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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강소라의 허드렛일 에피소드를 잠깐 네이버 tv에서 보고, 우리나라를 승급시키는 고급스러운 말을 덧입히면서......

by 마음대로다 2014. 11. 15.

강소라의 허드렛일 에피소드를 잠깐 네이버 tv에서 보고, 우리나라를 승급시키는 고급스러운 말을 덧입히면서......

 

 

 

 

 

 

 

 

우리는 파편화되어 있다. 그것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처럼, 홀로 독도 아니고, 포이즌도 아니며, 축배 사이다도 아니다. 학생들이 처음에 문무가 고급질 때, 함께 아무 사슴 없이 따르고 마셨던 것에서 벗어나, 친구들이 설사약을 타고, 그런 세상이 싫어서 혼자서 술을 담가 먹는데, 소크라테스의 독배, 배가 아프고, 술맛도 떨어지고........ 마치, 배를 깊은 검사 사무라이들에게 찔린 것처럼, 움켜 쥐고 걷다가, 발견하는 단풍잎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주체를 잃거나 잊고는 그만, 현균씨는 강소라를 좋아하지 않는가? 입술이 조금 타박네처럼 생기고, 목소리가 걸걸하면 싫은가? 할 것이다. 그런 매칭은 어째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가? 회사는 긴박하다. 환율은 춤을 춘다. 원유값이 오르면 오른다고 속이 타고, 내리면 내린다고 무슨 뜻인지 몰라서 속이 탄다. 그런 식의 주식 상장 바깥에서의 항목이 과연 가격 결정에서의 메인 값이 되겠는가? 나는 독립 분수를 좋아한다. 독립하라. 소리나는 대로 말하면, 동닙파라. 얼마나 그것의 음향은 듣기가 서원하고, 한번 가보고는 마음으로 다시 가는 도산서원 같은가? 별 것 없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건축은 가장 먼저, 지명에 질식하고, 강소라, 신현균, 풍경에 질식한다. 풍경에다 짓고나면, 처음에는 고관대작들이, 젊은 청년들이 오가는 것이 자기들 눈에 띄었겠으나, 수백 년을 살고나면, 인걸은 간데 없고, 오직 풍경만 승리하여 남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강소라도 좋아한다. 약간 내가 착각한 것도 있는데, 내가 좋아했던 영문학과 여학생이 듣기로는 안양의 어떤 병원 의사의 딸이라고 했었다, 몸에다가 금붙이를 장식하고 다녔었는데, 분위기가 강소라를 닮았었다. 강소란지 알았는데, 다시금 시침과 분침을 두고 명상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강소라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가 그 영문학과 여학생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것의 반사각 때문이다. 한신대생들은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 같은 잔잔한 분위기가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도 있었고, 부활도 있었고, 시나위도 있었다. 그들은 떨어져서 걸었다. 학생들이 극락의 불나비처럼, 최루탄 가스로써 영웅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리버럴 에듀케이션이 어디에 있다고, 그것의 처음 영상회상을 마다하겠는가? 마침, 성적이 적당하면, 한신대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한신대는 각종 통합 디자인들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강처럼 거대하게, 라미란 철교처럼 거대하게, 기독교가 흐르는데, 그것을 두고도 혼자만의 용기를 내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는 소식통으로 여자 이름이 무엇이고, 공부는 잘하는지를 보고 받을 수 있었다. 정보통이 공씨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보면 공자의 후손인 듯.^^ 둘 모두 공부에 대한 방사각과 무의식적인 바이브가 있었다. 사람이 책을 읽으면, 책의 진행과 나의 발음이 일치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위로 말하기도 하고, 아래로 말하기도 하고, 그것이 마치 진동하는 전기면도기처럼 나아가는 것이다. 음대생들이 대게의 경우 발음이 확고부동해서, 별다른 명사가 없는 것도 같은 직업 이전의 후리데스띠네이션이라고 하겠다. 단어가 없는 상태에서, 감각이 너무 뚜렷하다 보니까, 우리는 보통 가슴이 답답한데, 시내를 걷다가 머리가 답답한 현상이 발발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진성과 가성이 구분이 없다. 강소라를 보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야한 옷을 좋아하고, 진성의 팔할이다보니까, 목소리가 cb1100ex 같은 소리가 난다. 어떤 사람은 h2 소리 같다고도 할 것이다. 그것은 모두, 공부하는 사람의 진성에 대한 욕구이다. 진성. 그것은 무엇일까? 기독교 교육학과 후배 중에 여자의 진성을 내는 사람이 있었다. 만날 기회가 있으면 늘 잘해줬다. 그리고 자기가 논문을 쓰거나, 숙제를 하는데, 나와 나눈 이야기를 착안해서 적어냈다고 했다. 도움이 되었는데 이렇게 말로 고맙다고 해도 될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것이 진성이다. 그러니까 내가 잘해줬을 것이다. 여학생도 남자의 눈에는 지하철이었지만, 내 눈에는 번호가 없었다. 어쩌면 나의 한신대가 휘닉스 파크 같았다면, 여자의 한신대가 사람 별로 없는 기숙사의 실체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성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는 가성도 좋아했다. 높은 음을 좋아했고, 목소리가 걸걸해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흉내도 내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듣기만 좋아했다. 가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트기의 이륙 소리가 아닌가?

 

 

강소라는 허드렛일이라는 헬레니즘 학파의 도를 설파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플라톤이 헬레니즘이다. 그것의 도는 할아버지의 문장에 있다. 그는 과수원에서 일했고, 밤늦게까지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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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이 잘 맞춰지지가 않는다.

 

 

 

나는 여자의 내장을 보고 좋아했었다. 성적이 학교 입학 수준이었대도, 한신대를 온다는 것 자체가, 그 시절에는 거대한 음향의 팝뮤직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좋았고, 분명 그것의 두상은 공부를 많이한, 그리고 앞으로 많이할 두상이었다. 말을 걸었는데, 여자가 도서관 여기저기를 노루 사슴처럼 뛰어다녔고,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러다가, 더 이상 나의 옥체를 생각해서 그만두었었다.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지내다가, 마침내 깨진다고 하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내가 막 쫓아왔다고, 주변 동료들에게 말하는 듯 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미시결정의 경제학 저변에서, 어디에서 착화되는 것일까? 말을 건다는 것은, 정기간행물실을 우리가 주어진 것대로 읽고, 우리 식대로 읽고, 자기 스스로가 재정리하는 것처럼 읽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둘은 잘 될 수도 있었다. 만일 그 다음 날로 학교가 연탄 공장이 되고, 사람들이 잘 보이지가 않고,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팔고, 어떤 사람은 그들도 우리처럼 문성근이나 심혜진처럼 파탄이 나고, 공장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경기도 오산이라고 하지 않고, 강원도 정선이라고 변명하였다고 한다면, 나는 그 여학생을 다시 돌아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걸그룹처럼, 다음 날에는 다음 날의 딸기를 테스의 입에다가 먹여주는 부르조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전통과 육체, 도덕과는 상관 없이, 자유의 혼을 가졌으나, 계급적인 의지가 없고, 세계관으로서 통어를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일년이 되어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것이 미학적으로 보면, 운치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보내왔다면, 나는 밀도를 높이 보아주었을 것이다. 편지는 쿠키 아이스크림처럼, 혹은 보기 좋은 대리석이나 화강암처럼, 우리는 우리가 마블 홀즈에 있는 꿈을 꾸게끔 한다. 대게의 대학 시트콤들은 카타콤처럼, 흙이 단단하지 않아서, 오래도록 땅을 팔 수가 있다. 그리고 여자가, 내가 학교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소라처럼 야한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한다면, 아마조네스의 현신이라고 보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의 찬스와 같은 매질은 막상 필요할 때, 한 사람 앞에서, 온전하게, 기능과 효과를 펼치지를 못한다. 여자는 말을 못한다. 그러나, 남자와 있으면 말을 잘할 수가 있다. 나는 수준이 있어서, 바가지에 버들잎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면 무조건 흘리우는 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소라처럼, 무슨 말이든 하려고 한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이 생활세계 메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론과 가설의 영역에는, 어린아이의 손처럼 조막만 하다. 내가 뽀뽀 동산에서, 절망의 기울기에서 보았던 환상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한 번 만나고 둘은 헤어졌다. 뽀뽀하고, 만지고, 그것을 위해 순수이성비판, 아름답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남녀관계에는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를 공상주의자라고 해도 좋을 것인데, 사실의 오할이라는 것은 맞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자가 있지 않았으나, 여자를 그 당시 가수로 키울려고 채찍질하고 있었고, 검을 담금질하는 것처럼 여자의 머리를 잡고 물고문 하고 그랬던 것 같다. 민씨 성의 여학생이 나의 그와 같은 예술적 의지를 알아보고 뒤늦게 접근하였으나, 내가 팔이 네 팔이지 못해서, 두 팔이래서 그녀를 보냈던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남녀관계 상호간의 조개살은 매우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뜨겁게, 비내리는 안양 시내 어딘가에서, 내게 조개 하나를 올려놓았으나, 보노보노 만화처럼, 생각하면 매우 강력하게, 나는 마치 여자를 학대하는 것처럼 나만의 강의를 행하고는 여자에게 사요나라 하였던 것 같다.

 

 

 

 

영문학을 잘한다는 것은, 다만 삼류대에서도 진정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분명 여자가 나처럼 목을 메고는 따라 다닐 만한 매력을 많이 내비치고 있었다.

 

 

 

 

 

 

나는 나의 필요한 물을 마시고 있었고,

여자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은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