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는 누구의 아내인가?
우리나라 걸그룹들의, 혹은 이런저런 시도들은, 우리가 무척이나 바쁘지만 윤택한 창조경제 공간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보이그룹은 없는가? 걸그룹이 주체인가? 보이그룹은 대기업에 취직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고 사람들의 어느 정도의 실체가. 사람들의 관심만이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도에서 머리타래를 강탈 당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인도를 관심과 사랑을 하지만, 실체는 인도로 여행을 하기가 어렵고, 김종욱 찾기에서 한 번 가보는 것으로 데리만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내에서, 인도 카레 요리 전문점에서, 하루키와 그의 친구들처럼 맛있게, 맵지만 알차고 맛있게, 뭔갈 먹는다면 우리는 行福할 것이다. 나는 마리아 칼라스를 사랑하였다. 그것이 妙한 것이다. 황태자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겠으나, 황태덕장, 그 춥고 깨끗한 겨울 빛, 사람들에게 일년을 약속하는 듯한 전열. 사람들이 자연에서 기가 죽는다면, 황태자는 기가 사는. 일본의 옴신리쿄도 황태덕장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옴메 기살어~ 하는 바람에 약간 이진의 것이긴 하지만 코스모 폴리스 하루키의 레이다망에 걸린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슨 마리아 칼라스가 한국어적이고, 일본어적인 대마도 은행적인가? 그런 흔적은 없지 않은가? 마리아 칼라스에게 한국 사람이 예쁜 제주말과, 콜렉션한 것 중에 가장 근사한 칼 집에다가 만에 하나 비극의 소재가 될 것을 염려해 둔한 칼을 선물로 보냈다면, 마리아 칼라스와 그녀의 사람들은 일단 뜻을 몰라할 것이고, 옆에서 누군가 한국어를 설명해서 그렇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테이크어 콘셋 반갑게 받겠지만 자기들의 힘든 일에서는 도리어 비난하지 않겠는가? 무슨 말이고, 무슨 칼인가 하면서 말이다. 나는 마리아 칼라스를 사랑하였다. 그것은 한국 남자들이면 아는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를 닮은 여자를 사랑하는 무리까지 있었다. 흔한 사랑의 법궤는, 모세의 율법은, 헤어진 여자, 첫사랑, 심지어는 어머니와 닮았다 하는 것으로다가 라쿠카라차, 어프로치, 접근하여 사람들의 무비판적이고 무규정적이며 잡지의 외국 예술 찬양의 오페레틱한 저인망 어선을 전진시키는 것이겠지만, 마리아 칼라스를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여자가 노래도 잘 부르지 않을까? 사귀자고 저녁에 전화세가 들지 않아서 가난한 사물 애호자들이 해가 뜰 때까지 수다를 떨던 대학 기숙사의 통로로써, 사귀자고, 그것을 분명히 전제하고는,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것의 나비, 영어로 버터플라이. 우리가 마리아 칼라스의 중유명한 노래들을 접할 때, 너무 부담스러운 주장들은 어려우나, 분명히 멜로디컬하고, 그러나 처음 듣는 노래인 경우, 같은 기분이 있지 않겠는가 싶다. 흑백의 율리시스가 흑백으로 찍으면 태종대가 부산인지 아니면 그리스의 빌립보인지 알게 뭔가 싶어서, 그러나 소나무가 너무 많이 등장하면, 어째서 사람은 외국 사람인데 배경은 저 태종대 아이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민경은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보니까, 마리아 칼라스를 닮은 것이었다. 그러나 일절 노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냥 예쁘면, 당시 한신대에서 미모 십걸 중에 한 걸이 되다보니까, 가난한 학생의 성리학에는 음향으로 치환이 되어서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도 눈이 너무 초승달 같아서 부담스럽기는 했었다.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결혼해서, 내가 서울 지역의 책 출판에 이바지 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세마 하면서 동시에 사람 부르는 알함부라 궁전의 연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가장 찬란한 검은 비닐 봉지. 그것은 케이티엠 슈퍼듁 1290. 왜 하필 일이구공인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특수성. 그것의 보편성. 슬픈, 나의 마리아 칼라스......
정말 한 번은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가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내 앞에서 다른 여자들이 가졌던 애절함을 덜 가졌었다. 제대하고 나니, 내 친구의 연인이 되고 있었다. 당나라 여인처럼 뚱뚱보는 되어 있지 않았으나......
지금 보면 나는 어쩌면 배구에서의 시간차에 묶어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신문이 있는 것 같다. 절차탁마 늘 대기만성 중이었던 나는 실체가 하루하루 정해져 있었고, 관심은 경은이라는 이름이 들려올 때마다 약간씩 찔려왔다. 어느 정도 황태자의 현실태가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 민경은을 더 사랑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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