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과연 온 세상이 한국을 위해 맞춰져 있을까?
마음대로다
2025. 12. 14. 11:36
과연 온 세상이 한국을 위해 맞춰져 있을까?
한국을 향해 맞춰져 있을까? 그것은 부르스 리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대, 경상도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안데스 산맥이다. 그것은 이미 사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다만 죽지 않고 사는 사람에게, 헤겔 철학의 총본산인 것으로 영예를 가져다주는 것과 같다. 동양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자유한다는, 그 엄청난, 슬픈, 청암대학교. 그러면 암대. 저는 다섯 대요. 그러면 선생님이 다섯 대만 때리는. 저는 세 대요, 그러면 또 세 대 때리니까, 저는 한 대요, 그러자 엄청 세게 한 대 때려서, 쓰러지는. 그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기보다는 웃는. 맞는 자도 웃는. 대동세상. 대동고등학교 같은 세상. 남매 호랑교는 빼주는. 낙타는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낙타는 한 번에 물을 많이 마신다는 말처럼. 생존이 공부가 되는, 사건의 지평선. 그 아스라한. 아라비아......
사이제리아.
나이지리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한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경우를 따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크리스마스트리, 예수라는 말에, 모든 시카고의 건물들이, 뉴욕 건물들이,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 미감이 사라지는 것일까? 내쇼날 카세트를 들고, 음악을 들을 때였다. 나는 피라미드의 정다운 수직을 손으로 꺼내고, 닫고, 누워서, 그러는 것 같았다. 여름에. 그렇다면 소니는 어떠한가? 소니는 안소니 홉킨스. 단번에 양들의 침묵을 세계에 불러일으켰다. 음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잠정적 사탄 세력에게 둘러싸인 사람들에게는, 남미 정글의 크고 우람한 밀림 칼들에게 둘러싸인 노벨상 위원회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들은 한손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비티에스, 다른 한 손에는 정글의 크고 우람한 칼을 들고 있다. 이슬람 사람들은 적어도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실용주의 학파처럼, 두 손 다 무기를 쥘 경우에는,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마지막은, 세계 곳곳에서,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 있다. 이블데드에서는, 한 손에는 전기톱이, 한 손에는 로열 엔필드의 샷건이 체결되어 있다. 일본에는 얼굴에 전기톱이. 다들 절대적으로 비즈니스 바쁜 것이고, 차원의 변경점, 그런 것 같은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을 무시하면, 단번에, 한 손에도 코란을 없애는 것이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한국이 좋다면, 그냥 처음부터 한국을 우선시하면 되지 않겠는가 싶을 것이다. 그렇게 주자가 좋다고 한다면, 주자를 괴롭히지 않고, 적어도 주자를 우선시하면 되지 않겠는가 할 것이다. 괴롭힐 것 다 괴롭히고, 도룡뇽할 것 다 도룡뇽하고, 무시하고, 그렇게 할 것 다 하고, 그렇게 하면, 마침내, 얼굴에까지 전기톱을 놓아주는. 그리고는 사탄들끼리 싸우게 하는. 인간 사회에서 선을 보는데, 얼굴에 전기톱을 하고 오면, 상대방은 싸우자는 것이냐 묻고, 묻게 되고, 사람들은 그런 것이 실제가 아니라, 재밌는 애니인 줄 아는 것이다. 엄청 흥행하는 차원의 변곡점. 변경점, 그런 사건의 지평선 같은 것들.....
단번에 한국이 중심이 되고
그런 식으로 되어서 중국은 흥행하고
한 삼십 년 가까이 흘렀다......
일본도 지금, 문화가 발전해서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괴물들과, 사탄들과 싸웠던 사탄들의 반대급부로만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는 형세인 것이다. 그 웃기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 사실들을 모두 안다면, 사람들은 모두 한국말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준비는 실제로 되어 있다. 일본과 중국은, 제2의 국어로서, 한국어를 연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천이백 년 즈음부터 시작될, 엄청난 깊이의 프로젝트였는데, 갑자기 내가 작품과 함께 하늘 높이 솟는 바람에, 시간이 엄청나게 빨라지고 말았다.
중국 유학생들이 가장 크게, 하늘 높이, 마치 애드벌룬처럼, 중국어를 어째서 써야 하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연걸. 이연결. 연결이. 사람도 없는데, 일본의 지하철 푸시맨에게 밀쳐지는 기분. 그리고 사람도 없는데, 푸시맨에게 밀쳐지는 기분이라면서, 그렇게 자꾸 지하철 문이 열리는 기분이라면서, 어느 괴팍한 할아버지는 들고 있는 물품을, 문에 걸치는 것이다. 평생을 산다는 것은 연옥과 같다. 순천의 연향동과 같다. 그렇다면 광주는 무엇인가? 광주도 처음에는 연향동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맨날, 엄청난 사건과 재해를 초래하고, 지하철도 지능이 떨어지는 것인지, 다 짓는데, 애를 먹고 있다. 누군가의 봄노래처럼, 애만 태우고 있네, 그러고 있다. 지하철을 탈 때는, 기분이 조째즈했다. 도움이 야릇하게 생길 때, 지능도 도파민이 생기는 듯, 그러나 낭비인가, 한국 경제와 현균 씨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 생기기도 했었다. 이호선이 생기면,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온처럼, 너무 격하게 재미가 있을까, 그런 것을 걱정하는지 모른다. 아예 평생, 중국어로 살고, 평생 일본어로 살면, 그런 연옥의 기분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조례동. 마동. 중동. 그런 느낌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토익 점수처럼, 영어 공부하기에도 바쁘지 않은가? 어느 누가 한국어 공부를, 그리고 마침내, 수필적 진행, 수나라의 침략 같은, 당나라의 침략 같은, 이순신 장군의 일본 정벌 같은 기분까지, 해내고, 마스터하겠는가? 어느 누가 음악을 틀어놓고, 한국어로 작문을 하는, 기분의 극한까지, 극한 직업까지 가겠는가? 사람들은 마다시, 마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타잔처럼, 나무 위에서만 살다가, 어으어으와어와어아이, 그렇게 사성을 밝히고, 다시금 나무로만, 기독교인도 아니고, 크리스마스트리도 아니고, 예수교 신자도 아니면서, 정신의 단순한 초목 상태로 진행하겠는가? 나무집을 짓고, 한 십 년 살다가, 다른 나무집을 짓는. 여기 수목원에서 나무집을 짓고, 한 십 년 살다가, 다른 수목원에서, 목금토원에서, 또한 십 년을 사는. 그런 고집멸도는, 생각만 해도, 딱따구리처럼, 편두통이 도지는 느낌인 것이다. 도지원.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오직 세계의 모든 화교처럼, 화교들의 개인적인 교류처럼, 한국의 화교들만, 물에 깊이 침잠하듯이, 그와 같은 한국식 한자어의 진행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슬픔이 많은 곳에서는, 활동이 깊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차원의 변곡점은, 간극선 같은 것은, 생각보다 너무 깊다.
사기와 삼국사기는
이상하다.
사마천은 일본 사람만 같다.
삼국지가 하박국처럼
겨우 중국 사람들의 반정신을 돌이켰는지 모른다.
절반은 돌아오지 않는다.
차라리 모두 한국어를 쓰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그래야 한국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고래로부터의 그런 이상한 재산으로, 주자를 괴롭히고, 자기들끼리 해외여행이나 다녀오는, 정신의 참담함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