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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신해철의 죽음과 나의 고통의 빌딩숲의 슈퍼컴퓨터.........

by 마음대로다 2014. 10. 28.

신해철의 죽음과 나의 고통의 빌딩숲의 슈퍼컴퓨터.........

 

 

 

 

 

 

 

 

 

코스모폴리탄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방금 전까지, 공부하던 전국의 고시원 공무원 준비생들은 라디오가 내 것 밖에 없다. 눈이 내리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어차피 유혈혁명으로 이상사회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첨단의 노령연금 같은 스포츠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피곤하면 공부를 못하는데, 몸을 가둔 채로 공부만 하다보면, 다시금 스포츠를 잊게 된다. 그래서 코스모폴리탄들처럼 스포츠에 열중하면, 공부로는 조석, 벽돌을 쌓게 된다. 나는 인터넷 만화로는 조석의 것만 보는데, 그것이 여자들에게 손톱 같은 교양과 차별을 커피 전문점 위에 올려놓은 고양이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평론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드러낼 때, 철학자 헤겔이 말한 것처럼 즉자대자적인 언어적 일반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 앞에서 늘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필하거나, 숨가쁘게 돌거나, 헉헉대거나, 모른 척 하거나, 두려움이 심하거나, 하는 것이면 그런저런 토크쇼의 정점에서 술 없이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소주 한 잔도 못하고, 맥반석 오징어만 열 개 먹고 있는 자기 자신의 배를. 고시 공부를 하다보면 다시금 대장금 같은 영화나, 다모, 시쳇말로 좀비 명량대첩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우리들이 그와 같은 낙안읍성 같은 한복을 입고 싶어서가 아니다. 아프면 향기로운 한약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사약이라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한약을 먹고 죽었다. 공부는 어려웠고, 한자도 어려웠으며, 신돌석은 일본군과 관군 합동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다. 개화세력도 어려웠고, 위장척사사상을 갖고 있었던 지금의 부산 사상구 사람들도 우리의 목표점으로 두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해방된 조국이 있다면, 다만 열심으로 공부하고, 입격한 다음에 낙안읍성을 찾아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한바퀴 순행을 하고, 지는 해를 보면서 돌아오는 것이다. 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경주를 돌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문무대왕릉 앞에서 개인적인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심혜진이 나를 만나게 해달라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만나지를 못하고 있다. 고집을 피워서는 안되는 것은, 고집을 피웠다가는, 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손찌검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첼로를 손으로 켜다 하는 것이 있다. 얼마나 가슴 찢을 낙랑공주와 같은 임계점인가? 우리는 책이라는 가지런함을 갖고, 평생, 인류의 역사 모두, 사람들이 일을 하는 높은 탑을 건설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쓰러지고 만다. 사그라지고 만다. 책을 눞혀 놓으면 좋은가? 아니면 세로로 정리하면 좋은가? 책 한 권은 슈퍼 컴퓨터이다. 사람들이 그만큼의 기승전결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못마땅한 소설마저도 그러하다. 소설은 그나마 호리존탈 페스티발 정도는 된다. 사람들이 군대에서나, 감옥에 갖혔을 때, 가장 많이 읽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이문열과 노래하는 가수들은 그곳에 있다. 그곳은 명함이나 카드를 집어 넣으면 들어가는 크랙이다. 크랙은 곳인가? 아니면 크랙인가? 핫크랙. 국도와 같은 절대선의 경지를 달리다가도, 이문열을 닮은 가수가 특별한 시간에 녹음을 했을 것 같은 하트랙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음반은 하트랙이다. 하.트.랙. 이 아니라, 그것을 한꺼번에 발음할 수 없음으로서의 발음 같은. 만일 사람이 대학의 십이지장충으로 졸업을 하고, 사백 정도를 돈을 모아 구입하겠다고 해도, 시간도 없고, 돈도 금방 쓸 데가 생기고, 기적처럼 모은다고 해도 오토바이 운전 배우기가 막상 나이아가라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공터가 날 때부터 넓고, 삼촌이 늘 그런 조카를 맞이해주는 것처럼 있다고 한다면, 다행히 티비에서 보이는 서울시내 학원 교사들이 그 정도는 되는 듯 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사람의 목숨선은, 생명선은, 투비오알나투비, 하트랙은, 다른 일에 보다 열정을 갖게 하고, 거기에서부터 소산을 얻게끔 한다. 사람은 빠칭코처럼, 열정으로 쏟아붓고, 쇠구슬들을 얻어내는 하루가 아니면, 그런 산소가 아니면 죽고 만다. 나비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도 물이 있어야 산다. 물이 맑게 고인 곳에 나비가 앉는 것처럼, 여자들은 색소의 질주가 무엇에서 터지는 지를 모르고, 상상을 초월하는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옷을 입고 머리를 가꾸고 화장을 한다. 때로는 못난 남자를 사귀는 것을 대학에서 볼 수 있는데, 그녀의 선택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 것이다. 옳다는 것은, 그나마 남자가 르네상스맨이라는 것이다. 좌표를 보라. 대게의 경우 그러하다. 돌을 던지면 원환이 비로소 퍼지는 것처럼. 그르다는 것은 그는 분명 백 명 중에 한 명씩 꼭 있는 남자들의 비장한 윤상 음악의 화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내가 이승철을 싫어하고, 신해철을 대충 보는 것이 그것이다. 비로자나불이라고 있다. 이승철이 있으니까, 이충희, 허재, 현주엽 등의 인터넷 농구가 사람들의 영혼을 배양시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상의 예감. 말 따로, 음악 따로, 이름 신해철 따로, 서울 소재의 독특한, 자기 자랑 만가 타입의, 아티스트라고 부르기가 뭐한, 서강대 철학과 출신의 신해철이라는 것은 분명 독특한 것이었다. 여자가 신해철과 사귀는 것은 그나마 호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벽에 붙어 있고, 화장품만 책상 위에 놓고 있으며, 수업에서 발언권이 별로 없고, 영어를 잘하는 화면 바깥에서의 싸운드엔 퓨리이며, 난색 계열의 이미지즘을 갖고 있고, 난립하여 서점들을 몰아낸 듯한 커피전문점의 브아이피 국정원 용어로 말하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유럽을 좋아하고, 뚜레주르를 좋아하고, 내한하는 홥 아티스트를 좋아하며, 몇 명 건너에는 수녀들이 늘 진치고 있는, 독특한 페밀리 레스토랑. 그것들로부터 신해철을 구별하기란 용이한 것이 아니다. 신해철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화장 범벅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서울을 가면, 신해철을 만날 수 있다. 그도 물론 시대와 불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자신으로부터 발란스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시대가 그를 괴롭혀서인지, 그것이 융합되어서 전자로만 보이는지, 음악 세계 바깥의 우리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김지수. 이나영. 공일오비. 그런 나는 한없이 희한하다. 윤상의 노래를 만들지도 않았지만, 주어의 조사를 한자로 쓰려고 하면, 몇 개의 것을 백퍼센트 대여받을 수 있다. 그러니 그의 노래는 어느 선까지는 한강 조망권적이고, 순간적으로 객관적인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