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다
2025. 7. 31. 09:02
진주와 세계관
우리가 진주라는 이름이 싫으면, 중이 싫으면, 다른 나라로 가면 되지 않는가 한다. 그러니 그와 같은 브루조아적 상상력은, 우리를 자극한다. 우리는 진주가 이렇게 팽창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주에서도 세계적인 시인이나 소설가가 나오지 않는 것 같이, 진주에서도 같은 이들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진주 출신 감독 아무개.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를 지나, 숱한 사회적 프레스의 시기를 거쳐, 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기자들도, 그리고 덕분에 작가들도 유호죽순 생겨났었다. 우리가 비디오 테이프와 그것의 케이스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서, 우리가 한국의 진짜 진주 한국 사람이라서, 너무 한국만을 사랑하는 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영화가 갖는, 그런 비진주성의 성격이 너무 커서, 아무튼 그와 같은 경계성 장애, 해리성 장애, 다들 잘 모르는 말들이지만, 그래서 그런 것들이 어느 때는 손에서 놓여 지질 않는 것이다. 그것에는 마한이 있었다. 변한 진한. 그런 것들도 카테고리로 놓고 보면, 다들 마한을 뜻한다. 우리의 옛날은 오직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로서의 마한을 뜻할 뿐이다. 우리가 옛날을 발굴한다는 것은, 내가 끝없는 사츠진 지켄에 휘말리는, 서유석의 노래처럼, 장난감을 어떻게 하다가 부숴버리는, 다소 참혹한 것이다. 이번 캄차카반도의 지진도, 내가 관연하지 않고, 푸틴과 서유석의 영혼결혼식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진주는 슬픈 노래 소리와 같다.
러셀은 거기다 대고, 어떤 관념이나 생각을 독일어로 안샤웅이라고 했는데, 다른 독일어는 말하지 않고, 그것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안 싸운다는 말이다. 러셀이 진주를 지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헤겔의 철학을 설명하다가, 안 싸우는 것을 꼭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좋은 싸움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안샤웅은 다만 좋은 싸움도 싸우지 않는, 스포츠도 하지 않는,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지옥을 드러낸다 하겠다. 진주는 철이 없는 것들에게만, 친구 중에 철이라는 이름이 있는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 중에 진주라는 이름이 있는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이 없는 것들은,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는 것도, 안샤웅을 모르고, 다만 양산박같이 되는 것일 것이다. 청년이나, 어떤 학생들. 근본적으로, 아무런 근본 기분이 없는. 근본 기본이 없는. 끊임없는. 샤웅들. 뒤웅박 팔자들. 영화들. 회장들. 드라마들. 그것이 멍청하게 갇혀 있는, 나사로보다는 희망찬 것들일 것이기에. 그래서 사탄에게 조정당하는 진주보다는, 중국에서 살 것이다 하지만, 산도 아주 크고, 태항산, 거기 가도 마찬가지, 거기서도 숱한 조개지, 조계지, 너 조개지? 그렇게 묻는, 그렇게 붙는, 그런 이들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진주 싫음은, 어느 독일 꽃의 이름 중에 존네시름이 있다는데, 나름 의미가 있다. 그리고 매우 막강하다. 거의 아무 것도 좋은 것들이 옆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 세자가 함안에 갇히고, 여자들은 신사가 아니라 창기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무슨 변란이나, 자연재해, 그런 것들이 있다 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거창하게 되는 것이다. 경주도 좋은 경주, 그렇지만, 뭘 이상한 것을 집어 넣고, 안 압지 그렇게 물어보면, 그것의 야경은 우리나라는 관광의 왕국인 것이다. 그것을 우습게 여기고, 전문 기술로 치고 나가고,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마음을 굳게 하고, 친구와의 우정 같은 것을 끊임없이 유지보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진보도 어렵지만, 그와 같은 보수도 실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참 지자가 진주를 잃었다 해서, 지자가 아닐 수는 없다. 지자는 기본적으로 변증법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초존재론이다. 그러나 덜 지자나, 안 지자, 지자 흉내자나, 아직 그런 것이 덜 확립된 자 같은 이들은, 진주를 몇 개 잃으면, 정신마저 혼절할 수가 있다. 그것이 과장이 아닌 것이, 우리가 남녀 서로 결혼하는 것도, 몇 개의 진주를 서로 잃고, 서로에게 잃는 것으로 충격을 받아, 병원에 앰뷸런스로 실려가서,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고, 결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주를 잃었는데도, 게의치 않다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진주를 잃으면, 진주 책임 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진주 조개잡이도 못하고, 그러는 것이다.
양산은 진주를 지키지 못한다.
그것은 통영도 마찬가지이다. 거제도와는 만난 적도 없다. 청도가 진주의 오랜 친구이다. 그러나 흐린 날도 많고, 그리고 시절을 지내면, 청도는 자기들끼리의 청도가 된다. 진주는 그나마 약간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부산은 갈매기. 울산은 늘 마음이 슬프고 그렇다. 진주는 그 정도는 아니다.
포항은 목포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주교 신자도 아니다. 밀양은 너무나 힘이 없다. 이런저런 영화들에서, 밀수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좋은 친구이다.
진주는 참혹하다.
진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