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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의 흑인대학교 설에 관한 보충 발언

by 마음대로다 2025. 4. 9.






우리는 어떤 특별한 자리에서, 토의를 하고, 우리는 늦게 도착하고, 도대체 서울대학교가 무슨 흑인대학교인지 자초지종을 모른 채로, 보충 발언을 하는 것을, 앉자마자 초긴장한 상태로 경청할 수가 있다. 서울대학교라고 하면, 내로라하는, 그런 옛날 천리안에서의 갈무리, 혹은 포토샵에서의 누끼, 그런 내로라하는, 변진섭의 로라, 로라, 사랑하는 로라, 그런, 북경대학교, 동경대학교, 그렇게 삼합을 이루고, 자웅을 겨루는, 웅녀가 있기 때문에, 누가 여자인지 논쟁하는, 그런 막중한, 남자 가수 육중한, 그런 존재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그렇지는 이미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런 존재의 존재성은 남에게 밀어준 지 오래이고, 이토준지, 설마, 마사까, 그나마 수재와 준재, 영재와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정신없이 변하는 것을 룰로 삼아도, 학생들은 저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선을 다해서, 목적이 없어도, 최고 대학에 입학할 것이라는 신화 같은 것, 롤랑 바르트 같은 것, 그것이 그만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목에 누군가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것 같은, 자각 혹은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이 도덕이 없이 똑똑할 수 있는가? 도덕감정론 같은 것을 가르치는 대학이, 우리나라에 포항공대, 혹은 북한 김책공대, 그럴 것인가? 아니면 한 군데도, 그런 말은, 책은, 문제제기는 한국땅에서, 경찰들도, 한 명도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그만 만연한, 누군가의 만연집 같은 것, 정약용보다 덜 좀비스러운, 그런 만연집 같은 것인가? 도덕이 없다면, 지식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흑인대학교로 낙인이 찍혔다. 그것은 철학과 학생들이 그냥, 그 똑똑한 머리로 다만 로스쿨을 간다는 것에서 증명이 이미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이미 생산력으로만, 리비도로만 학교에 입학한 것이고, 생산관계의 마땅한 본이 없기 때문에, 일본 문화, 만화, 그런 문화에 탐닉해 들어가는 것이다. 채만식. 유종호. 함석헌. 그런 것들의 일렉트리시티가 아무것도 도덕감정론의 문장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일단 그만한 학교와 세미나, 훌륭한 여학생이라는 잉여에 의해서, 애초에 제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다석 유영모. 그렇게 수영하면, 자하연에서, 그러면 전부인 것이다. 민족의 미래를 보려거든, 흑인대학교. 그렇다고 한다면, 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있겠는가 싶다. 다산관도 그렇다. 다산관 다산관, 틈만 나면 세미나를 거기서 했는데, 세미나는 세미나대로 하고, 다산관은 내가 이미, 서울 사람들이, 그 저녁의 흑인대학교의 전부에 걸쳐, 이미 다 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만 원권을 받고, 이미 보신각의 종소리로, 서강대 다산관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의 잘못이 있다면, 그와 같은 타스만적인 강력한 존재에, 인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일 것이다. 나는 겸손했고, 나도 다산을 좋아했고, 잘 읽지는 않았으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그런 느낌으로다가, 먼 나라 가까운 나라, 그랬던 것일 것이다. 인간은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처럼, 인간은 한강의 괴물이 반인 것이다. 여자가 세상의 반인 것처럼. 영화에서는 절반이, 인간이, 서울이, 괴물인 것이고, 괴물이었다가, 우리는 아니었다가, 아니었다가, 자세히 보면 왜구였다가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유빈이 경기 중에 탁구공을 깨 먹으면, 우리는 서울대의 알에서, 에일리언처럼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런 문건도 없이, 다만 인간이 다석 유영을 한다고 하면, 외국 책들도 읽고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어쩌면 학교도, 교육 제도도, 수업도 필요가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조국의 미래를 보려거든

흑인대학교의 때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양이 그 옛날의 훌륭한 문장들이나, 맥심들, 믹스커피들, 음악들, 그런 것들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모범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도덕이 없다는 것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 자기 모범이 이미 삭제가 된 상태로, 오직 플래시 메모리로만 맹렬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한창 그와 같은 때에, 티비도 많이 보고, 책도, 특히 비평적인 문장들에 깊이 탐닉하는 것은, 서울의 켄싱턴 호텔처럼, 신라호텔처럼, 그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자기의 어떤 내적인 심리상태에, 모범이 될 만한 것이 있겠나 싶은 것이다. 우리 때도, 강 무슨, 인간 어떤 그런 책들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게서 본을 구하고, 중국에서 활동 중인 성소처럼, 오직 내게서만 그 모든 성소를 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갈급한 만남을, 갈급함을 간과했던 것이리라. 아이들이 금방 똑똑해진다는 것은, 한국에서 철학이 발달하지 못하는 핑계 같은 이유이다. 한창 바쁘고, 자기도, 옆 사람들도, 똑똑할 때는, 냄비 근성이 남의 것 같고, 저녁도 아닌데, 흑인대학교라고 불리는 것이 남의 일 같고 그렇다.

그래서 철학과 학생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로스쿨로 가는 것인지 모른다. 뭔가,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한국말의 본을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