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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부산에서 나올 때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경주를 가려고.......

by 마음대로다 2014. 3. 18.

부산에서 나올 때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경주를 가려고.......

 

 

 

 

 

 

 

 

극단적인 불가능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배경음악 베스트오퍼(2013) ost

 

 

 

 

 

 

나는 예수님처럼 나는 나였다. 나는 데이스타가 있었고,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나를 직업으로 가족으로 같은 말이지만 하는 일로 옭아매는 사람이 없었다. 돈이 많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돈이 없다면, 부산에서 벤츠나 비엠더블유 오토바이를 살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고시원에서는 밥을 주고 있었고, 상대등처럼, 더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수도 있었다. 부산에는 유명한 음식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은 허기가 정신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고소한 숭늉 같은 커피를 사람들이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튀김이니, 떡이니, 고갈비니, 호떡이니 하는 것을 다 먹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나는 워치아웃, 도저히 임권택의 영화가 호가호위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출정을 결심하였다. 그것의 구름은 영도구에 어울렸고, 내게 해주는 것이 없는 고신대에 어울렸으며,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저 멀리서 방래한 여객선도 그러하였다. 경주로 가기로 했다. 경주로 부산에서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으로 그것을 결정하는가? 모든 것을 일거수일투족 설명하고 조절하고 말을 해주는 오피스레이디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일까?

 

 

 

 

 

 

 

자주 가는 부산 시청 오거린가 육거린가에서, 그것은 흡사 포미닛, 누군가 해찰을 했다. 나는 나의 도시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오토바이를 정차한 뒤에 얼굴을 확인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사탄은 우연의 섭리처럼 행세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엑소더스가 이렇게도 어렵고 지난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산 남쪽의 구의 이름을 예상치 못하게 거의 외울 무렵으로, 다시금 북쪽의 구가, 옛날부터 귀속에서부터 진파 되었던 것을 상기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시원스레 질주할 수 있는 외곽으로 빠져나가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했다. 그것은 지금 글을 쓰다가 발견하는 것인데, 사람이 죽지 못해 사는 사소한 이유들 같았다. 더 큰 이유가, 너무 커졌어의 가사처럼,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금천구, 도봉구, 그러다가 기장군이 나타나는 형세 같은 것. 모든 투어리스트가 에이에서 비까지, 다시 비에서 에이까지, 불멸의 보컬그룹 아바와 같은 시방삼세를 경험한다. 우리 영화 제목에도, 동박독응, 신조협려 같은 것은 있어도, 삼라만상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아주 가능하다면, 시방삼세가 유행의 힘을 빌려 부산의 작은 소년에게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타나지 못한다. 못가는 것이 아니라 안가는 것일 수 있는 부산에서의 경주 같은 것. 우리가 넘치는 자동차의 엔진 힘을 빌려서, 단번에 동방독응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 길이 그다지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래도 내가 간다고 간절곶까지는 시원한 국도를 뚫어놓았다. 그와 같은 현세 말고, 어느 정도는 전세, 전생을 함축하고 있는, 그 길을 나는 가리킨다. 내가 알고 있는 천사들이 주유소에서 놀고 있다가, 내가 가는 길에 작은 말벗이 되어 주었다. 다시금 우리 데이스타를 칭찬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중요하기 때문이고, 코스모폴리탄들은 더 좋은 오토바이를 많이 타보기 때문이다. 내가 차가운 북방의 왕자처럼 데이스타를 불성을 갖고 끌고 오면, 내가 그들 망막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오묘하게 보일 것이다. 속도가 못지 않고, 기름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시금 화살이 박힌 영국 사람 히든스가 된 것처럼 감탄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런저런 아울렛들로 가득한 길을 질주하였다. 얼마나 처음 가는 길이라는 것은 영화로우면서도, 긴장되고, 모든 미스테리우스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종의 임사체험 같은 것인지. 그런 것도 있는 것이다. 죽음이란 게 대림 데이스타를 타고 에이에서 비까지 이동하면, 성경의 에녹처럼, 세상으로부터 트랜스포메이션된다고 한다면, 딱 나와 같으리라는 느낌은 그 순간에도 있었다. 점점 더 녹지의 비율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울산이 나타났다. 태화강에 놀러오라고 하도 성화여서, 나는 다리를 지나면서 핼멧 속에서 그렇게 외쳤다. 그래 이번 한번 왔다. 그 놈의 태화강 태화강 ^^......... 태화강은 아름다웠다. 아름답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동해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광주에서 서해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강을 만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남해와 관계를 맺는 강도 만나지 못한다. 옛날부터 바다와 관계 맺는 강은 배반의 장미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구언에서도 검색 당하고, 남해도, 서해도 아닌 곳으로 영산강은 빠져나간다. 가기까지, 그것은 풍부하며, 담양은 말하자면 네임리 고여 있지 않는 호수의 풍경 같으다. 백양사가 늘 약간 삐딱한 것이, 그런 이런저런 다채로운 이유를 갖고 있다.

 

 

 

 

 

 

 

마치 개인 깊은 곳의 선착장 같고, 이카루스의 강 같다. 우리는 점점 세상은 지구온난화.........

 

 

 

 

 

 

우여곡절 끝에, 표현이 아니라 실제 도로가, 그렇게 아주 오래된 국도를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경주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말한다. 경주가 얼마나 큰 도시인 줄 아느냐고. 사람은 능력과 무게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위성도시와의 아귀다툼 끝에 비중이 결정되는 것으로, 그러니까 상대적인 보스감에서 사는 것일까? 부산은 포항에도 강력하지 못하며, 울산에도 재산을 떼어준다. 마산 창원에도 바닷가를 내어주고, 롯데 자이언츠도 엔씨 다이노스에게 구장의 심리적 목표권을 할애하였다. 광주는 그렇게 강하지 않으나, 순천이나 화순, 장성이나 담양, 장흥이나 영광 등이 찍소리를 못한다. 곡성은 저항하나, 무슨 이유라던지, 근거라던지 그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너무 크게 보고하면, 그것이 때로는 저항처럼 들린다는 원리에서 그러하다. 금성향교는 있는지도 모르고, 유명한 고건축이 소쇄원이다. 그러나 부산은 그렇지 않다. 그 막대한 물동량. 센텀시티. 해운대 새로운 거대 건물들. 국제항과 국제 비행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때로는 부산 사람들의 서울을 가져가고 만다. 부산 사람들은 독재가 뭔지 모른다. 대구도 있고, 진주도 있다. 사람은 자기의 도시가 독재권이 빈약해서도 괜히 죽고 싶은 마음에 이끌릴 때가 있다. 매우 고급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경주가 아닐까 한다. 해인사는 합천 해인사이다. 서울은 그래서 신흥 항만 도시로서, 부산 사람의 연구를 통해서 보면, 점점 사라지는 인사동 티카페의 본향이 아닌가 한다. 그것의 경희대학교. 마침내 얼굴을 만천하에 내밀고 만. 사람은 물론 실존주의로 산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본질을 모른 채로 실존주의하기란 게 정말이지 쉬운 게 아니다. 내가 경주를 내 앞 집 정도로 여기는 것과 같이, 부산 사람들은 북한 정도로 여기는 그저 스떼어웨이투헤븐性으로만 보일 때가 참으로 많다. 누구도 금관을 갖고 있지 않고, 누구도 석가탑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부산 사람이 만들어 놓고, 백제 사람 아사달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절대타자 같은 시간성은 그 말을 그만 호소력 있는 레전드로 만들고 만다.......

 

 

 

 

 

나처럼 시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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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질 않자, 다시 부산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