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는 변신에 책임을 지게 하는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그것의 한국주의적 정점을 발견하는 듯 하다. 사람들은 어째서 오토바이 산업이 사기통 하나 반듯하게 못만드는 것으로 주저앉는 것일까 의아해 한다. 그리고 한국은 어째서 이토록 많은 자전도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는지...... 그것은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다니고 있다 보면 잘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나 일본 혼다가 툭하면 세계 변신 사회에 책임지는 이름들을 달고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들의 남재준 케이스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동하는 것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로는 없는 것 같고, 벌판에서, 수 백 개의 발을 갖고 진행하다가, 발목지뢰나 대전차지뢰가 터지면 좋아하는. 도로만을 열심히 주행해도, 각국은 지금 행복은 커녕 지능의 한계에 봉착하다보니까, 오토바이를 몬스터로 만들어서, 변신의 방정식을 발견하는 대순진리회를 꿈꾸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경찰과 검찰은 변신에 책임을 지는가? 지지 않지 않는가? 맨처음은 윽박이고, 그러다가 안되니까 후행차량과실이라고 맹신하는, 뒤로 자빠져서 터지는, 최고급 사무실에서의 뇌의 독특한 냄새......
혼다라는 이름은 변신에 책임을 지거나 전가하는 것으로 세상이 오아리 지는 것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 야마하는 의식하는 것이고, 스즈키는 선한 것을 취하는 것이며, 가와사키는 마침내 변신에 성공하는?........ 과학과 기술이 변신에 책임을 진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사적이고, 민영화적인 차원에서, 혹은 국공립에서조차 그러하다, 우슬픈 것들인가?.......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테이저 건 같은 사탄의 끄나풀 (0) | 2014.09.02 |
|---|---|
| 소설 속에서 여성의 성격은 어떻게 디모데전서 발현 혹은 발언될 수 있는가?....... (0) | 2014.09.01 |
| 원래 나는 늦은 저녁에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니다. (0) | 2014.08.25 |
| 나는 도와주지 않는 새끼들이 (0) | 2014.08.21 |
| 정부가 하는 일이란 것은 (0) | 2014.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