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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군대식 속보로 어쩔 수 없이 걷다가

by 마음대로다 2014. 9. 18.

군대식 속보로 어쩔 수 없이 걷다가

 

 

 

 

 

 

 

 

우리 대림 오토바이에 데이스타가 있고, 로드윈이 있다. 둘은 같은 엔진을 사용한다. 지금은 로드윈이 뷔지프 엔진을 기반으로 한 이백오십씨씨를 내놓을 차례다. 그런데 내놓고 있지 않다. 어째서일까?

 

아무튼 사람들은 그것을 연관검색어를 검색하지 못한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우리나라에 고속으로 지나치는 기체가 하나 있는데, 둘이 같은 엔진을 쓰고 있다는 정도. 이 말들이 기가 막힌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이소용이 없다는 사실. 우리는 백제를 견디는 엔진을, 그러니까 그런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백제는 사람들을 모두 설복시킨다. 우리 우주 전사 코브라에 그런 대목이 있다. 중력이 엄청난 곳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 한들어가면 꼼짝 없이 나오지 못한다. 코브라는 나왔던가? 여자를 구했던가? 중력을 해체했던가 했다. 만일 혼기도 넘쳐서, 서로의 처녀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는 남녀끼리 죽이 잘 맞는다 싶어서, 이야기 끝나고 바로 잠자리를 가졌다고 쳐보자. 그것의 이유는 성욕 때문일 수도 있고, 잉글리쉬 컨버세이션의 공황을 차환을 빌려서 채우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메쏘돌로지라고 여기는 이유는, 자위라는 정현종 시인의 섬 때문이다. 그 섬에 가고 싶은 것이지, 거기서 뭘 어떻게, 산 높은 곳에서 식당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영어를 네이띱 스피커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영어는 어딘지 모르게 차압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어는 늘 관건 부정 선거 같고, 서울대 영문학의 얼굴 마담 같고, 기라성 같은 상점들의 환전소 같기 때문이다. 가장 의로움이 있는 것이 옷인데, 없지 않아 국제적으로 펜팔하는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펜팔을 하려고, 만일 무작위로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국내 의류의 영어 이름은, 특히 올리비아 로렌 같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국제 펜팔을 하려고 했는데, 돌고 돌아 한국 여자와 하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고나 할까? 우리가 막무가내로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에 우뚝선 지방자치제를 구축하려는, 보이지 않는, 초등학교의 쥐며느리 같은 감성의 군병들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그렇게 한 번 해보려는 것은, 그 열대 나라 문법이 자기를 채워줄 것 같은 판타지 때문인 것이다. 뻔히 식량 고갈이 엿보이는데, 계속해서 채근해서, 함께 모텔방에서 살을 찌운 뒤에, 결혼까지 골인하는 대중 정신 현상학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악몽과 같은 홍상수인 것이다. 만일 적당히 고급스러운 사람들과, 우리나라 말- 알게모르게, 비행하는 삶을 선택한다고 치자. 왜냐하면 우리들의 예술은 그것의 델리카쓴 같고, 단어 하나에 성욕 하나로 진딧물이 달리는 전선과 같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욕망에 자기를 맡기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잉글리쉬 캔은, 다시금 보기 좋은 모습으로 부풀어 오르겠는가? 하루에 세 여자와 다른 시간 대에 하고 나면, 보다 쭈그러지고 만다. 그것은 관념으로 가는 것이다. 독일 관념론. 인식은 믿음인데, 어휘는 이성인 사람들은 또한 우리나라 말- 긴가민가 하겠지만, 그렇다고 오십퍼센트 봐도 좋다 할 것이다. 그런 데에서 중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는 수 없고, 그나마 잉글뤼시 호른에 관심이 있는 숨구멍 작은 철학자인 경우에는, 여지 없이 권투 심판 야구 심판은 닥치고 만다. 그것들로부터 비상하게 전자기 반응이 일어나서, 사회경제적으로 환전할 만한 어휘나 인식소를 얻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간섭할 자격이 내게 있지는 않다. 다만, 그런 형식적 한계를 뻔히 칙쑈 하면서, 어떻게든지 보충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뿐 만 아니라, 사회공중적으로도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 되는 것이다.

 

 

 

 

로드윈의 심장이 데이스타와 같은 것을 쓴다는 것. 그것은 로드윈이 사람 손을 먼저 잡아주다가, 사람을 이내 기억하지 못하는 다음의 장면보다 나은 것이다?.........

 

 

 

 

 

나는 예쁜 철학과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군대 후임병처럼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고, 특히 햄스터 이야기를 할 때는 즐거움이 도가 지나쳤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광주 현정이를 제외하고는, 그런 식의 세계관을 내가 본 적이 없다. 나는 둘이 그때는 잘 될 줄 알았다. 이야기에서 군대의 정경이 엿보인다는 것은, 둘이 롱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약소쿠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하다 보니, 불나방처럼 되었고, 처음으로 나비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둘이 나가서 걷게 되었는데, 나는 군대식 속보에서 아직 걸음걸이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여학생도 빨리 걸었지만, 언컨셔스니슬리하게 뒤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어째서 뒤로 숨는 거에요?

 

 

여자가 활달한 목소리로 내게 항변했다.

 

 

내가 언제 숨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둘이 웃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문답인가? 이런 표현은 사족인가?..........

 

 

 

 

 

*

 

 

 

 

 

이상하게 둘은 마치 십년을 사귄 사람 같았고, 그것의 웃음은 섹스보다 좋았다..........

 

 

 

서울은 시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