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공포의 나가르주나
마음대로다
2025. 9. 14. 09:23
공포의 나가르주나
사람들은 삼국지에서 원소만 무섭다고 한다. 조조는 반갑고. 조조할인. 모조조조. 그러나 원소가 무서운 만큼, 우리는 제갈공명도 무섭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옛날 가난했을 때, 엔니오 모리꼬네의 포르세 바스타, 맞는 발음인지는 모르나, 서로들 헤어지면서, 우리 이제 제 갈 길을 가자, 그럴 때, 고등학교 담임에게 학생이 제갈공명 손을 들고 답변하는 것처럼, 어색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의 음표는, 맞다 틀리다 말하는 학교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며, 그 학생도 제갈공명 제 갈 길을 가는 것일 것이다. 내 대학교 때 학생 중에, 이재길도 있었고, 정강길도 있었다. 김한길도 있고, 한길사도 있어서, 거기 어딘가에, 그런 비슷한 친구가 있는 것도 같다. 나가르주나는 일본 만화처럼 강력한 것이다. 그것은 진리와 닿아 있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다. 군대에서도, 춘천까지는 서로 함께 오지만, 상봉 터미널까지도 함께 오지만, 신교대 친구들끼리, 거기서 헤어질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 제 갈 길을 가자 그런 말을 했던 것일 수 있다. 사람의 이름도 어쩌면 제갈길인 것 같다. 그것들이 모이는 것이 더욱 이상한 것이고, 때로는 두려운 일일 것이다. 제갈공명만 생각하면 덜 무서울 수 있다. 그러나 원소라고 생각하면, 그것 다음으로 생각하면, 무척 무서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원소라는 이름만 주어졌지, 조선이라는 이름만 주어졌지, 아무런 상대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절대적 무관계적 관계어는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갈공명도 그렇다. 우리가 독재의 바다 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우리 입에 제갈이 물려진 것 같더니, 독재가 아닌 상태에서도, 각종 출판, 신문, 시집, 재혼, 그런 것들이 제갈이 물려진 것인 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물에 잠기고, 거기서 제갈공명이 터져나오고, 그리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오고, 이제는 우리가 원래 주자어류인 것처럼, 아가미 호흡이 되지 않아서, 제갈공명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아가들은 얼마나 귀여운가? 독재 시대에도 말을 잘하고, 비독재 시대에도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독재 시대에, 독재의 참혹함이, 신경씀이 진중해서, 독일 유학을 가지 못했었다. 때로는 도피해서 독일 유학을 갔었다. 그러나 어째서 지금은 독일 유학을 가지 않는 것일까? 간다고 해도,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가미로도 호흡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 돌아가고 의지할 만한 과거도 없다는 것인가? 이효석이 커피를 보듬고 전차를 타고, 뜨거운 물동이를 침대 아래 두고 잠을 잤다는 것이 그렇게 기억나고 그렇다. 어쩌면 원소는 그렇게 서양의 원소까지도 있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삼국지의 마지막에 이르러, 제갈공명의 촉나라에 이르게 된 것이리라. 그것의 풍경은 장관이다. 유비는 아들을 제갈공명에게 의탁하였다. 그러니, 유비는 사람을 잘 알아본 것이리라. 우리들 모두가 주자어류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제갈이 없어도 말을 못하지만, 누군가는 제갈이 물려져 말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재 시대에 피신하듯이 독일 유학을 가고, 돌아와서 비슷한 로봇이나 짐승들이나 만나고 다닌다면, 카프카의 러브버그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자기 삶이 음악적으로 가혹하다 여겨지겠는가? 중국은 그리고, 지금 원소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비치하고 있다.
일본도 돕고, 한국도 돕고, 미국도 도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소에 대한 이해는, 삼국지 원소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나름 매우 깊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소에서 나가르주나로 빠질 수 있다.
그것의 코드명이 십삼일의 금요일이다.
우리는 그 숱한 칠삼일들을, 재미로 보았다. 원소의 위력을, 전문가들처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가서 찍은 것이 아니라, 촬영한 것이 아니라, 영화산업을 갖고 있다 보면, 밀실 살인은 막을 수 없어도, 밀실 살인은 찍을 수 있는 능력은 갖게 된다. 양자물리학은 실체적 물리학이 아니라, 위용이 있는 원소 물리학에 관한 첨단의 정리일 수 있다. 당연히 양자물리학은 예수교이다. 그들은 원소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기독교의 나가르주나를 만나면, 눈물이 터져나온다. 그들끼리는 눈을 부비고 살기 때문에 알 수 없고, 거기서 살다가, 숱한 한신대 신학과 철학 문학의 컬리큘럼을 가지고, 칼리굴라처럼, 어떤 여자에게 나타나면, 나가르주나와 사슬의 연속인 자기의 신앙생활에, 경종이, 그런 하동의 마을을 바라보는 경희가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과의 통일보다 깊다. 지구의 중심까지 도달한 다음에, 다시 솟아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서장훈의 장신대나, 나가르주나의 예수교를 볼 때마다, 허용하고, 허가윤하는 것은, 장신대의 대학원 과목들이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느 서울의 이동 속에서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순절의 기적은, 다락방은, 함께 얼마든지 예배도 보고, 찬송도 하고, 복음성가도 부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옛날의 한강의 모래사장 위에서, 그와 같은 원소의 나가르주나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영어도 십년을 공부하면, 집중하는 차원으로, 한국에서 나처럼, 외국 사람들의 말을 얼추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평생을 성경 철학을 공부하였다면, 적어도 짧은 철학 소고 쯤은 얼마든지 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이상의 언덕이 있고, 그것의 광영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 담배를 피우면, 금세 그런 가능성은 차단되고, 거대한 일본의 맑은 물의 양서류가 된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너무나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이나, 처음 듣는 말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삽입은, 실제로 나가르주나 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신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소주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적당히 맛있게 피우고.....
그게 더 히트일 수 있는데
영화 히트에서의
시가지 총격씬처럼
*
유비가 죽으면서 제갈공명에게 자기 아들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어린 아들에게, 다 큰 아들에게, 술도 가르치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는가.....
케이티엔지 씨가 리브레
나가르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