슬픔도 따라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가 좋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데아 같았기 때문이다. 됐어.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 하지만 그런 노래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확히 어떤 가르침인지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됐어.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렇게 노래 부르고, 좋아하고 했지만, 정확히 어떤 가르침인지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시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비단, 비단뱀, 교실 이데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갓 만든, 반짝이는 독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슬픈 것이, 그것이 맑은 쇳소리를 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제법 생각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한 시가 하나 히트를 치면, 그 수많은 독들이 깨지고, 그것으로 쫙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그것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 장점은 우리가 문학적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소월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의 가감 없이, 우리들의 깨진 독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접시꽃 당신이 아름다운 것은, 광주 사태 이후에, 우리들의 무지개 빛 이념이 하나의 교실처럼 제시되어서일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 있으면서도, 더 교실 같은 것을 희구했었는지 모른다. 동일시라는 것은 그처럼 슬픈 원형 그릇처럼 생겼다. 우리는 수업 이후에, 나미의 슬픈 원형처럼 회전하면서 돈다. 노래방에 가서 꽉꽉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것은, 넓은 강당은 아니더라도, 비단 작은 자기 가슴 같은 것일지라도, 공명이 발생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원통형 우주선은, 시가형 우주선은, 소월 시에 안착하는가? 아니면 접시꽃 당신의 스피드를 갖는가?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있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니면, 홀로서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 갑자기 매장을 정리 중인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매장 정리 중인 점포에서 갑자기 주문이 폭증을 해서,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고, 피곤한 것이었다. 우리는 피곤으로 진행하고, 짜증으로 좀 더 진행하며, 마침내 슬픔으로 마음이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국문학을 지망한다는 것은, 해가 지지 않는 국문학을 지망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국문학과를 가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심지어는 외국인도, 방언을 하는 외국인도, 국문학과를 가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고,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나의 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공간은 어둡고, 흐릿하며, 형태의 부분인지, 아니면 다음의 시간인지, 정확히 그 전면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 마음에 든다는 것은, 독이 빙글빙글 돈다는 것이고, 독한 년, 독한 놈, 그렇게 말할 때는, 마음에 조금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포장마차, 황금마차, 그런 것을 돈다는 것은,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은 금방 깨진다. 세계 대전이 반드시 이차 대전까지 갔던 것은, 이와 같은 사탄의 심리학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서울대학교를 가도, 나는 언짢았고, 그냥 서울을 지날 때도, 좁고 답답한 수유리 한신대학원을 찾아가는 것도, 답답하고, 그냥 화계사 같고 그랬다. 나는 벌써 빛나는 동해 바다를 보고 왔고, 광주사태를 잊었대도, 수 만필의 백마가 하늘을 뛰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었다. 육이오 때의 희나리를 보았고, 비슷한 키의 나무들을 보았다. 그래서 북한산, 북한산, 하도 그러기에, 한번 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얼마나 나는 슬펐는지 모른다. 힘들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고, 뜻이 없고, 향기도 없고, 심지어는 산소도 부족한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서울의 아무런 도로 같았다. 왜냐하면, 서울은 밤에도 환하기 때문이다. 환한 독 같기 때문이다. 키가 작고, 의식이 희미하며, 직업의식이 강하고, 영어를 잘못했다. 천주교 신자들이 많고, 기독교, 불교도인들이 있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신문사가 있는 것이 신기했고, 마치 이슬람 교회를 보는 것 같았다. 방송국은 음각이었다. 그것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가 남자 여자 걸그룹을 응원하는 것은, 보이 그룹, 그것이 음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음각에서 나와서, 카페 거리를 걷고, 홍대 거리를 걷고, 그래도 노량진, 입시에 바쁜 것을 보면, 음각이 양각되고, 양각이 음각되는, 그런 노량대첩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배가 남산 만하게 나온 것이, 그 표현이, 비로소 이해가 되고, 한강이 흐르는 것이, 음각의 중앙 집중 현상 같은 것을 막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없지 않아, 황태, 허각, 환장, 병이 환멸, 전염병이 창궐, 드라마 이화째의 내용이 영화 창궐과 닮은 것이, 대놓고 음각처럼 보이는 효과를 자아내는 것 같다. 심지어는, 인조, 남한산성의 내용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역사적 인물과 상관 없이, 우리들의 필모그라피가 독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지능이 떨어질 수가 있다. 자아와 의식은, 그것을 당연히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능이라는 것이 진정 필요해서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각 안에서는, 좋은 윤상의 노래가 있고, 나쁜 윤상의 노래가 있는데, 지능이라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은, 나쁜 윤상의 노래에서는 다만 제스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동엽을 반양각으로 부르고, 성식이형을 반음각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는 듯, 무선 이어폰을 매만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경복궁은 음각이다. 거기서 뭔가가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에버랜드 같은 퍼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티비를 꼼짝없이 보아야 했을 때, 그런 나를 위해서 온통 행사를 마련하고 진행한 것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면 뭐하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도 그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선구마사의 이화째가 온통 그랬다.

 

 

어수선하고, 다포딜, 음각화를 막아보기 위해서, 그러니까 미국식으로다가, 부모가 돈을 쏟아부어서 명문대학에 입학했는데, 자식이 그래도 공부를 하고, 나름 존재의 음각화를 막아보기 위해서, 자연법칙에 항거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다포딜이나, 수선화, 사탄의 수괴와도 접신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공포의 실재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접신을 해주고자 저 먼 나라에서 사탄이 찾아왔는데, 우리나라 꼬마는 영어 공부나,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만큼 애타고, 죽을 듯이 괴롭고, 그랬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부모의 의지인지, 어린아이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존재에의 욕망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의 최종 수괴와 동일시가 되는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군고구마처럼, 초조하고, 무한한 떨림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자 의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탄의 표시는, 가벼운 것이 결코 있을 수 없어서, 항상 살인사건에 다시 나타나는 살인자처럼, 반드시 사탄이 회전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이화째의 내용에서는 어디에서 사탄이 회전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평론가들이었다.....

 

 

약간의 사탄의 그림자들을 보았다.

 

나는 거기서.....

 

 

제작자들도 그것을 보고는, 웃음이 사라지고, 힘을 얻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