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까지 밀려들어오는 밀회의 망령
죽기 전에 가볼만 한 한국의 백경 중에, 제부도 가는 길과 탄도항 저녁 갯벌 풍경이 없는 것이 나는 의아했다. 그것의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너무나 이국적이다 못해 혹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하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많이 가는 곳이 정리되어 있었고, 그래서 순번에서 밀린 것일 것이다. 거의 모든 산꼭데기는 절경이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가 죽기 전에 모든 산을 올라야 하는 법인데, 그와 같은 방정식 때문에 산도 아닌 바다에 닿을 정도로 평평한 곳이 제하여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를 보자.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순전히 지가 한 번 관심 갖고 가본 적이 있다는 사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전집. 그것이 책이라는 삼합회, 혹은 슈퍼컴퓨터에 저장이 되어 있을 때를 상기해보라.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해마는 프랭키 아발론의 캔 테익 마이 아이즈 오브 유가 들리는 듯 했다. 음대생들은, 그것이 상위 삼퍼센트의 연고대, 서울대의 학생일지라도, 그런 것이 발생하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는 반도체처럼 되어있고, 처음에는 파이프처럼 생겼을 것이다. 그것의 단상은 당연히 전기가 통하거나 통하지 않거나 하는 것으로다 직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위에 이끼가 많이 껴서, 사람들에게 생각을 통하게 하는 것이 있고, 수석처럼, 수석도 차석이 되는 스페이스 안에서, 그냥 맹돌처럼 그 옛날 우리들의 젊은 날의 초상 때와 같이, 백제고시에 아들딸들을 입학시키고 성취시키고 싶은 부모님의 그림자로만 곽재우 홍의장군 내 앞에 시위하는 것으로도 있을 수 있다. 유달산의 계단을 오르면, 우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리고 대포가 나오는데, 카논을 연구하는 작은 사람들,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그것의 절체절명의 역사적 사실을 보게 한다. 그러나, 그 계단 만큼은 무시할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명명하여, 궁궐의 계단이라고 했고, 천상의 계단이라고도 했다. 나는 아부하지 않았고, 리얼리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 사적인 것일까? 우리는 제부도의 그 고압선 송전탑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버스를 놓쳐 사진으로만 보았던 탄도항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나는 나의 직위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그곳을 간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캡틴 하록이라고 여겨서 그리 간 것이 아니다. 수원역에서 버스를 탔고, 흐린 날이었지만, 도리어 차분한 날씨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가 하루에 두 대나 한 대 씩 다니는 사정을 알지 못했다. 번화하다는 것은 교통량이 어느 정도는 된다는 것일 터인데, 다들 자동차가 있어서인지, 그리고 자동차 여행객들이지 버스 여행객들은 없는 것인지, 한 시간 넘게를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제부도 가는 것을 택했다. 버스가 자주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거대함에 놀랐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나를 보았다. 한신대에서 제부도 가는 길은 버스 하나만 타도 결판이 난다. 한신대에서 익숙한 곳이 아닌 여행길은 모두가 밀회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선생이 예수당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판신에 임해서, 선생들이 매수를 당했다는 말을 듣는다. 음대생은 음표는 많이 읽지만, 신학생이 문학책을 읽지 않는 것 이상으로 문학책을 읽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그렇게 포트폴리오, 다중 투자에다가, 수익금의 반을 기부하는 것에도 마음의 벽이 없는 경우에는, 선생들이 판신에 이르러 매수당하지 않는 것이다. 선생들이 매수 당하는 것은, 음표의 학생 시기를 지나, 매우 이상한 예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못난이 인형을 피아노 위에 두는 것은 그나마 민중적이고, 표현의 클리쉐로 따지면 양반적이다. 때로는 카멜레온을 갖다 놓기도 하고, 보이조지를 갖다 놓기도 한다. 기능적이고, 현실과학적 예수라는 것은 눈물 나는 것이다. 우리가 클래식을 연습하고, 연주가와 작곡가의 구분을 가하는 것은, 그것의 시체성 때문이고, 에이치지웰즈의 타임머신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떨어졌고, 고층 빌딩에서 산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함량이 미달하며, 연주에도 인색하고, 그렇다고 보면 작곡에는 인색함이 마침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으로 코리안 레이블이 정해지는 것이다. 성음은 참으로 좋은 회사였다. 우리는 모두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음대생들에게 지금 밀회가 난리가 아니다. 군인들은 티비에서 군인들이 나오면 싫어하지만, 싫은 척 좋아하지만, 거의 모든 직종은 티비에서 제네시스 혹은 네메시스 자기들의 직업이 반도체처럼 등장하면, 반구대 암각화처럼 좋아하게 되어 있다. 음대생들이 유아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김희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 않는가? 나는 사람들이 김희애를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탄도항 더 아래에 있는 항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인한 말일런지 모르겠다. 우리의 관심은 철학을 통과하고 나면 다만 존재론적이고, 바둑이나 혹은 강아지, 결혼은 실이 잔뜩 메어져 있는 실패적일 뿐이다.
건강함과 첫사랑을 동시에 지키려는 노력은,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고 하는 철학사의 대표적인 헤겔리안의 대표적인 목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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