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미국과 대학

마음대로다 2025. 9. 11. 11:42

미국과 대학

 

 

 

 

 

 

 

 

이순신 장군의 총탄은 의미가 많이 있다. 영화배우 김윤식이 박찬호를 많이 닮았고, 그래서 김병현, 박찬호를 닮은 이가 이순신 장군처럼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총신대. 그것은 영화평이 없는, 원화평은 아닌, 초난강도 아닌, 그런 음악적 흐름, 아무런 평론이 없는 영화의 지배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눈을 덮고 덮어서, 그것이 전부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인 것도 같다. 내가 예전에 말한 것처럼, 헬레이저 시리즈를 이겨낼 만한 미국의 대통령들이 없다. 위인 전기. 혹은 일렉트리시티. 전기 의자의 사형은, 그것이 한국에서 먼저 전기라고 불러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사람을 계몽시키고, 밝히고, 여자를 밝히고, 그런 것으로 그런 의미가, 아무튼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름 방학은 잔인한 것이다. 사월이 잔인하고 말 것도 없다. 혹은 춘심이가 잔인한 것일 수 있다. 삼월이는 옛날부터 수더분하기로 유명하였다. 명월이는 글씨에 능했다. 춘심이 남동생이 춘삼이었다. 정춘삼. 그는 이름이 아니라 성을 바꾸었다. 이춘삼. 최춘삼. 그러다가 계룡산 어딘가에서, 백년 산삼을 발견한 것을, 아무튼 그런 상상이 있다. 그럴 때 그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진정한 춘삼을 발견한 것 같고, 장뽈 뱅몰도로 돌아다니던 시절이 중마동처럼 흘러가고 그랬었다. 그리고 김춘삼이 되었을 때, 그런 다이알을 항상 지니고 다녔는데, 그는 다시 거지왕이 되었다. 가자왕.

 

여름 방학은 무서운 것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나가르주나 같았다. 크고, 환하고, 조용하고, 친구들과 재밌고 놀아야 한다는 사명도 있었다. 국민교육헌장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영화 배우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침내 거대한 여름 방학이 다가온 것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구 소멸되고 만다. 그것은 진정 안타까운 것이다. 거대한 나가르주나. 아무런 영화평이 없는. 인간이 글을 쓴다는 것은, 거대한 빌딩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날, 바깥에서, 창문을 닦으면서 내려가다가, 아이가 그런 자기를 발견하고, 좋아하고, 손을 흔드는 것 같을 것이다. 그리고 섹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영화평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평창 동계 올림픽, 서둘러 창문을 닦고 내려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 지어진 것이다. 거대한.

 

짝짝짝.

 

이제는 웃는. 거야.

 

사람은 영화의 트램 같았다. 영화를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많이 달랐다. 그것은 반젤리스의 음악과 같았다. 무슨 르 펫 무슨 라 메르. 사람들은 가난했고, 가자왕 박춘삼 같았고, 실제로 그와 같은 춤사위를 갖고, 우리들의 무정한 도시를 상대했었다. 영향을 받았다는 감독들도 많았다. 나는 그것을 추석인가, 아니면 군대에선가, 보았다. 우리의 지능이, 도시를 정식으로 상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의 홍콩. 여자 같은.

 

마침내 영화가 신분 상승을 하게 되고, 가지왕도 어엿한 거지왕 박춘삼이 되었다.

 

우리가 배고픈 시골 집의 부엌에 가면, 베라왕이나, 베스킨라빈스, 그리고 가자왕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가지를 싫어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지처럼 맛있는 채소가 없다. 그들이 가자왕이나, 시골 부엌이나, 가지를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나가르주나를 어딘가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는 공부가 늦어져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혜의 뱀이 되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면 세상의 도가, 동양의 도가, 불교적인 과부자의 도가, 과부인데, 부자인, 과부자왕, 나가르주나의 연상은, 연인은 그런 데에서 늘 흥분하고, 찬호 박처럼 공을 던지고, 우리에게 나가르주나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처럼, 아무튼 적어도 동양의 도가 자기에게 밀어닥칠 것을 믿은 것이다. 걷지도 않고, 눕고, 밥만 먹고, 눕고, 뱀이 되기 위해서, 씻지도 않고, 아프고, 뱀 때문에 아프고, 사랑 때문에 아프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가는 것도 기분이 상하더니, 나중에는 걷는 것만 봐도 증오가 치밀고, 마침내 마음으로는 완벽한 불뱀이 된 것 같은, 살라만더가 된 것 같은, 그런 것이 된 것이다. 그래서, 변신의 전환점에서, 돌아오고자 하나, 돌아오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늘 우리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사탄을 맹렬하게 상상하다가, 정말 그런 종족들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의 격식은, 도형은, 지금 우리에게도 들어맞고 마는 것이다. 격물치지. 그러니까, 그것의 격은 이격되어서, 맞게 되는 것이다. 자식들 교육은 시키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뱀처럼 누워있는 쓸모 없는 막내를 죽였더니, 뱀왕 국가가 탄생해서, 사왕, 지원금을 준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뒤늦게 그들을 타박한 것 같은 이야기의 구조는, 거의 세상 모든 곳에 있다. 유리왕도 그렇다.

 

그러니 그것을 우리가, 실제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과정으로 여겨야 할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인신공양을 하였고,

우리 인간 문명의 지층 저 아래에는, 창문 닦이도

죽고 나니까, 마을의 유리창이 뿌옇게 변했다는 전설의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소처럼 생겼다. 사람은.

 

박찬소.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것들은, 지능이 많이 떨어진다. 그것은 사왕의 지배에 있을 때나, 사람들에게 댄스댄스댄스를 주었다. 영화가 이미 세상을 덮고, 지배하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루키나 두루키 같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모른 척할 때마다, 해안 마을에서의 그 군대 하급 간부들처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진정 슬렙 헤밍웨이이기 때문이다.

 

마이웨이.

 

미드.

 

문학작품의 시온성을 무시하고,

영화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끊임없이 만들 수 있다.

 

 

총신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