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불패(1992)는 과학인가? 아니면 이념인가?
홍콩이 영화의 장보고가 된 연유가 무엇인가? 홍콩이 영국 식민지이자, 엘리트 한국 거주인들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영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고 지나면서, 그것이 영속성이 있지 않다고 얼른 다른 편안한 얼굴로 다시 지난다. 악마는 찐드기 같고, 사람들은 굉장히 천사 같다. 비교급이 없고, 천사들끼리 경쟁하다보니 악마들이 신사처럼 입고 말하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질이 들면, 악마들도 비단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서 활보할 수 있다. 그것의 시간차. 광둥어를 잘한다는 것. 그것의 서정주. 한국어를 잘못하지만, 한국에서 대표적인 시인이 된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짓누른다. 남자로 오래 있지도 않으면서 남자처럼 군다는 것. 여자로 오래 있지도 않으면서 여자처럼 사람들에게 군다는 것. 헤테로섹슈얼러티로 있지 않으면서, 어떤 경우에는 기타 치면서 자기는 헤테로섹슈얼러티로서 티비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진리 질량 계수에서는 제로보다 못하는 것들이지만, 당구공들이 달걀 깨지는 소리를 내면서 멍청이들의 정신적 내비침 다비침 부딪힘의 효과를 돌보는 것이다. 그것을 좀더 매끈한 방정식으로 정리하면 좋으나, 아무튼 대충 천리안 갈무리가 된다고 여겨진다. 천리안 갈무리가 있었을 때, 어쩌면 전도현의 덥석은 단 하나의 증거로써 너무 약하지 않았나 싶다. 피씨통신은 덥석 하나만 있고, 종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한 사람인데 팔월의 크리스마스를 낳았다. 그것의 매개는 영화 종사자들이다. 하드웨어와 기간산업을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어째서 소프트한 것일까 하는 레플렉션 같은 것. 일부로 하드한 것을 들어올려보고, 헬쓰클럽에서 남에게 지도도 받고, 사람들이 식당에서 남에게 공짜 음식을 먹이지는 못해도, 헬쓰클럽의 꽃과 같이 몸과 마음이 일치할 때는, 좀더 재미와 요령을 북돋는 기분으로다가, 그런 압구정으로 고향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어색한 연결이긴 하지만. 여자들이 도민준과 천송이를 보고 러닝머신을 점령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우리끼리의 해외토픽이었다. 해외토픽을 우리가 생산하고, 해외토픽을 우리가 소비하는^^ 사람들은 설왕설래 호가호위 말이 많았다. 냅둬라. 한 시간 정도 뭐 어떠냐 하는 사람이 있었고, 여자들이 염치가 없다, 티비 볼려면 집에서 볼 일이지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자는 휴머니스트고 후자는 과학주의자이다. 휴머니스트에게서 사실 산업의 발전은 일굴 수 없다. 과학주의자도 아니고 다만 여성혐오증 일종의 불평불만자의 말일지라도, 후자의 것에서 우리는 아이템을 얻고, 다음 계단으로 진일보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다면 집에서 티비로 보지 않고, 헬쓰클럽에서 러닝머신으로 보았던 것일까 하는........
나는 내가 좋아하던 난봉황이, 거기 나오는 여자는 다 좋았지만, 관지림과 임청하의 대결은 불꽃이 작렬했다. 관지림은 한국문학을 알았고, 자기는 영국에 종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처럼 흡성마법을 가진 남자 주인공은 넉넉하게 동양인이었다. 그가 거대한 사슬 달린 쇠갈퀴의 주리론을 전개할 수 있을지는, 늘 만화 바깥에서 신지츠 일본 경찰의 섬세한 조사를 받게 되어 있다. 여자는 아니지만 그가 거론되고 말았다. 임청하가 나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녀는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머리를 식혔다. 일종의 풀무질 당하던 낫의 붉은 철이 물 속에 넣어져 그 병적인 형태로서의 닭벼슬이 안정하던 형상. 그리고 여자로 많이 있지 않으면서도 여자로 있고, 남자로 많이 있지 않으면서도 남자로 있던 시간에서 탈피, 처음으로 자기는 예쁜 여자라고 선언하던 시간. 동양적인 배경음. 우리는 매혹당했었다. 난봉황은 도중에 죽고 만다. 사람들은 난봉황도 내가 사랑하던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과학과 객관을 갖고 있다가, 적들의 가래를 스스로 정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겨우 관지림을 유지했으며, 플라톤 읽기를 좋아했었다.
홍콩 영화를 이념으로 해석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서정주가 일찍 죽을 것을 예언한 사람도 오직 나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중국 영화가 반쯤 죽은 난봉황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된 것은 일종의 고대 과학적 필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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