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이성백 감독의 절대 이성주의 영화를 보다 보면, 다른 때는 해당 분야의 지식이 하나도 없는 엠제트 세대의 감독들이 찍은 영화들도 볼 수 있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나, 우리가 지금 영화를 하나도 볼 것이 없고, 다만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사탄의 중국 영화나 창궐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그 몇 개 안 되는 에피소드가, 세계 영화제나 각종 문학상들을 휩쓰는 것을.....
휩쓰.....
아름다운 우리말..
야구 감독이 옵사이드 작전을 펼치거나, 상대 팀의 옵사이드 작전을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대목이 있다. 내가 그것의 표면만을 보고, 훤히 그 내용을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말이 우리에게, 그 장면이 우리에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처럼, 포르세 바스타, 아름답게 들려온다. 한국은 지금, 세계 모든 관념들의 지배, 피지배적인 속성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어느 영화도, 민족도, 단어도, 나라도, 우리를 압박하고 있지 않다. 지금 우리는 철저히 옵사이드 작전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을, 매우 단계적으로, 마땅한 정보적으로, 그러나 본심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하고, 판단력을 둔하게 하고, 관념의 건실한 높이를 갖지 못하게 하고, 소인이나 되게 하는, 그런 맹렬한 감각적 확신의 세계로 만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사탄.
사탄인 것이다.
야구를 보다 보면, 항상 사탄의 지배가 노출된다. 어떤 단어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세계 타이거즈 클럽도 없는데, 라이언즈 클럽이라고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지리산에 곰들을 풀어놓고, 곰은 사람을 찢어, 그런 인터넷 말들을 유포하고, 창궐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말의 자유가 있다지만, 외국 유명한 팝송, 지네. 그것이 우리들의 지네, 영어로 센터피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의 자유가 항상, 누군가 지지니까, 울면서 소리 지르는 것까지 나아가고, 말의 자유가, 항상, 중국인 왕희지나, 그런 것들을 초대해서, 성기에 먹물을 묻혀, 팔만대장경을 다시 판다고, 음각이나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것이 연상이 되었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중국인들이 한국어를 모르면, 영원히 알 수 없는지, 아니면 자기들끼리도 그런 것의 경험적 비밀이 유포리아, 나이지리아, 사이베리아, 알려져 있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 난중일기에도 그런 대목이 나온다. 마다시다. 마다시다. 그렇게 외치니까, 그를 잡아다가, 묶고, 성기에 먹물을 묻혀, 자기들 존쓴을 찬양하는, 자기들 존쓴빌을 찬양하는. 그것을 그렇게 대놓고 기록할 수 없으니까, 대신에 우리가 그런 일본군 장수를 잡아다가 죽인 것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 허균도 그렇다. 허균도, 도리어 근대적 소설을 쓰니까, 존쓴을 찬양하고, 참혹하게 사람을 죽이고, 존쓴빌을 찬양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묶은 것일 수 있다.
그것이 다 말의 자유가 갖는, 버뮤다 삼각지 같은 것이다. 어느 것은 협박이고, 어느 것은 정보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협박이고, 이것은 정보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
내가 학생 운동을 싫어할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경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그것은 한강. 그것은 세노야. 그것은 한계령. 김계령. 그랬다......
그것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나무의 영원한 불을 목격한 것과 엇비슷한 것이다.
나는 나고, 모세는 모세인.....
성영탁은 성영탁이고, 탁재훈은 탁재훈인.
사람들을 비좁은 데로 몰고는, 탁하게 만드는 사탄의 재주가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 중이다. 이재주. 김재주. 그런 타자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다들, 쿤밍화되는 것인가?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이성백 감독의 영화, 야구 경기 중에 행했던 옵사이드 작전을 한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옵사이드 작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대신에 우리는 사탄의 거대한 동탁의 불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쉽지만, 이것은 영원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사탄의 영원히 불타는 동탁을 우리가 부인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늘 우리들의 프로야구가 사탄의 권력 과시의 현장이라는 것을, 우리의 에너지가, 그것들을 욕하는데, 전부 소진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경찰들은 옛날부터, 주자가 자기들을 영화처럼 보고 있다는 공포나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주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때마다, 자기들이 사람들을 한 사람씩 죽여서, 시범을 보여서, 자기들이 어떻게 승급하고, 승진하고, 로또에 당첨되는지, 그것들을 항상 알려주고자 했다. 그것은 핵심이다. 그래서, 그들이 다니는 데마다, 경찰복을 벗고, 그럴 때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것들이 어쩔 수 없이, 구슬처럼 굴러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회전 벌금 같은 쿤밍 경찰들의 주장은, 내가 그들처럼, 북한 경찰이나, 일본 경찰, 중국 경찰이 되기를 간곡히 원한다는, 일종의 염력 같은 시위이고, 행동들인 것이다. 마누라의 막박을 벽에 쳤더니, 회사가 하나 떡 하니 주어졌다는 것은 오래된 정원 같은 것이다. 국정원. 후회는 없다. 다음에 그 마누라가, 죽이기, 그러니까 사시미 칼로, 자기가 칼을 맞았다는 것을 실감할 때까지,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가 죽어서 그런 일은 없지 않은가 할 것이지만, 단계가 있다. 프로야구도, 자기 몸이 아닌 것에서부터, 중간 몸인 단계, 의지가 있고, 노력이 있고, 덧붙여 있고, 그래서 무로부터의 의지가 생기게 되면, 마침내는 완벽한 자기가 되는, 그것의 백 퍼센트의 대수가, 여자들의 성욕이 될 것인데, 처음에는 여자가 맞고 살다가, 나중에는 실지의 힘이, 빨래나, 요리를 많이 해서인지, 회사만 겨우 다니는 남자를 이길 때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깡패를 오랫동안 다니게 되면, 나중에는 강원도 횡성을 지나는데, 칼들이 일어나 반응하는 신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자기 막박을 벽에 쳐서, 머리가 터지게 하고, 자기는 이런저런 회사에 부장으로, 이사로, 승진하던 것들을 마음껏 죽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만 죽였다가, 나중에는
마음껏......
*
조용필의
꿈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