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박화요비의 라이, 그리고 눈물
마음대로다
2025. 8. 9. 22:32
박화요비의 라이, 그리고 눈물
긴건모의 잘못된 만남. 우리는 그때, 그것이 어떠한 강수지, 배수구를 갖는지 몰랐다. 사람은 태어나서, 젊었을 때, 예쁜 여자를 만나고, 그리고 대통령이나 욕하다 죽을 수 있다. 그것은 삼박자이다. 태어난다 한 박자. 예쁜 여자 한 박자. 그리고 대통령을 욕하는 한 박자. 우리는 그와 같은 프로야구의 좁혀드는 경지를 때로는 반기기도 하고, 반기문 사무총장, 그리고 안 반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안 반기는 것이다. 더 근사한 삶도 많은데, 요약도 많은데, 그런 너무 단순하고, 처절하고, 진짜 로봇 같은 것을 반가워할 수가 없다. 우리는 더 넓고, 그 수많은 음표들, 양표들, 그리고 곡절들. 우여곡절들. 박화요비가 과연 수많은 허구들 사이에서, 최진실의 계보를 파고들어, 나와 만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냥 초라한 아주머니가 되어 있지만, 알 수 없는 얼굴 변형으로 인해서, 매우 예쁜 중년이 되어 있을 수 있었을까? 박화요비는 진정, 공유의 도깨비를 연상시킨다. 얼마나 독고영재 같은 알엔비였는지. 사람들은 그런 것은 잘 안다. 그런 것은 우리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옥수수를 사 먹어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것은 잘 아는 것으로, 고속의 그림자들을 상대할 수 있다. 그 노래들이, 대체 국문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실제에 걸쳐, 반드시 신안 염전의 모래 소금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지. 햇빛을 받아서, 좀비들이 사라지는. 우리는 과거에 진정, 촉촉한 사랑의 좀비를 사랑했던 것인지.
긴건모의 잘못된 만남도 그렇다. 그렇게 만화 같다. 부산의 만덕동 같다.
그 시절에 우리는 어떠한 철학자가 있고, 뉴스 기자가 있고, 인기 칼럼리스트가 있고, 어떠한 숨은 목사님이 있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섬진강의 소설가가 있었던 것인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대체 누가 있었던 것일까? 포항에 다시 좋은 모래를, 섬진강처럼, 깔아 놓는다고.....
박화요비는
수많은 선천적인 저능 사이에서,
오직 노래를 부를 때 사랑스럽고
제일 똑똑한 것 같다.
진선하기 때문에, 이제는 미스코리아 미만 챙기는 시절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와 같은 동반 입학의 기쁨을 누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차를 타도 그런 기쁨을 느낀다. 차를 사도 그렇고, 오토바이를 사도 그렇다. 좋은 원터치 철제 선반을 사도 그렇다. 젊음은 가혹하다. 기쁨의 전령사이고, 기쁨의 스토아학파이다. 더 현대 서울을 보면, 사람들이 선천적인 저능을 피해 도망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세상의 스토아 학파가, 미도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단 하나만 스토아학파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은 우리를 흥분시킨다.
내가 기뻐도, 박화요비의 노래는 아름답고, 내가 되는 것이 없어도, 박화요비의 노래는 아름답다. 나와는 케노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상관이 생기면,
.......
어느 누가 노래 하나로 단편 소설 하나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단편 소설들은 모두 빠져나갈 구멍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이 기어코 달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한국 문학은 발전을 하지 못했다. 정당하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절정의 케이팝의 아카데미즘은, 조바꿈은, 문학을 가볍게 뛰어넘어, 갑자기 서울의 여름밤, 신학까지도 어지럽힐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둘을 소개해주지 않았다. 세상이 진정 그렇기도 어려울 것이다.
도망가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마포 종점에 이르러, 그 정도의 정신은 현상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상상한다.
박화요비가 갑자기 키가 더 커지고,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