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충격,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관련한 나의 모습
며칠에 거쳐, 글을 쓰고자 하였으나, 박노자, 너무 객관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 것이다. 너무 객관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줄여서 무엇이라고 하는가? 공산주의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사실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 공산주의가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그렇다면 자유주의, 민주주의로의 포항 과매기 같은 것이었는가? 과도기? 그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고, 다만 그 느낌만으로 아직까지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공산주의였는 것이다. 이문열은 신현균 목사를 좋아했던 것일 수 있다. 어쩐지 닮은 데가 있다. 닮아서 좋아했을 수도 있고, 문학 공부가 어렵고 답답할 때, 그의 천재성으로 스며든, 신학적 이상향일 수 있는 것이다. 윤봉길이라는 동창이 있었는데, 목소리가 윤봉길 의사처럼 들리고, 때로는 보였었다. 나는 어째서 그렇게 집이 가난한데도, 세련되고, 조용하고, 때로는 당차고, 활달하고, 다만 우정이 깊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윤봉길이 좋았다. 이봉창이 있었다면, 이봉창도 좋아했을 것이다. 박정희도 좋았다. 우연히 들어간 파출소에 걸려진 얼굴이, 미학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총을 꺼내, 박정희를 죽일 때, 마음이 아팠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에게 우주는 반드시 정의롭고, 하고자 하는 일에 아무런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소문을 듣고, 그것을 감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직까지, 직접 확인한 바가 없다, 거의 모든 기소사건을 보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파출소에 자주 갈 일이 없지만, 아저씨들은 친절하였고, 박정희 아저씨의 얼굴도 어울린다 싶었었다. 생각해 보면, 윤봉길과도 친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광주항거가 지난 뒤에, 그를 만날 수 없었던 것 같다. 좀더 오랜 시절에는, 내 모습이 신현균 목사와도 비슷하였었다. 신현균 목사님은, 그 시절의 어려운 생활 때문에, 키가 그만큼, 체격이 그렇게, 되셨겠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이 어린 시절의 대두체격과 비슷한 것이다. 내가 커서, 신현균 목사님 같이 된다는 것이 중론이었었다. 그러니까, 평범한, 중간적인, 중간고사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을 중간고사 기간이 되면, 얼마나 슬픈가? 한신대 장공관은, 가을 단풍과 어우러졌다. 세상 임금님에게, 이제는 하강의 길 밖에 남은 것이 없는데, 어쩌시겠습니까? 하는 소리를, 그런 걱정, 앓는 소리를 끊임없이 하는. 공부를 놓치면, 복도의 그 흰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한 계단 내려가면, 그냥 복도였는데, 그것은 그냥 일조권이 없는 서울의 빌딩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 칸만 올라서도, 아주 좋은 빌딩에 있는, 별장 같은, 그런 성기 노출이 심하지 않는 한국 영화 같았던 것이다. 색즉시색하면, 다시금 눈이 침침해지고, 보이는 것이 없으며, 결국에는 과도한 자신감의 국민성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공부하였고, 철저히 개인의 눈을 가지는데 성공하였으며, 비닐하우스에 성공이라는 글자도 있어서, 아주 비싸고 좋은 작물들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잘하면 공부하여 성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별장에서 별장으로, 이데아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가 별장이 아니고, 다음의 별장이 학교일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람이 저마다의 세포와, 밀도로써, 빠져나가면, 그리고 아직 사람들이 복잡한 일체형 책상과 의자의 배치에, 들어차 있지 않으면, 여학생들이 결혼할 것처럼, 몸을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고산증에 걸릴 것 같은 거리를 차를 타고 도착하지 않았으면, 나는 겉만 번지르르한 철학자였던 것이다. 돈이 있으면, 과시를 했겠으나, 돈이 없어서, 최인훈의 인민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어린시절, 취학 전의 모습과, 대학시절의 모습이 같은 운명으로 예정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문열은, 내 취학전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빈자리, 어떤 빈 탱크, 한국형 탱크의 배치를 보고, 내가 박정희를 노려보던 비상한 모습을 보고는, 내 나중의 모습까지를 읽어낸 것 같은 것이다. 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세상을 꿈꾸는지, 하는 것이 궁금하면, 어린아이가 되어서, 학교에 잠입하여, 친구하고, 확인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취학전의 아이가, 어머니가 양장점을 하는, 조용하고, 인형 같은 아이였다면, 신현균 목사님보다는 분명 잘생긴, 취학 후에도 같은 존재와 관심을 끌 수는 없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한번도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나은 위치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천사의 내면인 것이다. 나은 위치에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백번의 소설 속에서, 결국에는 그렇게 되는 것인 것이다. 만일 어린아이가, 영혼이, 비상한 컴퓨터를 갖고 있어서, 그와 같은 결과를 예측하고, 그래서 늘 겸손하게 다녔다면,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린아이가 그럴 수 있겠는가? 이문열의 소설은 그와 같은 치외법권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추락하는 것을 그려냈더라도, 반드시 사람들은 자기의 소설을 높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일까? 지혜 중에 지혜이고, 병법 중에 병법인 것이다. 그것이 만일, 이문열에게 노출되고, 그와 같은 형식을 읽어냈다면 어떻겠는가? 어린아이는 불가능하나, 소설가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신현균 목사님은 존경도 받고, 비난도 받고, 무덤덤함도 받았었다. 내가 무덤덤하였다. 별로 나의 신성과는 달랐던 것이다. 나는 나의 성씨를 높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반드시, 사람들은 높여줄 것이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신현균 목사님의 영광은, 내게 미치고, 나와 연합하며, 반드시 내게까지 군대의 전령이 전달한 것 같았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그런 군대 식의 느낌이 있고, 신현균 목사님의 설교가 그와 같은 시간을 내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떠들고, 집중력이 없으며, 그림을 좋아하지 않고, 혼자 오랫동안 있지 못하며, 다만 없어서 조용하지, 있으면 난삽하였다면, 그와 같은 전달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는 사람에게 보이는. 그런 보는 사람 주관적인 전달이. 어머니가 전도사님이시니까, 매우 성공적인, 그것이 그렇게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그에 대한, 그와 같은 문화에 대한 만용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목사님의 아들은 기독교 문화에 대한 만용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하고 기도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몇 개 없는 라디오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기도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만일지라도, 김요셉과, 조동팔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어린아이인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찬스에서 안타는 반드시 점수를 낸다. 욕심을 부려서, 만루홈런을 만들 수도 있지만, 플라이 아웃도 되는 것이다. 조동팔은 마음으로는 만루홈런을 치고, 사람들 눈에는 플라이 아웃을 당했던 것이다. 어린아이인 나는, 늘 찬스에 안타를 쳤었다. 어머니가 나를 좋아하셨다. 나는 다른 집의 어머니가 티비에 나오는 사람처럼 예쁘신 것에 더 관심이 갔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의 아이에게는, 저런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늘 내가 아플 때는 어머니가 기도해주셨고, 나는 그 기도의 목소리를, 사람을 불러서가 아니라, 라디오처럼 가까이, 늘 바로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문열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문열은 금세 기독교를 벗어나야 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은 기도를 안 하지 않는가? 아플 때, 약먹지 않는가? 소주에다 고추가루를 타다가 먹는다지 않는가? 형이상학이 계속해서, 말 그대로 이상해지고, 결국에는 왕과 같은 제사장, 왕과 같은 예술가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직장에 목을 메게 되면, 실질적으로 목을 멜 확률이 높아진다. 그것은 세상의 비참이다.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도 받고, 약도 먹고, 뜨겁고 시원한 콩나물국을 먹게 되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편안한 실제의 다음의 시공간으로 진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학 때까지도 신현균 목사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누군가 내 이름과 같은 목사님이 계시는데, 아주 유명하다고 하였다. 나는 거기서도, 홈런을 의욕하지 않고, 안타를 쳤었다. 나의 그와 같은 상자는, 책상 서랍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일종의 프러그 피쉬인 것도 같다. 꽃처럼 예쁜 것도 있지만, 때로는 무서운 것이다. 신현균 목사님의 영광도, 사역도, 그분이 영도하신 믿음의 역사도, 내가 그 전하는 말을 좋게 듣고, 밝게, 환하게 그러느냐고 답하면, 금세 담겨버리는 것이다. 포이에르 바하처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말을 하던지, 신현균 목사님처럼, 오직 하나님의 성령 만이, 우리나라를, 우리 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다 외치던지 해야하는데, 인위적인 표정 하나 없이, 모든 생명의 열린 모습처럼, 진실함과 가벼움을 가지고, 룰루랄라하였던 것이다. 자아비판을 해도,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하면서, 환심을 사고, 도리어 직급도 높아질 것 같은 분위기가 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신현균 목사님은 이미, 결정된 분이셨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이 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김대중 대통령을 닮기도 하셨다. 아주 나중에는 어머니의 설교가,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 무서움과, 존경함과,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바라보았겠지만, 과도한 객관주의의 망령이 횡횡하는 곳에서는, 그렇게만 비치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때로는 사람의 아들이 낫다 하지 않겠는가? 내가 무슨 소설을 썼대도,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고 딸들이기 때문에, 분명 사람의 아들이 낫다고 할 것이다.
대학교 학생들은 대게, 우리들의 천국 같은, 나환자이거나, ㅜㅜ,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비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피아노 음악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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