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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시느한수(2014): 이상한 영화 찍어놓고 전가하려는데 초인기를 끄는 낭패........

by 마음대로다 2014. 7. 7.

시느한수(2014): 이상한 영화 찍어놓고 전가하려는데 초인기를 끄는 낭패:  황하강과 양산박강을 두고 우리는 천년동안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걸출한 문명을 두고 있고, 그것을 낭비만 하면 되는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렵게 살면 신학대학교를 다 가는 줄 알았다. 음반들을 많이 사놓으면, 클래식 음악 대학교를 다 가는 줄 알았다. 철학과를 사람들이 머리가 차고, 때가 차면, 그냥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티 산업만 인기 개그맨 신동엽의 눈처럼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우리는 일본만 그렇게 리얼러티가 없는 초애니의 세계에 사는 줄 알았다. 사람들이 돈만 많으면, 다들 천알알을 타보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줄 알았다. 돈만 많으면 영화를 기가 막히게 잘 찍을 줄 알았다. 뉴욕 대학교에 유학 다녀오면, 다들 멋쟁이가 되는 줄 알았다. 기독교인이면 다들 나처럼 말도 잘하고, 기다란 전선 위를 가로지르는 빗방울처럼, 도시인 개개인의 마음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왠걸. 일본 소녀. 그렇지 않는 것이다. 문명은 광개토대왕비처럼, 혹은 임신서기석처럼, 다만 벌판을 상대할 뿐이고, 진흥왕순수비처럼 거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역사와 사별하게끔 만든다. 클래식 음악은 누가 작곡한 것일까? 고흐가 귀를 자른 것은, 자기가 작곡가가 아닌가 하는 망념 때문에서도 그런 것일 수 있다. 누구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날개 잃은 천사가 된다. 한신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는 누구 하나만 없어도, 인터레스팅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기미곤 교수님이라던지, 김창락 교수님이라던지, 박원순 교수님이라던지. 나의 은사님이신 김경재 교수님이라던지. 첼로에 G선상만 남기고 사라진 것을 누가 첼로로 부르겠는가? 부르지 않지 않겠는가? 중국어는 처참하다. 라면에다 쏘세지를 넣어 먹는다. 쏘세지는 칼집을 내어 볶아 먹으면 맛이 있다. 명사형 나라가 부흥하였다면, 중국은 지금쯤 세계의 으뜸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칸타빌레, 오직 한국 사람들만 숱한 라면들을 먹으면서 오후의 생산성 향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느한수를 보자. 쉽게 찍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어렵게 찍은 것조차 우리는 보지 않는다. 시느한수를 보면, 명나라가 확립되어 있다. 짱꿔렌 같은 사잇대사들이 있지만, 고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시영이 예쁘고, 그녀가 살아 있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시느한수를 보기 위해서 우리가 돈을 지불했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앞으로, 그것을 어느 경제학자가 가치 계산을 할 수 있을런지 사뭇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고, 삭막한 종교개혁의 벽이 있는 곳에서는, 붉은 신의 면산 같은 공산혁명을 끓일 수 있으며, 거기다 카톨리씨즘의 쏘세지들을 열개를 넣어 먹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