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사탄은 어째서 인간의 행복을 허용하는가?

마음대로다 2026. 1. 25. 11:59

사탄은 어째서 인간의 행복을 허용하는가?

 

 
 
 

 

 

 

 

 

 

이런 제목을 달면,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앵글을 하나 들고 와서, 사랑하는 여자와, 앵글로 색슨을 하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박찬욱 생각한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았을 것이고, 나는 보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나와 차이가 있다. 어느 충칭 거리도 그러했다. 외곽지역이었던 것 같은데, 그곳에는 거대한 중심로 같은 계단이 있었고, 계단 위에서는, 계단 저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우리는 영화적 상상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는 별것 없고, 계단도 별 것 없고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로마의 휴일 계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계단을 내려오니, 영화를 본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고, 나는 계단 꼭대기에서, 보지도 않고, 다만 제목만 갖고 언급하는 사람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러나 영화 이전에 얼마나 자기가 무슨 대단한 작가인 것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내가 내게, 이메일 보내는 항목처럼, 내가 내 친구들에게 그랬던 것인가? 함께 방학에 여행가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들의 캐쓸이, 분위기적인 연대가 매우 치밀해서, 한 사람이 빠지면, 금방 그 공동체는 와해될 수가 있다. 그래서 다들, 가지 않기로 하다가, 그래도, 그것을 인지하고, 인지심리학, 어려움을 이겨내고, 친구에게는 아쉬움의 인사를 건네고, 자기들끼리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드라마 전우의 한 장면처럼, 어쩔 수 없다, 상대에게 말을 하곤 했을 것이다. 그러니 박찬욱 그 한 사람의 잘못만은 아닌 것이다.

 

사탄이 이렇게 중국이 중흥할 줄 알았다면, 나를 중학교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네이버에서, 중고시장도, 카페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다들, 어쩔 수 없다는 수준이었었다. 그리고 원래는, 사람들을, 모두, 패션에 예민하고, 드라마나, 그런 영화, 그런 것들에 목매는 것을 상정했으나, 나는 늘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씨바 리브레, 씨가 리브레를 살 때마다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낙차가, 낙폭이, 씨더 디퍼런스,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죽은 조용기 목사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으로 찾아와, 담배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엊그제 죽은 안성기 배우가, 실은 죽지 않고, 그렇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처럼, 변화산에서 담배를 찾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숫자와 같다. 서울의 유명한 학원강사와 같다.

 

한신대학교를 다닐 때는 흔했다.

 

어쩌면 그와 같은 홍성흔이, 홍성흔도 죽지 않고, 그는 정말 죽지 않고, 베트남 축구를, 아시안 U23 어떤 것에서, 삼위로 이끌었던 것일 수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 그것도 높이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chi mai 슬픈 곡조처럼, 무척이나 하늘 높았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허용하더니, 고등학교도 허용하였다. 그러나 대학교는, 그렇게 통속적인 어떤 지뢰 같은 것, 사냥할 때 쓰는, 그물 같은 것, 장치 같은 것, 족쇄 같은 것, 그것을 쳐놓고, 행여 내가 진출할 것을 걱정하였는지 모른다. 서울대는 걱정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은, 그것을 막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나, 그들이 진학하는 것이 사탄의 정치철학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항상 항구에서 콘 조가 나를 괴롭혔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검수원을 그만두고, 콘 조로 일하게 되자, 일을 하라고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검수원의 백색의 종이에, 청마 유치환처럼, 아름답게 결부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구나, 처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자각하였었다. 

 

그렇다면 한신대 교수들은, 어느 선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사탄에게 중용된 것일까? 조용기는 애초에, 늘 미국 사람 거론하는, 사탄의 애첩이 되었던 것일까? 그러니 등고선 악양루라는, 유명한 두보의 시가, 그것을 너무나 애절하게 예언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 너무 그런 이상한 말이나 하는, 사람의 시간을 본다는 것은, 같은 장로교나 감리교 사람들도, 고통스러운 것인 것이다. 괴롭히는 사람이 없으니, 콘 조로 일하게 되었는데, 일의 연락이 두절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일을 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다시 검수원이 되어 일을 하게 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 시절 개인회생의 자금도 충당하지 못해서, 다시금 뻑큐에 시달리거나 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템포를, 사탄도 사실은 감당을 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가 늘 미국 사람들을 인용하는 것이, 도리어 미국에게 악이 되고, 독이 되고, 선자건 악자건, 사탄이건 간에, 그리고 내게 강력한 선입견이 되는 것으로는,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용기 목사가 과연, 죽기 전에, 내게 남긴, 어떤 위대한 유산 같은 것이었을까? 그레이트 마징가 익스펙테이션? 그렇다고 한다면, 무기 생산 공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한화 에어로 다이내믹스 같은 것이 아니라, 있다가 없다가, 피라미드가 다만 모래 언덕 같다가, 카이로의 빌딩 같다가, 있다가, 없다가, 에칭처럼, 여러 개를 찍어낼 수 있을 것 같다가, 나중에는,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오직 어린아이와의 기계적인 첫 만남으로나, 칼라가 나타나는 일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문익환도 그렇다. 그렇게, 성경도 번역하고, 윤동주도 안다 하고 그러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뭔지 모르게 안전지대로다가, 백인 여자나 찬양하는 노래를 매우 진실하게 부르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와 같은 진실함은, 남이 거들기도 했었다. 최진실. 어쩌면 나는 이 두 진실 때문에, 나의 무의식은 백인 여자를 좋아하게끔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지금까지 모든 고비들을 보면, 사막, 사탄이 과거에 멍청하고 어쭙잖게 허용한 것들과, 뒤늦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들이 확인이 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등고선이 불확실한 영역으로, 악양루, 내려간다. 이번에도, 오폴,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부르는데, 거기서도 불합격을 하였다. 중학교도, 갖은 탄압 가운데서도, 잘 나오고, 중국이 부흥하였으나, 사탄은 그것마저 지금까지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천만 가까운 인구의 미국 사람들을 펜타닐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사탄을 위한 미국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미국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드디어 모든 생각의 처음 단추 같은 것이 발견되는데, 미국의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가와사키 제트엑스를, 블랙 레인에서 무슨 더글라스도 타고, 예전에는 톰 크루즈도 타고 그랬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정신이 안정하고, 교지에다가도, 각별한 내용의 수상을 발표하고 했던 것에 대한, 마음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깊은 미국 같은 것을, 지금의 캄보디아 정권 같은, 그 시절의 서울대 영문과 교수들이 갖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에게 지령이 내려오면, 영화를 찍으면서, 지켜본다는 족속들이 있다. 대게가 그러한데, 또한 그렇다고, 영화 전체나, 방송 연예계, 사장들을, 싸잡아 비난하면, 옳지 않은 것일 것이다. 대낮에, 뭘 먹다가, 채널을 돌리다가, 미국 사탄 영화를 보면, 마음이 급격하게 좌표처럼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나 또한 확신이 없고, 피아노 음악의 긴장처럼, 늘 긴가민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