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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비밀의 문과 무의식의 상호 관계에 관해서

by 마음대로다 2014. 10. 7.

비밀의 문과 무의식의 상호 관계에 관해서

 

 

 

 

 

 

 

 

우리는 서울에서 빛나는 연세대학교를 다니면서, 한 사람만, 자격증 소지자만 다닌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 우울한 것이다. 지나가는 나도, 연세대학교를 다니는데, 버스 타고 밤낮 지나는 사람은 반드시 연세대학교를 다녔던 사람인 것이다. 대신에, 그것을 넘쳐 흐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마광수, 김용옥, 유종호, 나름 잔잔한 소시민들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신라의 금관이라던지, 백제의 금관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그것을 우리에게 일동 차렷, 열중 셧, 차렷, 하는 군기를 확립하고 있다 할 것이다. 우리는, 접근한 논리와, 흔적, 그것의 흙을 와플하는 것으로써 산다.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것이 좋다는 캐츠는, 분명 아이비가 섬바뒤 두잇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가 늙어서 아이를 가졌다는 것과, 야한 잡지에 늘 손이 간다는 것으로 빠져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즐겁다는 것. 그리고 어떤 부적당한 것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 그것의 대중소, 정반합으로 얼마든지 우리 서울 시민들은 흘러갈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는 인구수가 엄청나다. 가장 재밌었던 통계가, 경희대학교 전체 인구수가 함평군의 것과 맞먹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쏘데스카 했다. 누군가 혼또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쏘데쓰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천국에서 사는 사람과, 다만 우리들의 척박한 함평군과의 콘트라스트는 논문 거짓말 않고 백편을 읽는 것보다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함평군은 거북이가 될 것이다. 경희대는 토끼. 특히 봄날은 장관을 이룬다는.....

 

 

 

우리는 상호 관계라는 말을 천국의 시민들은 논문 속에서 꼭 쓴다. 제목에도 쓸 때가 있고, 본문 중에서는 반드시 쓰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리어니즘이다.

 

 

 

나는 상관이 없는가? 정작 자신은 철학적 본질로부터 외면을 당하는가? 아직도 실존은 살아 있는 좌심방이다. 얼마든지, 잘 정비된 스즈키 벤디트250을 타고 지평선을 향해 질주할 수가 있다. 금세 서해안이 나온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안나오면 책을 읽을 수 없지 않겠는가? 돌아가 책을 읽게끔 하는 지평선은 수평선을 만난다.

 

 

 

처음에는 친구가 책 읽는 자신을 사탄처럼 꼬드겼다. 그러나 자신이 사탄이 되어, 더이상 꼬드길 문리도 없는 자기를 꼬드긴다. 철학적 본질은 그래서, 연세대학교와 연세대 학생 사이에 길항관계처럼 노정되어 있다 할 것이다. 자신이 꼬드김 자체가 되면, 차라리 철학적 본질을 대학축전서곡을 부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학을 나오면, 거대한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처럼 된다. 그것의 공중에 있던 상관 관계.......

 

 

 

아름다운 내 논문.......

 

 

 

그냥 귀찮고. 조별 발제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고. 누군가는 마치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흥분된다고 하는데, 그 나라, 그 대학이 어딘지 궁금만 할 뿐. 처음부터 배타적이고, 적대적이며, 불통적이고, 절대적으로 사회생활 바람적이다. 논문을 멋지게 써라.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 그런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언질도 해주는 사람이 없는. 내용은 없이 형식으로 이동하는 태종.......

 

 

 

 

*

 

 

 

나는 내 누나가 모나리자를 닮았다는 것이 귀찮았다. 차원을 별 이동하는 사람들은 내가 미녀와 산다고만 요약 정리했을 것이다. 없지 않아 모나리자를 닮으려고 노력을 했다. 이런 무의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조용필이 모나리자 노래 부르는 것이 싫었다. 비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싼 것도 아니었다. 아주 모나리자 모나리자 노래를 불렀다. 나는 시끄러웠다. 이런 무의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의 철학적 본질은 모나리자 실존주의보다 늘 한발 앞서가는 것 같았다. 그 발은 세 발이다. 하나는 발해이고, 하나는 아퀼레스의 발이며, 다른 하나는 한니발. 어떻게 인간의 신체는 회고 속에서 이처럼 페튀쉬할 수 있는지. 정말이지 윤상의 한 남자에 관한 우화이다. 그것의 인스트루멘탈. 대한민국의 실존주의 현대 국문학은 전부, 모나리자에 빠지고 만다.

 

 

 

 

한신대학교에서 나는 예쁜 철학과 여학생을 만난다. 그녀는 나를 보려고 왔다. 이런 무의식은 지구를 아무리 평평하게 만들고, 아주 정확한 경도와 위도를 측정한다고 해도, 마치 태평양의 어느 섬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처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 이름이 유종상이셨다. 이름이 한자성어를 닮아서 잊을 수가 없다. 국민학교도 고등학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교장인지 교감인지, 그 차 위에 올라가 학생들이 놀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용이 막연하여서, 철학적 사변으로부터 많이 벗어나는 것이어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 다만, 약간의 폭력적인 수학선생님 마저도 예쁘게 보면 예쁘게 보이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구멍이 뚫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쁜 선생님이 많으니, 아이들이 흥분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알 수 없는 아프리오리는 상당하다. 나는 철학과 여학생을 원거리에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나는 힘 없는 모나리자 군의 국문학에 진력했을 때이고, 굉장히 탐미적인 모습의 작은 피규어에 나름 세계관적인 만족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그렇다. 내가 찝쩍댔던 여학생들이 다 그랬다. 만일 그렇게 사단을 구성하면, 연세대학교와의 전차 경기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아는 연세대 여학생은 내 편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유식한 사람이 좋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고, 떨리고, 오줌 누는데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나 많은 것처럼 처지가 마땅치 않지만, 유식한 사람은 사라진 뒤에도, 마치 프레데터의 한 장면처럼, 잔영이 남는 것이다. 최근에 불후의 명곡에서, 파도를 불렀던 벤이라는 여자 가수와 비슷하게 생겼다. 학교까지 오는 데는, 강남에서 시작하면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고, 수원역에서 오더라도 삼십분이 걸린다. 그러면 학교에서 배울 것이 있는가? 그 아침 햇빛. 그냥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만 볼 때가 많아요. 한번 배운 적이 없는 양명학의 극치. 언젠가는 반드시 트집 잡힐 것이 뻔한. 그래도 그것의 아티큘레이션은 윤상의 예감 이것도 인스트루멘탈을 닮았었다. 나는 갑자기 치는 피아노의 종소리처럼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못난 자아를 이겨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