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을 두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이터널 오브엑트.......: 이문열의 포틀랜드......
나는 주시경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전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주시경의 사전이라는 내용으로 특별히 거론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변과, 잡기, 종묘와, 사직, 사직들의 누적에 있어서, 그것들의 참고나 되었지, 우리들의 거대함은 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전을 편찬한 사람이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오욕이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이름이다. 현미경보다 낫고, 추기경보다도 낫다. 어쩌면 일제가 무르익을 때, 현미경을 하나 사고, 양파를 하나 사고, 그리고 추기경이 나오는 놉뜰담의 꼽추를 자주 본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비록 사전을 바담풍 적더라도, 사람들은 신텍스를 넘어 센텐스로, 그런 에밀졸라, 바이런, 장 크리스톱 같은 작가가 나오기를 소원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 시절에 어째서 유한부인이 되었는가? 전기는 다만 전기일 뿐이다. 우리는 평생 전기 고문 속에 살 수 없다. 다만 전기를 시간 속에서 잘 흘려보내는 것으로 사는 것이다. 그 시절에 우리는 단체 전기 고문 속에 있었고, 우리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기 물고기 잡이 하는 사람에게 힘 없이 떠올랐었다. 그래도 그것은 다만 비유일 뿐, 염상섭의 삼대를 보면 그렇게도 청요리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중국 요리를 많이도 시켜 먹었다.
이문열도 자칫 이름만 좋은 사람의 구멍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했고, 거기서 죽었는지, 빠져나왔는지 나로서는 판신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작금의 한국 작가들이 무엇을 먹고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모르는 처지에 이르렀다. 자연주의 작가 에밀졸라를 보라. 혹은 유명한 장발장의 작가를 보자. 에드워드. 홉스. 카릴 지브란. 다 아닌데.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않는 이라는 한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은 스탕달처럼, 적어도 무조건적으로다가 고전을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나 셰익스피어의 직계 자손은 아름다운가? 영화로운가? 그리고 볼테르의 현학과 해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마음이 카르티잔하는가? 얼마나 인력이 막강하면, 일본 사람들이 세계 명작 만화 애니를 만들었고, 플란다스의 개가 나왔겠는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다고 해보라. 머치아도어바웃나씽을 생각해보라. 십오야를 생각해보라. 소설가의 몰 플렌더스를 생각해보라. 톰 존스를 생각해보라. 그것들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도 똑같이 이문열의 포틀랜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이 뇌의 자기 발전, 셀프 일렉트리시티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선생이 학생을 늘 역사와 전기로 전기 고문을 하면, 자기들도 늘 강변에 나가 불법 어로 행위를 생각하다가, 그것의 천변, 그것의 질주, 그것의 야영, 그것의 삶과 죽음의 레전드, 그것의 흉가, 그것의 까치집을 모아다가 불을 피우기, 공부를 못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지능 지수를 늘 연모하고 넘보는 처녀 귀신, 공부도 못해서 처녀 귀신과 다를 바 없는 총각 귀신, 그들 중에 기적처럼 선생이 생기면 다른 학생들을 치마가 짧다고 전기 고문 하고, 노래가 야하다고 전기 고문 하고, 그런 것들을 모아다가 원귀옥을 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슬라보 지첵의 이데올로기론이기도 하다. 읽진 않았지만, 폐쇄 함수로서, 미국의 한 사일로 탱크 안에서 반드시 그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을 충분히 직관할 수 있다. 우리는 전자가 없다. 그것은 아톰이기도 하고, 오브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객관적이라는 말의 오브젝트이기도 하다. 신입생 때는 아톰처럼 뛰어가고, 오브제에 대한 부단한 탐구를 여자 친구에게도 행하다가, 물론 여기에서부터는 수준이 정해지는 것이지만, 나와서는 남들이 다 차려준 객관성의 망령 안에서 종교 비판할 때나 세계관의 허리띠를 졸라 보는 것이다. 이문열의 포틀랜드는 기사회생 같고, 가시방석 같기도 하다. 주시경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홍위병들에게 비판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뇌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보자니까, 보츠와나, 중국 충칭의 인구가 삼천삼백만, 거짐 남한의 전체 인구수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보았다. 교양은 기러기 같고, 영화는 여자들만 예쁘다. 남자 주인공을, 폴리탄들은, 그러니까 그 초록색 마이를 입고 있던 교회 여자 친구가, 절친의 계보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각도에 따라서는 예쁠 수도 있는, 계속 앙탈을 죽기까지 부리면, 중학교 때에 결혼할 수도 있는, 그 여자아이가 내게 갑자기 뭐 그리 잘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내 친구들이 많았다. 나만 뻥이 까는 것이 아니라, 다 얼어 붙었고, 나와 내 친구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가야국의 사람들이 자기들 평범한 공주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성인입장가 이문열의 포틀랜드를 본 적이 없고, 거짐 삼십년이 지나서야 우리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다. 사이언스하게 말하면, 그 시절의 어느 날, 나를 중재해서, 지금 상영 중인 영화 때문에, 여자가 화가 났고, 너는 그와 같은 유사문예영화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으니, 앞으로 수십년이 지나, 인터넷이라는 눈으로 모든 서류 작성 영화 감상 등이 가능한 전화 같은 것이 생길 것인데, 거기서 볼 것이다고 하는 것과 우리의 지금 모듬 안주는 비슷하다. 어쩌면 이문열 때문에 한국 소설 보기를 더디했을 수도 있다. 이효석의 글과 김동인의 글만 보고는, 관심이 하늘처럼 높았지만, 이문열의 비교육적인 철학적 문장 때문에 내 안에 울림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개념은 어느 정도는 안구의 조갯살 같기도 하다. 청년이 자기의 비린내를 많이 보태면서 연마하는 것인데, 오브젝트가 산만하면, 그나마 가난 중에 끌고 가던 것이 대상 없이 망가지는 경우가 생기는 법이다. 배가 많이 부르고, 사람이 완만하면, 그제야 구제 양복에 대한 그리움으로 펼쳐볼 수는 있다. 염상섭과 이광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유독 이문열에게서 바르다는 의미에서의 바로크가 아니라, 이지러진 진주라는 의미의 바로크가 엿보인다 하겠다. 그리고 그 시절이 이지러진 진주만이라도 나온다면 사람들이 폭풍 흡입을 했을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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