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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한창 때의 한신대와 그냥 그런 서울대의 차이점.......

by 마음대로다 2014. 12. 2.

한창 때의 한신대와 그냥 그런 서울대의 차이점.......

 

 

 

 

 

 

 

 

 

한신대는 그곳 어딘가에 여신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시위도 하고, 최루탄 가스도 쓰고, 밤낮으로 투쟁 모임도 갖고 하는데, 무슨 여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라는 것인가? 그것은 콘템포러리하게도, 저녁이 되면 알 수가 있다. 한낮의 시위는, 저녁에 맛있는 맥주를 먹기 위한 일종의 아이스일 수가 있다. 우리는, 정현종도 있었고, 황수관도 있었고, 황종연도 있었다. 시위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늘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였다. 신경을 자극하지 않고, 집에 가면, 당장에 집안 분위기가 어눌해진다. 아들은 멍청하고, 딸은 드라마를, 그것의 유창한 믿음을 사랑한다. 아내는 순전 금과 경제만을 따진다. 자기도 대학을 나왔고, 자기도 캠퍼스 커플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으로라도 국가가 자극한 것을 두고 성토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대자보 글씨와, 걸게 글씨, 그림들이 힘이 넘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는 정부와, 독재와, 북한과, 미국이 꼭 나왔다. 우리는, 한 점의 작은 점 같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변유와 사유가 나온 것은 그 도식 어느 쯤에 있다. 그것은 세련됬고, 실제로 밭을 가는 것 같은 우경감을 제시하였다. 어차피 유물론이라면, 변증법이 있는 것이 좋고, 약간의 헤겔리안을 흡수하는 듯한 엿보기. 피핑. 또한 어차피 유물론이라면, 역사가 그것의 정신과 관념을 대신하면 좋지 않는가 하는 중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한국 역사가 기다리고, 때로는 도사리고 있던 것이었다. 엔엘과 피디가 나뉘고, 서로 주장을 달리한 것이 그렇게까지 유치하지가 않았다. 유물론적 학습에 치열하다보니, 우리의 보편은 반도에 있는가? 아니면 철학에 있는가? 하는 대논쟁이 아니겠는가? 갈 만한 땅이 없는 보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습이나 쟁기, 소가 없는 너른 땅이 무슨 생산성이 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춤추고, 나아가고, 우리의 저마다의 명찰을 그렇게 달았던 것은 틀린 것도, 완전히 맞은 것도, 왜냐하면 훌륭한 프랑스 철학자가 우리에게는 없었으니까, 대게는 번역가요, 약술가요, 왠지 모르게 소년들에게나 히치하이킹하는 것 같고, 도올이나 으뜸의 듣보잡이었으나, 그렇다고 한다면, 저마다의 유니버셜한 학과에서 공부한 것을 마중나와줄 한강의 공원 같은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과대망상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몇 개의 윤상의 노래가, 그것의 인스투루멘탈이 나에게서 극진한 환대를 받아서 계속해서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개의 윤상의 노래가, 그것의 인스투루멘탈이, 아무 변유 없이 공부만 하다가, 마침내 대학에서 갖게 된 과대망상을 들어줄 이, 받아줄 이, 잠시나마 채워줄 이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아, 어쩌면 가슴이 아파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인 우리가 자기가 다니는 과사무실을 지나가다 보면, 그 옛날의 변유와 사유의 과대망상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그렇게까지 틀리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한 소절도 나의 진심을 갖고서 전진하지 못한다. 관념이란, 그룬트, 그러니까 근두운과 같은 것이다. 관념이란, 대학생 a군이 태어날 때부터 상관이 없을 운명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대학까지 나오고, 이런저런 기초물리학의 향연인 자동차 보험 기사가 될 수 있겠는가? 변유도 아니고, 사유도 아닌, 다만 계급의식의 소비지향적 결과가 전부가 아니겠는가? 운동을 한다는 것의 스펙타클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습진적으로, 시위를 도심에서 벌였던 것은, 그것의 하늘 높은 최루탄 가스는, 그들이 모두 신치용의 삼성 배구단이나 되어서, 거기서만 영웅이 되고, 거기서만 관념이 있는 듯이 높이 날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관념의 행진을 구가하는 나에 대해서는, 내가 사고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판단은 커녕, 자기도 뭔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에, 그것은 변유일까? 아니면 사유일까? 주자학적 모르쇠가 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을까?

 

 

 

 

오늘 아침 나는 새 마리의 개를 보았다. 마지막 한 마리가 새끼였는데, 관념의 a에 머무르려는 의지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이 조금 심쿵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