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어제 쑤리데이즈(7편)에서 나타난 암치질녀의 어학적 계단에 관하여

by 마음대로다 2014. 3. 27.

어제 쑤리데이즈(7편)에서 나타난 암치질녀의 어학적 계단에 관하여

 

 

 

 

 

 

 

 

 

그는 나타났다. 인비져블맨. 그것은 비지니스. 아일러브뉴욕카튼. 우리가 어린 시절에 비지니스라는 단어를 배웠을 때. 한강변. 그것은 밤섬 같은 것. 비지니스는 여의도에서. 서울에서 얼마나 왕이 나오기 어려운가? 서울은 현실추수주의를 배운다. 서울은 다곤신앙을 배운다. 지방이 독특한 코뮤니티 정신으로 이런저런 충남 예산을 가져갈 때, 서울시립대학교는 어떠한가? 가장 등록금이 저렴한 것으로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가? 나는 갑자기 오토바이 가격이 상승한 것을 두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일년에 백만원씩 육년간 꾸준히 오른 것 같았다. 그러니 옛날에 씨비 사백이 나왔을 때 팔백만원 정도 하던 것이, 지금 한국에서 발매가 된다면 천사오백만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오토바이를 보자. 그것은 현대 과학 정신의 신지츠. 바로미터이고,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문학을 리트머스 시험지로부터 배운다. 그가 산성으로 나오면, 얘가 약간 산성일 것 같고, 알칼리성으로 나오면, 왠지 모르게 포카리스웨트일 것 같다. 푸른색 스웨트를 입고 나타난 소년. 하자면 할 것 같고, 안하자 하면 안할 것 같은 한국 반도체. 사람의 산성은 거기서 모두 고꾸라지고 만다. 니키 패럿은 처음 듣는 여자이다. 그러나 나는 다곤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실정법상 문제가 없는 사람은 모두 로마 시민권을 발행하는 편이다. 서울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 카드라이버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공산주의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옆모습을 예뻐하고, 뒷모습을 예뻐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며칠 전에는 포미닛의 허가윤과 손을 잡고 뛰어가는 것을 꿈꾸었다. 다음 날에는 수주대토식으로 무슨 이런 기분 좋은 일이 하면서 잠이 들었는데, 익숙한 한국 여자가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완전 잡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응원자이고, 그녀는 나의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옛시절에 뒷모습만 예뻐도 좋아했던 것은, 별로 예쁘지도 않는 김영란을 닮았네 임예진을 닮았네 유지인을 닮았네 했던 것은, 다 예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학을 다녀온다면, 팔콘의 개가 되는 심정으로다가, 다만 다녀만 와도 사람이 외국에서 지내기 어렵고 공부하기는 더더욱 무등산에서 점핑해서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것인지를 경험이 없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목포에서 광주로 유학만 와도, 무안에서 목포로 고등학교만 다녀도, 사람들은 막연하고 모호한 지구에서 지식의 경합장 화성으로 마이그레이션 한 것 같은 기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광주는, 서울을 진출하기 위한 대성학원쯤으로 여긴다. 중간기착지라는 것은 사람이 끌어안고 죽을 만한 것이 아니다. 서울이 대머리 국회의사당처럼 보이는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가 무등산을 오르지 않고, 삼각형의 어깨를 가진 민둥산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소년이 일일공부를 할 때는 누나들은 의욕이 생긴다. 소년은 사람들이 처음에 세상을 즐겁고 순정하게 바라보는 니키 패럿 같기 때문이다. 전남 광주는 충남 공주와 그렇게도 가깝던 시절이다. 여자들은 대개 무지와 사이코시스를 암치질처럼 감추고 있다. 그것을 일명 암뽕순대라고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주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욕하고, 집기를 부수고, 밖을 나가는 것도 비슷한 원인이다. 그러면 돌아온 탕자처럼, 안탕자가 되어서, 부모님 말씀도 잘듣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가 보험처럼 해주는 돈을 맛보고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잘하는 성경이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 무지개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처음 중심, 돈을 써서 형상을 입고 싶다는 욕구가, 파산되고, 사탕이 서둘러 깨지며, 혀 위에서 천천히 녹기 시작하더니, 집구석으로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그래도 그것이 나쁜 것으로 재생산되지 않는 것은, 입은 반드시 그것의 육체의 근거처럼 깨끗해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낙엽이 지고, 년말을 결산해야 할 즈음으로는, 여자에게서 더이상 아우프헤붕되지 않는 것들이 발견되며, 그것은 사회성의 영원한 고고미술학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사회성이란 게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모르며, 또한 고고미술이란 게 얼마나 현대적인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소년이 영어를 배우면, 여자는 토플이나 좀더 복잡한 회화테이프를 사고 판다.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 신학영어를 배우면, 여자는 토익이란 말로 승부를 한다. 소년이 영어로 프레드릭 제이머슨이나 해롤드 블룸의 글들을 읽으면, 여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그때부터 유사행정이나, 유사휘발유 같은 언어들이 총출동하는데, 그것의 거대한 해안마을이 미국 그 자체라는 것이다. 손현주가 팔콘의 개라고 반복해서 말할 때마다 우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 말이 그렇게도 레피티타티브 콤펄젼 재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사동 지하실에서, 실제로 의협의 사람들이 안기부 고급 간부를 가두고는 취조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스개이기도 하고, 콤파스이기도 하신데, 그것은 자기가 젊었을 때 이상한 원인의 운동권 학생에게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녹음기는 없다. 다만 우리들의 관념이 없음이 녹음기인 셈인데, 눈이 퉁퉁 부으면서도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는가? 그 둘의 학생 순수성이 태풍의 눈처럼 오마쥬하면, 팔콘의 간부 중에 한 명은 점심 식사 중에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된 영문으로 미국이 한국을 자기의 식민지로 여기지 않겠는가? 그때는 별스럽지 않는 테이프들이 많이 오갔는데, 그 중에 번역해보니 팔콘의 개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크게 데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무기보다도 설명이 되지 않을 뿐. 프랑스로 휴가를 가서,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을 두고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그도 학생처럼, 공부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코티지를 두고 목청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이제 쑤리데이즈 더 이상 나올 수가 없다. 일본의 간장이 동반자의 입장에서 그와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높은 찬장이 될 수 있으나, 만일 것도 모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헛된 자부심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그것으로서, 아소다로? 소다나? 튀김을 찍어 먹으려 한다면, 우리의 백제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에나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그 맨처음, 팔콘의 개, 할버드에서, 혹은 예읠에서 셰익스피어와 헤겔 미학을 공부하려 했던 젊은 신현균의 포부. 젊은 육덕진 것들 사이에서. 그것의 카메라 현상.......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토피  (0) 2014.03.31
그러나 우리는  (0) 2014.03.31
그래도 너희는  (0) 2014.03.23
죽음은 화학 같은 것일까?  (0) 2014.03.23
하여튼 강운태 십쌔끼  (0) 201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