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그것은 전반적으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특장점이 있다면, 음식맛과 날씨, 온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는 잊는다. 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기 재산이나 사랑하는 사람 같은 것은 잊지 않는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주는 진정 아무 특별한 것이 없었다. 광주는 짓눌린 사람들이었다. 지눌 같은. 서울도 그렇다. 서울도 의사소통행위이론 같은, 그런 것에나 천착하는 나남출판사 같은 이들이었다. 내가 남을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겠느냐 같은 것들. 우리들은 의사들을 많이 보지만, 그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사귀고, 그러다가 의사가 되는지를 모르지 않는가? 의사소통행위이론이란, 실지로, 의사를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서울은 대단한 철학자 한 명 없고, 조용필이나, 조용기나 있고, 쟝 보드리야르 같은 이를, 세계적인 인기 철학자 같은 이를 한 명 배출한 적이 없다. 광주는 풍전등화 같은 데였고, 전등사, 그리고 증심사 같은 데였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시인이나 철학자 한 명 없다는 것보다는, 어쩌면 그런 상태로 교육제도가 유지된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광주의 그와 같은 무심하고, 증심한, 그런 것이 사탄을 짓눌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민주화운동.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공부는 이상하게 잘하고, 항상 좋은 영화 보러 가기 운동본부 같았던 나......
그리고 광주는 동이름들이 그렇게 사탄을 짓눌렀었다. 방림동. 유동. 주월동. 봉선동. 화정동. 계림동. 풍향동......
자세히 보면 그것은 공각기동대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실질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탄은 온몸으로 두려워하고, 감지하다 못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사탄이 결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전대와 조대의 문과대 수준이었고, 아무 뭣도 없는 호신대가 있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광주대. 광주여대.
서강전문대.
사탄은 그런 흐름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아무런 영화적인 피치도 없이, 맹탕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겠다 싶어서 구입한 꿀대추차가, 이도저도 아닌 것이다. 대추도 아니고, 꿀도 아닌.
그러나 내가, 공부하면서, 영화볼 돈만 있어서, 영화 보러 버스 타고, 돌아올 때는 걸어오는, 그런 육이오 전쟁의 북진의 모습 같은 것에는, 진정 쇼팽의 푸른 노트 같은 것이 있었다. 그 가보지 않은 작은 영화관의 높이가 좋았다.......
우리는 최초의 최인훈의 광장을 상실하면서 살게 된다.
무등산을 보면 그런 사각형을 닮은 데가 있다. 그리고 조명가게 같은, 조대 정문에서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