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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문명 혹은 문학은 억지로 추대하는 것이 아니다. 통한다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 에리히의 보론

by 마음대로다 2014. 4. 29.

문명 혹은 문학은 억지로 추대하는 것이 아니다. 통한다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 에리히의 보론

 

 

 

 

 

 

 

 

세계는 지금, 한국을 제외하고 이등국가가 어디인지를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간극 때문에 의식이 촉발되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했다면, 내게 금빛으로 반짝이는 골드기어스 무슨 말인진 몰라도 그것이 충분하여서 정신의 위격과 재산의 보충이 조화로웠다면, 당장에 일본이나 중국이 사람들에게 원플러스 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지 않는가? 중국은 늘 아편전쟁에서 지고, 일본은 늘 언제나 진주만 기습을 당한다.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당연하다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진 이유는, 우리가 근대사를 배울 때, 군사 기본 교육 조차 받지 못하는 척박한 시공간을 생각해야 하는데, 무술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 아편전쟁에서 진 이유는 아편을 많이 피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대중국 주체 사상이 강렬해서, 헤게모니가 서양에 뒤진다고 해서, 자존심에 그런 데카당스를 치렀느냐. 아편전쟁에서 진 이유는, 관리들은 무능하고, 그 때문에 전쟁은 빠가야로를 열 번이라도 제대로 외쳤던 일본에게 지는 것으로서의 단체 세포였던 것이다. 자기들도 어쩌 지를 못한 주제에, 한국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기현상. 일본은 군사 교육을 그나마 잘 시켜서, 앞으로 천년 동안 한국과 중국에게 할 수 없는 분풀이를 일찌감치 후쿠자와 유키치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의 과거는 마치 루즈벨트처럼, 거대한 구명 혈처럼, 그들 두 국가의 선생과 학생들을 사로잡는다. 발목잡는다. 네잎 클로버는 중국을 사랑한 한국 사람 나폴레옹이 저 먼나라 전쟁에서 도리어 빠지게 된 연민일 수 있다. 받침이 없다는 것. 그것은 안정적인 명제를 불임상태로 만든다. 고전의 번역도 어렵다는 것. 지금껏 뭘 했느냐는 중국 대지의 오직 작품으로 말하는 자연주의 작가의 주소지 불분명.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또 번역하는 것이, 단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 한강이라는 것. 중국 고전을 중국 고전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훈민정음 헤례본보다도 붙임성이 없다는 것과 같은 구조. 네잎 클로버. 그러다가 콜레스테롤 많은 음식으로 음식남녀 빠지기 시작하면, 세상은 급격히 비정성시가 되고 만다. 그렇게도 당태종을 부르지 말라 일렀건만 돌아와보니, 마치 당태종처럼 올백으로 하고 있는 중국인 아내의 첫째 아들. 그것의 숫자는 분명 황제의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고을 수령으로도 넘치고, 라이프니츠의 보편인격의 수열로써 보아도 황진이보담도 못하는 것이다. 중국이 앞으로 아편전쟁에서 질 일이 없다는 것은 안정적인 세계질서를 도리어 나타낸다 하겠다. SUV를 타고 부지런히 서예 하면, 사진 작가 하면, 분명 서경덕이나 왕양명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심리적이기도 하고, 실질적이기도 하며, 엑소시즘적이기도 하다. 그들이 펭귄을 펼쳐보면 그것을 두고 블러핑을 주장할 만한 가공할 만한 삼천궁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의자왕이 섯불리 불경을 펼쳐, 아무렇게나 남이 보는 것으로 기도하고 외식하고 관세음 보살 좋은 소리로 잘난 척을 하면, 삼천궁녀들이 대놓고 콧방귀를 꼈다. 잡으러 가면, 낙화암에 떨어져 죽었다. 물론 주자의 편에 서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도리어 왕권 강화 민주주의 강화에 도움이 된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정말이지, 야살의 책에 쓰여진 바의 정치경제학일 것이다.

 

 

나는 어째서 사람들이 공산주의로 띄워놓은 밸룬에 얼굴이 자주 비치는지 나도 의아해 하고, 사람들도 은근히 좋아라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뭔지 모르게 영혼이 건강하고, 싸서 그런가? 중국어로 짜요? 중국이나 일본은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다. 둘다 매운 것도 있고, 짠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깊이, 품위를 말한다. 소유는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가? 맑시즘의 회전판은 불필요하다. 장경동 목사가 오토바이를 선물 받았는데, 아주 비싼 것이기도 해서, 어디 놀러가면 주차를 해놓고 맘놓고 돌아보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것의 단순한 원리이다. 모든 물건이 소유주와 주변 사람과 화목한 소설이 된다고 하면, 명경지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유의 강박과, 거기까지 너무 많은 소중한 것들의 제거와 희생이 담긴 것이면, 우리는 어느 정도 앤트로피를 달성해서 살고 있던 참 세상에서 그만 쫓겨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의 각도. 그것의 기피. 사람들은 나를 기피의 천재라고 한다. 사람들은 나를 굴욕의 천재라고 한다. 사람들은 나를 사랑의 교회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중국주의자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중국 채찍주의자라고 말한다. 소유라는 한글 자음과 모음은 일본의 거대한 신사와 절의 건축의 모습 같이도 보인다. 어쩌면 이런 우주론적인, 다니엘서의 글씨 같은 일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물건을 달성해서, 금각사, 긴카쿠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정확한 타이밍.

 

 

 

그것은 참으로, 어쩌면 지금의 미국 영화 같은, 미국 일본 양동 합동이 나름 해피한 상태로서 감추고 있는 극단의 모순이 아닌가 한다.......

 

 

 

중국이 그와 같은 수월에 빠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책에서 읽은 것으로서의 김대중이 말한 바 일종의 사대주의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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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지는, 백제 전쟁 간의 엘리트로서의 여행자들을, 마음 깊이 점령한다........" - 순자, 어느 편에선가.......

 

 

-양정승, 마지막 안식처(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