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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심판의 시간. 박 대통령의 해경 해체 선언에 관한 시사 저널적인 종이비행기......

by 마음대로다 2014. 5. 19.

심판의 시간. 박 대통령의 해경 해체 선언에 관한 시사 저널적인 종이비행기......

 

 

 

 

 

 

 

 

일요일 아침에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의 면담 하는 것을 엘지 올인원 컴퓨터 티비로 지켜보는데, 마음이 백제 정권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어려운 시간에 그렇게 당당한 공부를 해냈다는 것이 오우 마이 과앗 언뷜리버불했기 때문이다. 사회성은 다자간 대화 같은, 종교다원주의 같은, 다문화사회 같은, 다다이즘 같은 것으로도 꽉차는 것이지만, 저장된 과거의 화살 하나가 드디어 화이트 홀로 나와서 뒤늦게 나의 가슴을 꿰뚫는 것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사회성이란 행정편의주의의 씽크홀이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떨어지고,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나타난 손을 꽉 붙잡는다. 그러니까 그것은 상처이기도 하고, 구원이기도 한 것이다. 휜커스 쥬커만은 기라성 같은 연주자이다. 그는 앞으로 삼백 년 안에 같은 연주자가 나오지 못할 사람이다. 연주자가 악보에 근묵자흑 같은 것인가? 아니면, 독자노선 같은 것인가? 그것의 독자노선을 정말이지 남자 답게 보여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연주자이다. 정경화는 거기에 비하면 미치지 못하지만, 아무튼, 유명한 콩쿨에서 둘이 일등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경화는 디그레데이션 인텀스 오브 소셜 플레이어를 언급하였다. 휜커스 쥬커만이 기라성 같은 활동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과 정경화의 침묵은 같은 경주의 공간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비유로써 말하자면, 휜커스 쥬커만은 불국사 같은 것이고, 정경화는 석굴암 같은 것이리라. 휜커스 쥬커만은 계속 비슷한 존재론적 숲에서 성가를 날릴 수 있었겠지만, 귀국 후의 정경화는 바이올린의 바자도 모르는 벙어리 바이올린의 천국 속으로 침잠해야 했으니, 사람들은 지옥 같은 인접성의 오류를 겪지 않을 수 없고, 딱 그 정도의 아웃오브도킹으로서의 기량 차이가 있었드랬다. 휜커스 쥬커만은 클래식은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연주를 듣다 보면 눈물이 나오는 것이, 숱한 레이블을 벗어나는 휘닉스의 경지를 알려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의 대중 음악적 대수는 스웨덴보리 그룹의 아바가 아닌가 한다. 하나는 완전한 악보로서, 하나는 완전한 음악성으로서, 그 시절의 쌍둥이 빌딩을 나중에 건립되었을 지 모르지만, 세웠었다. 정경화는 다시금 귀국하면, 서양 맹목주의자, 기독교 게토주의자, 문학적 이상주의자, 서울의 관료주의자, 친일적 잔여주의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들에게는 정경화는 자기 편이었다. 클래식은 그렇다. 그런 게 무조건 아닌 것이다. 연주자가 이념가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방에서 무조건적으로다 연습 또 연습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본질적이고 우주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결혼은 할 수 있다. 날아갈 것 같은 양복을 입고, 이상보다 글을 잘 쓰고, 이상화보다 시를 잘 쓰고, 도올 보다 동양학에 대해 깊은 쌍눈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정경화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를 연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보는 우리를 우리의 현재보다 늘 언제나 상승시키고, 성춘향처럼 목에 칼을 드리우게 한다. 죽어서 이몽룡이요, 죽어서 암행어사 출두와 같은 메이드인 코리아로서의 코스모폴리탄인 것이다.

 

 

해경을 사전에서 찾으면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해경은 제주 방언으로 바르탉이라고 했다. 바위를 가리켜, 바탁이라고 했으니, 바닷가 바위처럼 해상 사건 등을 해결하는 사람으로서의 적당한 이름이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이 모든 무주공산에서의 731 부대를 이끌었다. 해경은 그들의 독특한 물안경으로서, 남의 나라 문화나 문명 정신에 대한 것 보다는 우리들의 국사나 안보 조선시대 인물 그들의 헌책방 같은 문자 추상주의 목봉체조 포돌주의 같은 것을 돌잔치 택한 것이다. 육경은 어째서 그런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육경은 에어플레인. 방향이 바다로 향해 있거나, 하늘의 다리를 연모하는 순번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경은 워낙에 바다를 상대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작은 소 소고기가 먹고 싶은 정신의 순번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물거품처럼, 문무대왕릉처럼 제법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 해경은 정경화 이전과 이후의 메이드인 코리아의 코스모폴리탄을 제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의 무의식적이고, 언컨셔스니스, 운명적인 것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개의 애국주의는 키가 대니 드 비토보다 작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유독 키가 대학까지는 나오는 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스모폴리탄이 된 사람들은 불성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그와 같은 해경의 해체를 명령하였다고 한다.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이다. 나는 그녀의 클래식한 전선의 판단을 깊이 공감하며, 전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그러나 함께 때릴려고 하니, 아무리 지금까지 전문적으로 훈련한 것이 없고, 아무런 먹은 것이 없었대도, 아무리 그런 합당한 이유들을 무겁게 입고 있대도, 그들이 다시금 육지 하나 없는 곳으로 밀려나 있는 헛개나무 귀신들처럼 불쌍해 보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