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우리는 산양인가?

마음대로다 2026. 3. 1. 11:55

우리는 산양인가?

 

 

 

 

 

 

 

대만에 산양이라는 스쿠터 오토바이 회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삼양라면이 있다. 삼양 식품회사가 있다. 둘이 다르다고 하는데, 둘이 다를 정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을까 싶다. 정치인이란, 반도체와 같다. 약간 인간이 아니다. 러브버그도 자세히 보면, 반도체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확률적 시간을 선점하기 위해서, 누군가 노력한 흔적이, 그리고 수많은 러브버그들도, 밤하늘의 우주를 향해서, 항거한 것들이, 그렇게 밀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들 모두가, 우리나라의 국기를 게양하고, 남의 나라의 국기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게양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계양산이라고 한다. 얼마나 국기를 게양해야 하나, 초조했던 사람이,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안도현의 한숨을 쉬겠는가? 오토리버스. 혹은 카톨리시즘. 차를 돌리는. 우리는 공부해서, 무엇이 되어 있는가? 해롤드 블룸. 그리고 프레드릭 제임슨. 그 사람들이, 위정자들이, 정자대왕, 그런 것들이, 나의 공부를 막은 것이, 자기들을 그런 것들에 가깝다고 여기고, 나를 러브버그나, 정자대왕의 하치리로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그때, 지옥의 문이 열렸지 않나 싶다. 영화는, 다만 계급 갈등의 반영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어쩌고, 하지를 못한다. 지옥에 다녀오면, 지옥에 다녀온 영화를 만들 뿐이다. 사람들은 반성도 하고, 반성의 기미가요도 비치지 않고 하였다. 대체 누가 러브버그인가? 아직도 김지미이고, 미지수이고, 김지수이며, 이미지이다. 대만 사람이, 스쿠터를 타다가, 우리가 공부하다가, 산양이라도 된다면, 그것은 괜찮은 것이라고 세계에 선언하였다. 나는 누군가 정우성이 되라고 하고, 손담비가 되라고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영향에 대한 불안인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좋은 영향만을 줄 것이다는 불안 같은 것들. 믿음 같은 것들. 그럴 수는 없는데, 너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말을 하자면,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왠지, 우리가 짬밥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영향이나 불안을 선사하였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공부해서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한다. 진정, 산양만 되어도, 대단한 것인가? 좀 더 그럴듯한 털과, 외모, 그리고 자연 같은 것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고작해야, 그들이 어떤 지도 모르는 정우성이고, 손담비인가? 산양보다 못한 것들이면 어떻게 하는가? 그런 변신에 대한 불안은 없는 것인가?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작가도 안 되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는, 이슬, 그런 아침 이슬람이 좋은 것이다. 서울대 수업을 들으러, 버스를 타고, 내려, 아래서 치고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능선을 지나다가, 내려, 위에서 언덕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도 있었다. 비평의 서울대는, 아직 한국에서는, 난수표나, 미지수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비평이라고 하면, 악담을 늘어놓을 태세였던 것 같다. 아니면 늘 비평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였던 것 같다. 딱 해롤드 블룸적인 말이라도 하기가,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자, 그것을 정산하고, 상정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미국식의 러브스토리의 희생양이, 대만 산양이 되었던 것인가? 그러니까, 그런 말이라도 하기가, 거기까지 가기가,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돌이켜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수잰 손탁은 비평을 반대한다. 그런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비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작가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작품과 비평의 쌍계 상태에서 길을 잃고, 자기 정신으로 자훼하는 것 이상을, 남에게, 울릉도 호박엿 같은 옆 사람에게 할 수가 없어서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평가도 드물고, 없고, 업타운 걸, 내가 겨우 나타난 것을 이승엽이, 그리고 엽문이, 기록하였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를 아는 사람만이, 작품을 쓸 줄 아는 사람만이, 비평을 쓸 수 있는 것인가? 도원결의. 도무지 저 멀리,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고 써야 한단 말인가?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고, 정신이 산간 도서의 빈집이 된 다음에야, 도서관이 산간 도서의 도서관인지, 그 정도의 펀에, 지우펀, 시라소니치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혼자. 한국시. 신 앞에 선 단독자. 비슷한. 어떤 시 같은. 해롤드 블룸은, 생각만 해도 즐겁고, 웃긴게, 프레드릭 제임슨도 재밌는 것이, 뭔가 작품을 근사하게 쓸 것 같은 위기의식이 항상 엿보인다는 것이다. 작품이 있고, 비평이 있는 것인데,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작품이나, 원작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그것이 작품인지, 아니면 비평인지 모르나, 아니면 즐거운 오소리 정도, 옥소리, 잠이 든 사이에, 사람들 다 내리고, 갑자기 하이퍼 패스, 그런 잘 모르는 기차처럼, 서울에서 잠이 들었는데, 서해 바다 앞까지 이른다고 한다면, 종점이다고, 내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배를 타고, 그것이 작품인지 아니면 비평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고, 여서도, 여기서도 공부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여기서도 작품은 하지 않는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우리가 공부해서 무엇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소리인지, 사람들이 결국, 강호동, 영원히 티비만 보고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사람일까?

 

아니면 단종일까?

 

그 끓는 마음이, 다만 기술자가 되어서, 빌딩숲을 오간다고 해도, 승합차를 타고, 하루하루 전우애를 쌓아간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영원히 김지수인 것이다.

 

처음 몇 개 드래곤볼을 모으는 것처럼, 인생 작품들 몇 개가 있을 때가 그렇게 좋다.

 

그러다 많이 먹게 되면, 피부가 푸석푸석해진다.

 

누군가 작품을 결단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영화 히트.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가. 종로 총잡이.

 

일본 김의 전쟁

 

그리고 다시 한국 무전 유죄.

 

이 모든 것들이 신탄진 같다.

 

아니면 탄도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