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민중문화이야기
문학의 우월: 슬픈 서울의 손더 게스트 풍경.....
마음대로다
2026. 7. 18. 10:06
문학의 우월: 슬픈 서울의 손더 게스트 풍경.....
구십 년도에 서울에 큰 물난리가 났다. 이런저런 자연재해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우요일, 흐린 날 이 층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그렇게 구름처럼 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층 다방을 갔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의식이고, 그와 같은 층수를 뜻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구십일 년도에 마치 교촌치킨처럼 한신대학교에 갔다. 나는 그와 같은 옷을 입을 수도 없었고, 입을 과대망상, 물리학과면 물리학과 과대가 있을 것인데, 어느 유명한 짤로서, 고수가 망상을 입었던가? 원빈이 입었던가? 서로 티격태격 싸웠던, 아무튼 그런 지경의 관계는 도무지 맺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백년가약 같은 것. 도무지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도서관의 흔한 정간실에 들러, 국립도서관의 정간실에 들러, 내가 구십 년 도에 어땠는지, 마땅히 물을 사람이 없어서, 몇 개의 애잔한 노래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고삼. 고삼차. 고신대. 그런 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어린 우리들에게, 오직 죽음 같은 대학 입시만 있는 것인가? 우리들에게도 작품이 있는가? 우리가 얄개 시대 이전에서부터, 이후까지, 그 수많은 빵집을 다니면서, 서울의 유명한 제과점에 다니면서, 충장로에는 궁전제과, 지금은 대전의 성심당, 고삼에 임박한 의식 수준의 소년들은, 소녀들은, 깊은 번민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지망 대학이 하향되거나, 때로는 상향되거나, 들쭉날쭉, 죽순처럼, 나이트클럼처럼, 우후 배트맨 다크나이트, 아침에 쭉쭉 자라는 조금은 감당할 수 없는 신생 느낌은 있으나, 갑자기 자기 자신이 우리 사회의 지성의 반열에 진입한 것 같은, 그런 잦은 성적 공개의 빛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쓰기 평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찍기 평가 같은 것만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겸손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전교조 운동도 했었는데, 아무런 형식적인 방안 같은 것이 없는 것이, 다시금 자연재해를 바라보고 회상하는 이 층의 다방 안에서, 신해철의 재즈 카페, 마음에 큰 양심이고 위축이 있었다. 밥을 먹다가 말면, 우리는 청소년기에 경험할 수 없는 행동 패턴이기 때문에, 친구가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왜. 뭘 먹고 왔냐? 대왕 돈가스를 두 개 정도 먹을 것처럼, 늘 그렇게 으르렁거리다가, 평범한 돈가스의 크기도 마다하면, 그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인데, 그는 어쩌면 위가 수축, 위축이 된 것일 것이다. 그 위는, 다른 인근의 차원으로 진행하였고, 거기에 있는 위가, 대왕 돈가스를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손더 게스트는 그나마 서울이었는가? 서울의 자부심. 심장 같은 것이었는가? 그런 경연은 없지만, 지금 고삼이 되고, 고이, 고일이 되는 후배들에게,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할 만한 그런 사람 없는 공산의 필모그라피 정도는 되었는가? 얼마나, 그것은 공동의 자산 같고, 동아리실의 냉장고 같고 그러한가? 풋풋한 문학 교수는, 그가 다만 기계를 다루는 학생일지라도, 취직하여, 죽는다 하더라도, 오직 그와 같은 문학 교수의 능력을 갖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계와, 간호사 메스, 그것으로 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할 때는, 김윤식 같은 이가 되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어떠한 정당 대표 연설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지 않고, 그들이 연결되어서, 국회의원 비서실 사람들도 될 수 있고, 거기서 꽃 중에 꽃, 국회 꽃의 국회의원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은 그와 같은 이대근 같은 뿌리가 눈에 보인다. 그것의 연근 요리는, 우리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바쁘고, 식판 채우기식의 반찬이라면서, 그것도 때로는 딱딱하다고,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뿌리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들 그것의 살아있을 때의 위치를 상상하면서 먹는다. 미역이 산모에게 좋은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미역을 온몸에 감고 대학 캠퍼스를 돌지는 않는다. 뉴욕의 지하철에서도, 그런 씨위드는 처음이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산모가, 대학원생의 장가연 같은 여학생이, 그러나 오늘 점심으로 미역국을 먹고는, 형태의 연대를 까먹고는, 입을 씻고, 금세 신현균의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 특별시, 전남광주 특별시, 동궁 같은 파멸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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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이라고 해서, 공부하는 모든 것이 이영하 같은 과거 걸출한 존재의 형태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수묵화를 그리고
금호고 합창단에서 함께 보리밭을 부르고
체육 실기 평가에서, 현주엽 슛 레이업 슛, 아주 얕은 점프로, 골만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누아르 영화의 대사 같은 것을 내뱉지는 않는다. 그리고 문장이, 수평선과 수직선의 규격이 완벽하지 않으나, 수직선이 의미론적으로 잘 팽창해 있는, 평창 동계 올림픽, 그런 글들을 교지에 낸다. 나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지 않았다. 그것을 영화관에서 보고는, 그렇게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관객은, 아무리 서울에 있는 옥소리라고 해도 얄밉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십 대에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여자가 벌써 식당의 사장이 되어 있는 것을 남자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배민이나 쿠팡에서 시켜 먹고는, 댓글 참여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자를 자극하는 짓인 것이다. 독일어로 베스티뭉. 어떤 기분 같은 것이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영화 같지 않았다. 내가 밤실로, 집이 있던 무등산 끝자락에 가다 보면, 자주 만나는 하늘이었다. 그것의 어귀에는, 정두홍 감독이 살던 집이 있었는데, 앵두나무로 가득하였다. 그것이 없을 때는 가난한 그 집이 부잣집처럼 보였고, 앵두가 가득할 때는, 밖에서 몇 개만 따 먹어도, 이상하게 그저 그랬다.
한번은 모의고사에서, 전교 석차가, 전국 석차가 굉장히 좋게 나왔다. 그때 담임 선생님과 나는 무척 흥분하였다.
그러나 딱 한 번 그랬다.
나의 문학의 우월은, 군 제대 후, 대학을 다니면서, 풍자문학에 관한 영문학 논문을 학교 신문에 응모할 때 잘 드러났다. 그리고 헤겔 철학적 미스유니버시티의 영문 에세이를 영자신문사에 응모할 때 드러났다.
그 둘은 지금 내게도 빛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