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1편을 보고: 영화와 인격(인물)의 삼각편대
사람들은 미국 문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펄벅의 대지. 뭔지 모르게 남성다운 판정력. 소수민족까지를 아우르는 문화적 의지 같은 것이 공부하는 이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싼디에이고. 캔자스시티. 시카고. 그 씨에이치가 시로 발음된다는 것의 인터컨티넨탈은 메탈류의 미국 드라마를 토요일 오후에 본 적 없는 사람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때, 그 즈음으로, 정확하게, 이것은 홈런이다 싶게, 로보캅이 나왔다. 도시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도시는 기형적으로, 사람들의 문화 수준은 낮은데 반해서, 로보캅을 기획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은 있는 기업이 상존해 있었던 것이다. 도시는 크고 음부해서, 누가 살던지, 누가 죽던지 관심이 없을 성 싶은 곳에서, 경찰마저 파업한 곳에서 로보캅만이 프리즈, 너는 미란다 원칙이 있다 하는 내용을 알려준다. 그는 자동소총으로 맞아도 죽지 않고, 최신식 권총으로 응사해서 적을 제압한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런 티비 프로그램, 시사저널 프로그램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보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시카고에 있는 오래된 만물상에 들어갔는데, 진품과 가품이 섞여 있어서, 잘 사면 몇 배의 이득이 생기는 것이고, 못 사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기분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끌고 가는 것은 물론, 에디 머피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경이다. 미국 사람들에게도 자의식이 있다. 그것은 헤밍웨이나 윌리엄 포크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무슨 무슨 오코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러브 스토리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학은 생각도 할 수 없고, 그나마 스토리나 시나리오도 아닌, 보여주기 식의 양명학적 비주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쎌웨폰 시리즈도 그러하다. 특별히 뭔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 아니다. 보여주기식 비주얼리즘에 포착된, 그나마 완전히 자웅동체가 된 것이 아닌 상태로, 경찰은 두 사람인데, 하나는 말이 많은 백인이고, 약간의 우드스탁의 세례를 받은, 그리고 하나는 집단 내에서나 문화적으로나 늘 판단에 애로사항을 겪는 흑인이다. 보여주기식 비주얼리즘은, 그나마 보스턴 티파티 같은 미국 문학에서부터 링컨, 많은 수의 노예해방이 이뤄진 후기산업자본주의사회를 상정한다. 할렘이라고 하면, 아프리칸 헛이나 헷지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인터내셔널 침팬지 쏘울 보울 같은 브로드캐스팅 뉴스의 햇지 펀드 안에서, 묘한 버지니아 늑대인간의 혼자만의 방에서 듣는, 바깥에서 소음, 이창을 비롯해서 비상하게 발전했던 심리적 스릴러들, 사람들은 그것들에 연결되기도 하고, 다시금 미시시피 살인 사건과 같은 민주주의적 투사의 영화로도 오버래핑이 되곤 한다.
보여주기식의 영화 기법이라는 것은 말 자체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수준일 것이다. 논리적 필연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판단의 초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어적으로 말해도, 내로라 하는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질러놓고, 하프를 뜯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우물이라는 시도 비슷한 처지라고 하겠다. 그것을 우리가 아카데믹으로 이해할지, 아니면 똑같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수준으로 이해할지는 자유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숱한 인격의 클리쉐들을 만나보게 되는데, 여기서 클 혹은 클리는 쿨리, 그러니까 방글라데시의 경찰들을 뜻한다. 쉐는 이즌쉬러블리, 여자를 뜻한다. 영화가 전업을 한다, 다른 일을 함께 할 수 있다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음악 영화를 찍다가, 제작이 갑자기 중단되어서, 거리에 나가 앉게 되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거리 공연을 통하여 삶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서, 저마다의 디아스포라를 조성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드코어 수사매직물인 경우에는, 관객들을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안보는 것은, 장보리, 그나마 피곤한 하루 일에 보는 것이라고는 티비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에치튜드가 아니다. 그 없지도 않는 예를 차리느라 보게 되면, 꼼짝없이 쓰레기 더미에 실려가는지, 자기가 자기의 결정으로도가 싣고 가는지 모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클래식은 무엇일까? 영화가 있다. 클래식 영화가 아름답고, 앞으로 우리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만 있지 않다. 클래식 음악은 클래식 음악으로 이미 오만하고, 독단적이며, 자기자신을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공간에서 여유를 느낀다. 화성과 기포는, 열정을 불태우고 난 뒤에 마시는 맥주라고나 할까? 클래식은 연주자만이 아니라, 듣는 이도 열량을 소모하게끔 한다. 그것이 없이, 잠을 자는 사람은 아직 코스모폴리탄이 아니다. 그러나 하드코어 수사매직물인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을 보편 인격으로 올려놓는 장점은 있으나, 묘한 분비물 밖에는 다음을 약속할 수 없는 지상계로나...... 하드코어 수사매직물인 경우에는, 아무튼, 그들 같은 수사관들이 누가 있는지 매우 궁금해지게 만드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잘 찍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고, 저절로 변형이 되는 이유도 그것이며, 일본에서 많이 찍는 이유가 그것이고, 미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는 그런 것들 밖에 없다는 사정이 그것이다. 클래식 영화가 순정 만화도 찍고, 이런저런 나쁜 피 같은 것도 찍고, 파니 뭣도 찍고, 제오원소도 찍는다면, 하드코아 수사매직물은 뱀파이어 찍고, 괴물 영화 찍고, 엘리게이터 찍고, 총기 난사가 난무하는 뉴잭슨시티 찍고, 그러다가 돌아와서 입을 다 씻고, 마치 브로드웨이 몇 번 가인 것처럼 하드코아 수사매직물을 찍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함께 보는 경향이 있다. 클래식 음악 듣다가 잠을 자는 사람들이 그러한데, 그래서 그들에게 칼집이란 같은 것이고, 육즙마저도 신생과 사물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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