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한국 노래 같은, 토익 시험 보다가

마음대로다 2025. 11. 15. 10:20

한국 노래 같은, 토익 시험 보다가

 

 

 

 

 

 

 

 

 

이 씨발 놈의 새끼들이 자기들은 잘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사악하게 변했던 것의 바하 평균율이 다 그런 이유였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인터넷 쇼츠에서 야부리 까고, 케이에스에서 식인종 잔치를 벌였던 것은, 다 호두까기 인형의 운명이 아니었나 한다. 우리가 그런 격한 말들을, 나만 하는 것 같아도, 잘 찾아보면 다른 이들도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살다가 살다가, 그런 주문을 동확농민운동처럼 외우면서, 사람들도 똑같이 독하겠거니 짐작해본다. 살다가 살다가 네가 어쩔 땐......

 

사람들은 그런 차가운 책들의 나가르주나를 좋아한다. 즐겨한다. 그것은 행복한 왕자 같다. 한국에도 왕자지훈이라고 있었다. 그런 인터넷 쇼츠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인터넷 쇼츠 머리를 하고 있고, 스포츠 머리, 그리고 인터넷 쇼츠를 입고 다닌다. 그것을 또 어느 식당에서 볼 수 있었다. 너무 근거가 박약한 것 같아도, 삐약, 그렇지 않은 것은, 그것이 다 뉴튼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서울 국제 가요제. 울릉도가, 서울과 같아서, 이제는, 배를 요구했다는 쇼츠도 그렇다. 사탄은 사탄의 대리인을 각 지방 그런 것들로 가지고 있고, 그것이 통용이 되면 밀어붙이고, 그것이 통용되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하고 빠지는 전략을 세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 대마도 한국인 사절 식당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 팜므와 일본 에이브이가, 아무튼 그런 것인 것이다. 내가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살 것인가? 사탄이 인간 살을 좋아해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사람들은 내 편에 있지 않고, 아름다운 영화가 마음 안에 가득한, 클래식의 이 악장 이순신 같은, 오히려 항상 그런 나를 위협하고, 사탄에 그런 기호가 넘친다고, 사탄에게 드릴과 서스펜스가 있을 수 있다고, 거기에 귀속하려 하는 것인가? 그런 일들이, 또다시 이 땅에 육이오 한국 토익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지금까지 숱하게 반복되어 왔다. 한 명의 새끼들도, 서울대 교수들도, 교수단들도, 고려대 사일구 교수단들도, 방문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와 같은 철저한, 아파르헤이트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주자가, 늘 시름에 눕고, 티비로 남의 손모가지 거는 것을 지켜보고, 인간이니까, 그들도, 나도, 과거에 오랫동안, 그러다 인터넷 쇼츠로 울릉군수가 나오고, 물개나 물범처럼 나오고, 물범의 목소리는 귀여우나, 물개의 목소리는 오토바이 머플러 소리 같다는 구분을 보았는데, 그와 같은 인터넷 쇼츠로, 너무 인간이,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우리나라 만세만 같았다. 전국에, 사탄의 지령을 내내 받다가, 다리를 자르고, 도리어 내 편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전선이 한둘이 아니다.

 

한전도 그렇다.

 

한전은 내 편인가? 아니면 사탄의 편인가?

 

미국은 링컨 전기의자에 앉으면, 백인은 까맣게 타는가? 갑자기 토익 점수가 상승하는가? 서점에서 편지 보내는 수준의 지성을 갖게 되는가?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메타몰포시스이다. 율리시스이다. 성유리. 아니면, 하다하다, 짐승이 되고, 물범이 되는가? 나는 그 순간, 나의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인을 열 번 저지르고, 링컨 전기의자에 앉아서, 빛처럼 빠른 한국 전기로써 죽임을 당한다면, 변신해서, 사탄에게 끊임없는 조정을 받아도, 미국 교육을 받고, 아침에는 마피아로, 오후에는 교직자로, 저녁에는 성직자로, 다음날에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브롱스, 뉴욕을 질주할 수 있는 것일까? 다 헛된 토익스토리일 것이다. 오토바이는 지금도 타지 않는가? 미국까지 가서 탈 것이 무엇인가? 내 주위에는, 이상하게, 비싼 오토바이 질색인데, 일색인데, 그들이 그런 복잡한, 노암 촘스키의 운명을 가로질러 그리 되었다는 것인가? 아무튼, 그 오토바이들과, 내가 타고 있는 행복의 김지수가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다. 요즘 이상하게 시동이 안 걸려서, 매번 휴대용 배터리 점프 기기로, 시동을 걸지만, 그것만 빼면, 나의 한국에서의 토익스토리에, 아무런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생각의 잉여가 남는 것이 사실이다. 감가상각의 시간 속에서. 그것은 나에게 깊은 인류애적인 슬픔과, 공포와, 절망과, 연대와, 인도와, 타지마할, 나마스테를 선사한다. 그래서 선사시대......

 

 

*

 

사람들은 공포에 집단으로 있게 되면, 물개가 되고, 물범이 되고, 펭귄이 될 수 있는가? 아프리카에 검은색이 있다고 해서, 유럽의 백인들이 마땅한 시니피에를 얻는가?

 

후자는 불가능하지만, 전자는, 어찌 보면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냥 이상한 노랫소리에, 일본 사회인들이 집단으로, 도쿄돔에 모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대하소설,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소록도 방문기 같은 것. 대하소설을 읽으니까, 그것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서양의 철학도 실은, 그와 같은 물개들의 교회교의학이었을 수 있다. 문어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독서의 깊은 소록도에서 빠져나와, 과학, 그리고 롤코물이나 보면서, 하지만 그들이 집단으로 죽기 전에, 칭창고원의 철길 노동자들처럼, 중국을 피닉스, 그나마 현대화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아무튼 영희 철이 크로스처럼, 한자 서예와 예수님의 십자가가 만나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광한루의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꼭 사람처럼 보인다는 느낌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지능은 제한되기 때문에, 이미 죽은 자들이, 죽지 않고, 그와 같은 태초의 원한을,  단지 죽고 싶은 몸에 품는 시간이라는 상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