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착잡함
어떤 이가 서울대 철학과를 입학해서, 자기 자신은 물론, 삼촌, 여동생, 학교 친구들 할 것 없이 모두, 한국 철학계를 한번 씹어 볼 것으로 예상을 했으나, 그 모든 하늘, 도깨비 같은 대사, 봄꽃 축제, 그런 것들을 모두 보내고, 다만 로스쿨을 가거나, 치대 같은 곳으로 전과를 행하면, 얼마나 마음이, 자기 자신은 물론, 삼촌 여동생 할 것 없이 착잡하겠는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아서, 사람들은 치대만 가도 환장을 했었다. 약대. 지금도 없지 않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 사람들의 여가가 확대되는 만큼, 적어도 시간, 사람들이 드라마를 목구멍이 차오르도록, 차오루, 보고 또 보아도, 또 보는, 시간에 이르러, 일종의 영국의 어거스턴 피리어드, 갑자기, 웬걸, 재패니즈 걸, 착잡함의 고급스러움이 생긴 것이다. 서울대는 거대한 기계가 하나 있는데, 성지루, 그것은 아니고, 철학과가 그다지 관심의 집중을 받지 못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철학자 같은 이가 없는 관계로, 대충 얼굴 마담으로 국가나 민족이 그런 것을 만들 수도 없어서, 외국 사람에게 시진핑을 말할 수 없었다던 중국 어떤 사람처럼, 그러나 철학과가 갑자기 어떤 분위기 팽창과 맞물려, 대체 누가 있고, 적어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한 명의 의인이라도 있는지 볼라치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일인 것이다. 보편적이고, 그리고 구체적인.
우리가 어떤 가상공간이나, 이야기, 그런 것들을 주식 상장할 수 있다. 그것은 입장권 십만 원을 내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책들을 읽을 수 있고,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으며, 공부하다 지치면, 블랙핑크 제니가 이상한 옷차림으로 춤추고 공연하는, 그런 곳에서 쉴 수도 있고, 함께 춤출 수 있고, 완벽한 방음으로 되어 있어서, 그리고 그런 것들이 너무 피상적이다 싶으면, 추사 김정희의 친구? 이상적, 넌 너무 이상적이야, 노래에도 있는, 이상적, 그런 이상적인 공부를 꿈꾼다면, 그런 공부 간증하는 모임에 참여해서, 너무 피상적으로 공부했다, 너무 요약적으로 공부했다, 너무 날씨 기상청 사람들처럼, 섹스 엔 시티, 너무 남의 자료들로만 먹고살았다, 이상적인 애플은 가질 수 없어도, 애플사, 그런 간증을 통해, 적어도 일본 음식만큼은 먹고자 하는 모임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십만 원이고, 각종 음료수, 커피, 샌드위치, 그리고 음악 감상, 할리데이비슨과 비엠베의 지원으로 가볍게 한 삼십 분 오토바이도 탈 수 있는, 그런 모든 스타크래프트, 도서관 입장권이 십만원인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모든 곳, 그런 개념으로다, 어렵게 도착했더니, 십 만원은 이미 내고, 그랬더니, 그런 개념의 건물들이 실제로 있는데, 쇼핑몰,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이미 그런 착잡함에 훈련되어 있으나, 건물이 아직 안전 검사를 받지 못했고, 오토바이는 지원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고, 그래서 출입 자체가 되지 않아서, 돈은 환불이 되지 않고, 약 삼만원 가량의 순대와 돼지 국밥만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십만원 강탈 사건에 분노하다가, 서해 바다가 보이는, 마동석 주연의 황야, 그런 배경의 어떤 곳에서, 순대와 돼지 국밥을 양껏 먹고도 십만 원만 받는다고 하니, 가슴 위로 착잡함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꼭, 태극기의 국기 게양식, 그리고 하강식과 비슷한 것이다. 노원구. 게양구. 계양구. 인터넷 쇼핑몰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안에 털이 달린, 가벼운 재킷을 샀는데, 털이 자꾸 빠지면, 뒤늦게 그런 댓글들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디자인도 좋고, 가격은 정말 좋고, 그러나 인간의 머리털 같은, 나이를 증명하는 것 같은, 생기의 털들이 자꾸 빠져서, 한 몇 번 입으면 하나도 남지 않겠다고 한 사람의 말이, 그나마 착잡함을 무찌르는, 간결한 언급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가 원래, 완벽한 쇠고기 뭇국 같은 상태가 아니라, 차돌박이를 넣은 육개장처럼, 드라마를 많이 보면, 그렇게 걸죽하고, 우리들의 뇌가 왠지 모르게 차갑게 되고, 잡스럽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자들은, 모두 예술의 이상에, 자기의 모든 머리 모양, 옷모양, 속옷 모양, 거들, 그리고 일본 사람 브라자, 그리고 유행, 학교 공부, 그런 것이 달려 있었으나, 떼이야르드 샤르뎅, 프랑스 사람처럼, 겨울날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아름다운 외투를 입고, 이대 근처의 상권이 모두 몰락한 관계로, 달의 몰락, 더 현대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날씬 걸이고, 그의 친구는 핸섬 보이인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현대 철학의 보고 혹은 비판처럼, 여자들은 마치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드라마들이 착잡해지고, 우리나라는 그나마 과거에 오에스티 생산국가였는데, 올인, 그리고 대장금, 지금은 그와 같은 새소리들도 뚝 끊기고 말았는 것이다.
황야 같은 곳에서, 마동석이 악어를 잡는 곳에서, 그나마 괜찮은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인가? 그것은 이순신 장군의 본선 같은 위용인 것이다. 가벼운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상대적인 것도 아니다. 뭐 그렇게 대단하거나, 아파트 촌 바로 앞에 있는 대형 마트보다, 더 직접적이고, 사랑받는 곳도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전후를 모르는 상태로 진행할 때는, 적어도 에슨스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군들이 온갖 공포물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 드라마들을 보아도, 못지 않게 아름답고,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어째서 북해도로 오토바이 여행을 떠나는지 알지 못해도, 그런 숱한 임진왜란의 선박은 되는 것이다. 어째서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학점 관리를 실패하고, 대충 떼우고는 졸업하면 될 일이지만, 마치 죽는 것처럼, 중도 포기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인가? 일본이건. 한국이건. 중국이건 할 것 없이. 그것은 어느 한국 남자 가수의 아름다운 대만 아내였던 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비슷하다. 대학의 공부에는, 분명 진지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관 없지만,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못지않게 웅장하고, 팽창하는 우주 같고, 내가 다만 광주 시골집에서 공부하고, 가끔 오토바이만 탔어도,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빅뱅 같고 그랬던 것이다. 같은 이치인 것이다. 드라마는 적어도, 그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착잡함을 알면서도, 윤석열처럼, 계엄령을 선포하고, 붙잡히고, 재판받고, 어떻게든 드라마를 또 하나 더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의사소통행위이론적으로, 의사소통, 중지가 모이는 것이, 메디칼 드라마이다. 옛날에는 그저 그랬으나, 지금은 툭하면, 메디칼 드라마이다. 윤석열은 재판받고, 메디칼 드라마는 해도 되고, 그것은 진정 형평성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우주에서 아기도 낳다 보면, 우리들의 슈퍼맨의 비애는 갈 곳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삶의 전후를 모르던 우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드라마가, 그러나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면, 멀쩡하던 우리들이, 존재의 전후 사정을 모르는, 모나드가 되는 것인 것이다.
아들이 대입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어머니들이 시험장 학교 정문에다 엿을 붙였던 것은, 일종의 착잡함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얼굴을 보면
그것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