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어째서 티맥스는 안 되고, 혼다 CB1000f는 되는가? 라 페레그리나치온......

마음대로다 2025. 10. 20. 23:18

어째서 티맥스는 안 되고, 혼다 CB1000f는 되는가? 라 페레그리나치온......

 

 

 

 

 

 

 

 

 

 

 

 

우리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복될 수 있다. 개성회생. 개인회생. 우리가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듯이, 아내가 뭘 해주는 것 같듯이, 아내는 없었기에, 여자 친구가 뭘 해주는 것 같듯이. 그것의 남자를, 남쪽과 남녘바다에 넘기면, 우리는 그와 같은 선에 진정 놀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회복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 그렇고, 미케네도 그렇다. 얼마나 그리스는 슬픈가? 하루키의 명작. 슬픈 외국어. 내게는 가장 깨끗했고, 가장 잘 읽혔었다. 그의 욕구대로, 그리스의 철학에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막삼 읽으면, 의욕과는 다르게, 늘 아름다운 형용사로 넘어가고 만다. 진짜 용사는 아니다. 용사의 집도 아니고, 귀신의 집도 아니다. 켄싱턴의 유령도 아니다. 형용사는 용사 같다. 하루키는 일본 사람들에게 형용사를 준다. 조금은 명사 같은 형용사를 준다. 그것은, 처음에는 멋진 일본의 이런저런 현대적인 풍경의 명소 같으나, 쉽게 사라지고 만다. 그가 묘사한 것처럼, 너무 많은 눈이 걸친, 동물이나, 식물 같다. 그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명사 같은 형용사를 많이 걸치는 것일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사의 찬미요, 윤심덕, 혹은 장미희, 나에게는 자연이다. 붉은 자연이고, 야속한 자연이며, 야훼 같은 자연이다. 그리스의 겨울 풍경 같고, 여름에도 추운 날씨 같고 그렇다.

 

나도 나의 욕심이 나의 글을 낳았다. 낫고, 낮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그것은, 소설가가 되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우루과이를 끈다는 말도 그렇다. 그런 말은 없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그 말들을 썼던 사람들은, 서울 동네를 지나다가, 아파트촌이든, 아니면 다정한 아직도 달동네이든, 사라질 것이다.

 

나는 욕심적으로 쓴다. 정요심이라고 있었다. 나는 예쁜 줄 모르겠는데, 대련이나, 종수가 그렇게, 예쁘다 하고, 마치 다른 것을 아는 사람들처럼, 내 앞에서, 그런 우루과이를 끌었다. 그것은 우루과이 라운드. 혹은 떼제 공동체.

 

처음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제국에서, 다만 지나가는 스티커 붙이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글은 남달랐겠지만, 내가 비싼 새것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서, 에스티 마틴이나, 마틴 제이, 마틴 스콜세지, 리키 마틴, 그런 이들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중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커는, 내가, 나의 드론에 붙이는 그런 스티커는, 붙이지 않으면, 백만 원의 과태료를 내는 그것은, 금방 사람들의 마음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내 친구가 한 달에 얼마간 보내는 돈을, 일 년 이 년 쓰지 않고 모았다가, 중고 제품을 하나 샀는데, 미안한 마음에, 서울에 가서, 친구에게 보고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오토바이를 타면서, 매우 행복했었다. 남자의 자격, 그러는 것처럼, 말의 자격을 따진다면, 나는 분명 홍시나, 모카 김한용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신의 제국에 있지 못하고, 그나마 언변이 있는 칼럼니스트들인 것이다. 연변이 있는. 언변을 연변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금세 양만춘도 지나쳐, 광개토대왕이 되고 만다. 그것의 무덤들 같은 것. 왜냐하면, 인간은, 잘 살 때도, 늘 사는 것이 무겁고, 힘든, 반듯하고, 아름다운 돌무덤들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핀 야생화. 그리고 나비들. 다만 조금이라도, 공부자의 성공을 가는 이들이라면, 그것의 영토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염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강력한 연변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말들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와 같은 지자기 센서 같은 것을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그런 숱한 말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서울 청년들이, 장년들이, 심지어는 노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메르세데스 벤츠. 무슨 홀리데이 같은. 자칫하면 흑인의 아름다운 소울이, 서울일 될 것 같은, 서울 푸드가 될 것 같은, 엠제트 세대.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팔면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넷플릭스나, 공영방송, 공룡능선, 케이블 티비, 서울의 봄 같은 것은, 그것을 전해주지 않는다. 담아주지 않고, 위로해주지 않는다. 얼마나 송창식은 이연걸 같은가? 우리는 지금 그런 파미르 고원에 있는 것이다. 한석규도 그렇다. 모두 다 유치환의 유치장의 유치원에 보내고 싶으나, 거기서 설렁탕이나 백번 먹게 하고, 토하게 하고 싶지만, . . . 그것은 세계 민중들의 어떤, 음악 소리 같은 것. 선언 같은 것. 세상에 이와 같은 음악적 질량의, 고구려 돌무덤이 없다.

 

 

사람들은 중심에 있을 수 없고,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명이나, 의무도 없다.

 

그래서 혼다가 씨비 시리즈를 천삼백까지 내보다가, 거의 엥포르멜에 가까운 디자인만 쏟아낸 것도, 그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미학의 한 지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테그라를 좋아했다.

 

그리고 에스티 세븐을 타고 가다가, 나 보라고 타고 지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멋지고, 훌륭하였다.

 

그리고 주행풍.

 

얼마나 빅스쿠터는 복되었는가? 그것으로는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테그라는 주행풍마저,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트랜스 포스트모더니즘의 극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정격을 좋아하면, 전격이나, 그런 정치한 것을 좋아하면, 티맥스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고, 그것도 정격성과 비정격성으로 흔들리는 것을, 해 년마다, 마치 어떤 이번 한강 새 유람선처럼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엽고 세련되었다가, 남성적으로, 그러다가, 괴물과 싸우는 전사의 투구처럼도 되고 말았다.

 

일본 오토바이는 숱하게 강간을 당했다. 강간의 로열......

 

그리고, 이번 씨비 천 에프, 오백 어떤 것도, 마치 강간당하다 나온 것 같은 음악적 분위기가 있었다.

 

씨비 사백이 나올 때를 생각해 보라. 영화 값. 천 오백 원. 자장면 가격. 천 원.

 

그때의 우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씨비 천 에프가 그렇게 슬픈 것이다. 엔진음. 사람들은 말한다. 엔진음이 너무 슬프다고.......

 

힘은 넘치지만.......

 

그래도, 티맥스의 강간을 생각하면, 호재이고, 선방이라고 생각한다.

 

......

 

 

뭐가 호재이고, 선방이냐 하면, 너무 격하게 슬프지 않겠는가? 씨비 오백이, 그래서, 잘하면 씨비 육백오십 에프에서 들렸던, 그 정도의 쌈마이 소리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특별한, 강력한, 오토바이 철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학가, 두루키, 세루키, 그런 이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연장하는 대학교 오토바이 동호회에서, 누군가 고구려 왕의 돌무덤 같은 말을 하면, 그 말이 대충 구르는 것 같은 기분은 있다.

 

그것은 영화 제목 같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