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수능 칸트 시험은 사소한 것인가? 아니면

마음대로다 2025. 12. 17. 10:57

수능 칸트 시험은 사소한 것인가? 아니면

 

 

 

 

 
 
 

 

 

 

 

 

 

대입하면 지대한 것인가? 그것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아들도, 딸도 아니다. 그런 영화 제목이 있었던 것 같다. 사소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지하철을 내리다 보면, 그런 딜레마에 휩싸이게 된다. 조용남. 우리는 진딜래, 그런 것에 대한 늦춰지는 악몽 같은 것을 가진 적이 있다. 다들 하나씩은 갖는 것이다. 누구는 문학을 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이며, 누구는 철학을 하지 못해서 안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이상한 문제의 악몽을 모두가 꾸고 나면, 그나마 논술의 영역이 있으니, 주관적인 질서의 경험으로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조용남이 진딜라일라, 그런 노래를 부른 것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딜라일라와 딜레이드, 기차가 무슨 중앙선처럼, 그리고 델리만쥬, 그것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의식이든, 사유이든, 영혼이든, 기능이든, 육체이든, 뭐 그렇게 다르다고, 자랑할 것이 무엇이고, 삼 점을 놓고, 서로의 성기의 털을 갖고 브라질리언 왁싱을 할 것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섬세한 차이를 갖고, 브라질리언 왁싱을 할 때, 인니의 어떤 바틱 마을에 가서, 프리덤을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짧지만 강하다. 코뿔소의 티코처럼 혼자서 가라. 어떤 여자 소설가가, 그렇게 우리에게 말했던 것일 수 있다. 처음에는 그처럼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수능시험에 나올만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와 같은 차이에 대한 강렬한 관심은, 어쩌면 개별성이 아직, 학교 학생수의 어마어마한 진행에 미쳐, 촉발되는 것일 수 있다. 같은 이름이 있고, 같은 이름인 사람이 시험을 못 보았는데, 자기 것과 바뀌는, 그런 박근혜의 에피소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도, 죽은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꿔 사형 집행을 했는데, 뒤늦게 그 사실을 교도관에게 알렸다가, 형집행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넋두리로 한 말이, 그렇게 와전된 것일 수 있다. 대게 공부를 못하는 것들이, 의식과 생각을 구분하고, 마침내 영혼까지도 생별된 것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가공 상태를, 진공 상태를, 하이퍼루프를 누군가가 깔아서, 사탄으로 돌진하게 한다. 사형수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의대 시험으로 사용하면, 좋은 방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차.마.고.도.

 

말을 잊지 못하겠다.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문학을 못한다. 그런 옷이 우리의 인생에 입혀질 때,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친구가 멀어지고, 어떤 아는 선배가 있는데, 그가 그만 사라지는 것이다. 남학생인 경우, 그런 여자 선배는, 금방 일찍 사라지나, 여학생인 경우에는, 의식과, 인식과, 사유와, 영혼이, 갖가지 시간에서 춤을 추기 때문에, 제법 오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달래라는 말은, 실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이다. 진달래가 아름다운 것은, 잎이 없을 때, 사람의 어린아이의 키만큼 흐드러지게 피기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 문학가가, 브리태니커 같은 것도 사보고, 영문으로 되어 있으면, 영어 공부도 하지 않고 지내는지, 허구한 날 브라질리언 왁싱만 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브리태니커 왁싱을 하면, 뭔가 시간이 지나고, 좀 더 총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미신이 있다. 진달래가 그런 것이 있다. 자칫하면, 숱한 브리태니커들도 무찌를 수 있는, 그런 힘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철학의 구술시험 같은 것도 능히, 그들 국가와 대결해서 이기고는, 대신에 진달래를 갖고, 한 명도 남김없이 처치한다고 하면, 우리는 바틱, 바틱, 인니 바틱, 하면서 환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보았는데, 사형을 집행하는 자리에, 그렇게 둘러서, 돌의자가 함께 놓여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사람이 다 진달래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남들은 위스키가 되고, 자기는 진달래가 된다면, 나 같아도 위스키가 되는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어떤 소설에, 그래서 학교 학생 선생 두 사람이, 소풍을 가서, 위스키를 나눠 먹는 내용이 있다. 내용은커녕, 형식적인 관념은 커닝, 귓구녕, 혹은 처형, 하나 없고, 다만 좌표만 그렇게, 슬프게 깔고는, 풀들이 자라기를 바라는 정원 풍경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프로그램에 손을 대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미역의 프로그램이 되고, 거기에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가, 드라마가, 서울대 국문학과 여대생이, 자기 결혼하는데, 선배가 찾아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의식은 이미 하이퍼루프를 지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칼잡이였고, 한 사람은 목에 칼을 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둘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자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시집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대 사람들이건, 아니건 간에, 인 서울 사람들은 약간 옛날 기준으로 보면, 다이아몬드에 많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대를 봐도, 다이아몬드가 연상이 된다. 연대나 고대는 연상되지 않는다. 둘은 가볍게 인사했고, 진달래가 사람을 보듯, 혹은 진달래가 진달래 보듯 인사했다. 이상한 수능 시험 몇 개가, 애꿎은 독일 가곡 가창자를 현균장의 이슬람으로 만들었는데, 우리 사는 세상은 분명, 그런 살벌한, 기능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프로그램으로, 자기들은 즐거운 롤코물로 지나는 것인 것이다. 기록물이 없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는 주장처럼, 잘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지옥에도 다녀오고, 어떤 자격을 갖고, 그리고 돌아와서 롤러코스터도 탔는데, 비교적 같은 데시벨의 소리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공원을 지날 때면, 식은땀이 났고, 그리고 집에서 혼자 콩고물을 보는데, 갑자기 흐뭇한 웃음이 도지는 것이었다.

 

 

모두 다 올레라는 주장처럼, 다 잊고, 논술에서, 자기만의 관념을 서술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서, 그 수많은 잔잔한, 그래서 그것의 교집합 행정의 루트를 통해, 이상한 잡스러운, 죽은 스티브 잡스 같은 문제가 세상에 나왔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