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콧구멍
진리의 콧구멍
이름을 좋게 짓고 싶었다. 그러나 김춘수, 모든 사람의 추한 흐름의 계절에, 흐름에, 나 혼자만 진리의 옷자락, 화이트 코튼, 그렇게 지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콧구멍은 제이에스알, 그러니까 공동경비구역이기 때문이다. 추한 사람도 콧구멍을 갖고 있고, 선한 사람도 콧구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선하고 추한 사람도 콧구멍을 갖고 있다. 그것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클레이더만 음악을 배경으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태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깥 배경이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다만 이렇게라도 추론이 되는 것이 반갑고, 흥겹고, 그럴싸하고 그런 것이다. 그것은 우리 한국말이다.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영어를 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한국말의 오현란이 반갑고, 오현란의 실제 노래는 그저 현란해서 도리어 말을 아끼고, 그렇고 싶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전부 전라도 사람은 아니지만, 한번 거시기 뭐시냐, 쓰기 시작하면 한정 없이 쓰게 된다. 그 어떤, 경험적인 느낌. 좀더 보편 프라빈스적으로 말하면, 아니, 누군가 말하니, 아니 뭐, 그러니까 아니, 그러면 그 상대가 아니 뭐, 계속하게 되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신해철의 그것으로 영원히 빠질 공산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외국어가 우리를 점령하고, 일본어가, 중국어가, 영어가, 우리를 점령한다는 것은, 에이치지웰즈의 우주 전쟁과 비슷한 망상인 것이다. 우리는 영국의 아편이 거대한 중국을 점령한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그럴 공산, 정말 공산주의가 있었다. 나는 어쩔티비라는 말을 쓴 기억이 없다. 사람들은 내가 써서, 내가 떠난 다음에, 열흘 있다가 누군가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비슷한 것이나, 비슷한 감탄사, 축약어, 은유나 감탄사, 어떤 고토바들은 많이 썼을 것이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기억이 나지 않고, 늘 언제나 예언자의 메시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방언보다는 예언에 힘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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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무라이 드라마나 영화는 별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종류가 다양해서, 어쩌면 사무라이 영화 안에서, 어디에선가 고질라도 나오고 그랬을 것이다. 그것의 필름이 사라지고, 그러니까 다만 괴수물이라든지, 괴물물이라고 분류되는 것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라이 드라마나 영화 어딘가에서, 몇 개의 것에서, 일본 고유의 괴물들이 나오고, 고질라도 나오고 하였으나, 마침내 그것이 서로 한 영화 안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느껴져서, 우리가 드라마 게임을 보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안 보고 더욱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소설들을 안 보고 더욱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콴툼 띠오리 안에서는 하나가 되고, 그럴 것인데, 그렇게 고질라가 나와서, 태평양으로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럴 공산이 있는 것이다. 그마만큼 사무라이 영화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한반도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그렇다. 내가 쓴 자연에서라는 소설도, 나는 그 소설에서, 그것의 마지막 꽃잎 같은 것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고, 그것이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나이 어린 십자가들 앞에서는 무조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와 같은 국문학의 법칙을 알았더라면, 더더욱 아무런 소설들이나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관념들에게 흡족한 것들이 나오지 않아서, 조심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들의 다작이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셀렉션은, 초이스는, 그리고 셀프저지먼트는 훌륭한 것이다. 맥스 맥주가 훌륭할 때가 있고, 그 쓴 것이, 하늘색 카스가 훌륭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리꼬네의 치매 같은 것.......
사무라이는 태생이, 조선반도 간첩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칼 연습이나 부지런히 시키는 대륙에 태어났으나, 간첩으로 조선에 가서는, 인정미나 삼백육십오일을 먹어야 했었다. 인정미는 아름답고, 인정미는 사나우며, 인정미는 킨 사이다와 같다. 인정미는 이정미 같고, 내가 사랑하는 미정이 같고, 인정미는 똑똑한 사람들 같다. 결국 음악에, 멜로디에, 가사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국문학의 후쿠야마, 역사와 철학, 그리고 국문학의 종언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무라이가, 칼날 끝에, 중국 어떤 호위무사가, 타고 있는 초 끝을 잘라 그 끝에 있게 하면, 그것이 그렇게 질화로 같은 것인가? 우리는 욕을 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문학의 어떤 것이다. 토템과 터부이다. 그러나 욕을 알기 시작하면, 욕을 안다면, 우리는 그 칼 끝에 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음악은, 멜로디는, 피아노 음악의 멜로디는, 그것의 주제의 표현에서는 질화로 같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그리고 힘을 주어 협화음을 가져가다 보면, 새끼, 그런 말들을 내가 언뜻, 들은 것도 같은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청소년들이, 대입 교재에서 빠져나와, 그들만의 생명으로 사라져갈 때, 서로 나누고, 멀리에서 듣고, 그런 것들이 아닌가? 그들 컨버세이션의 전부가 아닌가?
그것은 어떤 화로인가......
인정미는 일본 사람들도 갖고 있다. 때가 되면, 인정미를 꺼내다가, 화로에다가 구워먹는 것이 그들의 명절 풍습이었다. 그러니 콩고물이 많은, 넘치는, 인정미를 우리들의 짱정미, 정미, 혹은, 아무튼 그런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짱정미라고 좋아하지만, 인정미라고 해서 개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보신각의 종소리를 좋아하지만, 그 옆에서 보신탕집을 어떻게 하지 않는 것처럼, 분명 모든 지하철은, 그것의 종착역이 있는 것이다. 종착역은 그래서, 극장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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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무라이들은 그 종착역에서 죽었다. 관념이 없기 때문에, 대학교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양대학교는 거의 같이 있지만, 그래도 어떤 서울 사람들이 한양대학교에 있다고 해서, 조금 걸어서 그곳에서 수업을 듣고자 하겠는가? 사무라이도 비슷했던 것이다. 그들은 조선에 다녀왔지만, 조선이 인간에 낫다고, 후지산을 눈이 흐릿하게 보면서도, 그렇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관념이 없는 인정미는 짱정미와 같다. 그래서 우리들의 문재인 대통령이, 그 어느 날, 전무후무한 어록을 하나 남긴 것일 것이다.
사무라이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 몇과 딸 몇을 가졌는데, 왕자의 난이 있어서, 그들이 의지할 수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말을 그렇게 조심하니, 원래 겁이 많은 것으로 여겨, 딸들은 그것의 내면을 닮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을 때, 진리의 콧구멍이 세어나와, 일본의 미학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조선의 미학이 좋고, 아름답고, 곳 됴코 여름 하나니 해도, 일본의 어떤 미학에, 그 하나 뿐인 미학에, 식민지 시절이 있었대도, 우리가 깊이 매혹이 되었던 것은, 그것이 그만 대마도처럼, 일본과 한국의 중간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감각이 거기에 연동되어서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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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는데, 그 둘에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드디어 아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정원이 없다. 그러나 정작 미야자키 하야오에는, 그리고 우리들의 그것에 대한 접근은, 다만 망상과도 같은 것이다.
미야자키의 천공의 성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엉겹결에 더 자라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급의 현대 일본인이 되어도,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것은, 그 이유는, <그것이> 생각보다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이냐. 그래서 장미칼이나, 칼 가는 것이나, 도마 같은 것들을 사다주어도, 그것에 어쩔티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문학을 배반하고, 배반의, 아무튼 너무 세상과 비교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한
나는 누구인가?
flying machine?
나는 난가?
그것은 너무 호렙
그렇다면 나만 장군인가?
성경 속에 있는 것 같은
그것은 독백인가? 아니면
남들이 나를 가리키는 이름 고유 명사인가?
우리가 배의 난간에 기대어 보면,
서울에서는 유람선에서 그럴 수 있을 것인데
사람들이 죽어서,
다시 수증기로, 유증기로 올라와서,
내가 있는 새로운 한국의 문학을 배운 다음에
콴툼 띠오리처럼, 다시 그들 무덤으로 돌아갈 것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문학은
오롯이
세계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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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의 문화를 업수이 여겼기 때문에, 자기들이 형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중국도 옛날에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니 너무 지배하고, 피 빨아먹고, 그런 것의 외교 관계로만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다. 일단 외국으로 왔다는 것은, 집안이 잘산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뭘 집으로 가져가면, 고향으로, 자기 나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런 커먼센스가 있을 뿐인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아버지로부터, 진리의 콧구멍이 나와서, 어린아이들을 그렇게 카미가제 비행기에 태운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윤상의, 이기상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데, 이런 식의 콴툼 띠오리, 양자경, 이석기, 이윤기,
유정. 무정.
어째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시험을 보다가, 참고서 컨닝을 하기 싫지만,
네이버 찬스
이광수
우리는 아직도, 이광수의 무정이, 카미가제 특공대를 조직하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양자경 물리학적으로, 그렇게 생각될 수 있는 혐의는 있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다.....
태평양 횡단 특급......
하루키의 단발마적 제목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