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만족,코스타릭아 편: 나는. 오늘도 난. 슬픈. 노래의 비평의 날개를 타고를 한. 장. 쓰고자 한다.......
코스타리카는 익숙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의 이름을 아는 어린아이면 당연히, 삼척동자도 코스타리카를 안다. 그것은 아타락시아, 유데모니아, 바하의 비변사 같은, 정민변정도감 같은, 아름다운 발음 하나에 국가 하나라고 하는, 하늘나라의 법칙에 준하는 것이다. 최근에 월드컵 사강에도 올랐고, 작지만, 가난하지 않는 나라라고 알고 있다. 워낙에 브라질이, 블랙 올페우스 영화가 유명하여서, 다른 나라는 문명도 문화도 영화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카니발의 아침, 그렇지 않다. 이번 조선통신사의 피를 쏟는 행보는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벌레 먹은 과일은 보편적이며, 가시 많은 나무는 완전 보편적이다. 사람이 배고픔에 당황하는 것은 보편적이며, 게 한 마리가 사람들을 꼬드기고는 일절 다른 개체수를 보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안데스 산맥으로 올라야, 사람들이 침범하지 않는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우유니 평원 정도나 가야, 흰 색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프렌차이즈를 만날 수 있다. 고흐니 고갱이니 하는 사람들은, 색깔의 마술사, 그러니까 매지션들이지만, 속칭 유색인종이라는 사람들은 색깔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고갱이 특히, 타히티에서, 색깔의 마술사로서, 색깔의 사람들을 그린 것일 것이다. 그와 같은 백제적인 콘셔스니스는 참으로 자연 같기도 하고, 인공 같기도 하며, 전통 같기도 하고, 김정은의 유러피안 커피믹스 선전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색깔은 그와 같은 어린아이의 경제학도 없는 판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공부를 해야, 그러니까 스페인어라도 공부를 해야, 경찰서에 잡혀 있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항변할 수 있고, 전화를, 영사관이든, 대사관이든, 할 수 있으며, 쎄라도, 알비에르토,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 노력하여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면, 당장에 보편적인 피자처럼 사람들이 주체 못할 색깔의 만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술을 먹고 다음 날, 술에 떡이 되었다, 동래 파전이 되었다, 베이컨 피자가 되었다 말하는 이유가 그것인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에 다녀왔다는 것. 그것은 기억의 학문적 승리에서 낙원 추방 당했다는 것이다. 예술가를 알고, 학자와 시인을 알았던 대학 도시. 그러나 캔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알고, 스타킹을 알고, 폭력 사극 영화 찍고, 돈을 주고 받는 천박한 불가촉 천민의 고구려 땅을 알았다는 것. 그런 것에 들어가 기운생동하는 것도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자기가 설득하고, 자기가 설복 당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서희의 강동육주라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심층의 배반율이 아닐까 한다. 이런 식의 백주를 많이 심어서, 정보통신도 없던 때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다듬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산적과 야만이, 서희와 같은 백면서생을 꼬드겨서, 자기들의 대변인으로 만드는 것이 추운 날 설산에서의 풍경인 것이다. 도리어, 싸울 줄 몰랐던 제갈공명이라는 것도, 아주 넓게 보면, 책사라고 보기에는, 책을 엿바꿔 먹은 수많은 해시계들의 치양지들의 대명사가 아닌가 한다. 처음에는 싸울 줄 몰랐는데, 활을 연습하였다든지, 말타기를 연습하였다든지, 그런 식으로 모습을 가다듬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조선의 역사는, 끊임없이 서희었던 사람들이 여진족에게 강동육주를 빼앗겼던 것의 반복이 아니었나 싶다. 서희가 백제인이었을까? 여진족이 유색인종이었을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유화를 좋아하고, 불교의 탱화까지도 좋아하는 백제인이 어찌 없겠는가? 르누아르를 좋아하고, 미켈란젤로를 좋아하고, 클림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그것의 문제의식은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드러난다 하겠다. 우리는 거기서처럼 맛있게 누들을 먹을 수 없고, 위스키를 마실 수 없다. 왜냐하면, 백제인이 학교 다닐 때, 강동육주를 빼앗기는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진족이 되면,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하는 것이고, 강동육주를 빼앗기면 영화의 언피니쉬드 피니쉬 기법으로서, 영화라는 세계관을 확보하여서, 우리는 내일의 삶의 활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도 서희가 흰 색의 말을 타고, 흰 옷을 입고, 설득하다가 아니되니까, 여진족을 쳐부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거짓말이라도 만나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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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그러나 보편적인 것을 찌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자의 세계에서의, 여자들의 맥시멈 어프로치이다. 나는 모더니즘의 세계에 살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는 살아본 적이 없다. 산수동에 초가집이 우물가에 오래도록 하나 있었는데, 그 즈음 어딘가에서, 어느 성격이 꼬장한 할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했었다. 나는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었다. 나중에 드는 생각이 그때의 반응의 씨앗이었다고 한다면, 굉장히 우스웠었다. 아는 것도 없는 것이 육성만 크다는 생각이 어디에서부터 내게 빛처럼 들어왔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저런 것들 때문에, 조선이 일본에게 점령당했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산수동 사람들은 할아버지로 인정하여, 소리가 들리면 반응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금방 지나갔다. 내가 굉장히 큰 사람으로 백제 그려지겠지만, 어린아이였었다. 어린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학교를 벌써 피곤하여서, 집에만 가는 경우가 많다. 개새끼. 나는 무섭고 시끄러워서, 그냥 집에 갔다. 나는 집에까지 가면서 수많은 집을 보았다. 언덕 아래로 있는 집이며, 골목을 지날 때가 가장 좋았다. 피곤함과, 지겨움, 흥겨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고, 내가 나이 들어서도 이런 집에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왜냐하면, 언덕의 풀숲이 좋았고, 하늘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주의 은혜로도 지냈지만, 수많은 여자들을 관념적으로 엄보면서 지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식이 많이질수록 사람 수가 줄어든다. 병만족들이 불쌍의 코드를 펼쳐보일 때마다 골치가 아플 정도인데, 이태임이라는 배우도 그랬었다. 나는 한 번도 작품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던지면 맞는 케이스처럼 흔한 것이겠지만, 모더니즘 어딘가에서도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내 얼굴이 비교적 잘 생긴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만남의 장애가, 로미오처럼,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여자애는 자기 집, 좋은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보조개 나온 얼굴로 웃어보이기도 했었다. 그것을 내게 향한 것이라고 여길 수는 천부당 제과점처럼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의 마음은 깊이 교호하였었다. 그 꼬마애와 결혼하고 싶었다. 나는 시도 모르고, 겨우 국민학교 일학년인가 이학년인가 다녔었다. 이태임의 얼굴은 그것의 계열로는, 내가 그녀를 어딘가에서 보았다는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태임의 얼굴 그 자체를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농고를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예고를 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의 사분의 일 가량이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었다. 농고를 가서는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고 놀고 싶은 농자천하지대본야, 개그콘서트, 예고를 가서는 하루 종일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가야금 타는 여자 친구와 러브 로망을 행하는. 그러나 나는 금호고에서 내려서, 공부를 했었다. 에너지가 고갈이 되었는데도, 백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하는 어쩌면 참다운 백제인이 되었을 것이다. 백제적 유색인종. 나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태임은, 발레를 했고, 그림을 그렸다. 나도 그림을 그렸고, 노래를 했었다. 하지만 남자는, 관념이 지금의 제도에서도 살아남는다. 여자는 그렇지 못해서, 형상으로 함께 진주성에서 추락하고 만다. 내가 오토바이를 혼다에서, 베엠베로, 스즈키에서, 야마하로 갈아타면서, 내가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향하면, 그것이 로키인지 아닌지 구분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서 흥겨운 추위, 여름 날의 극지에서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고, 안부를 묻고, 여행자로서의 기분을 다윗왕처럼 만천하에 고하면, 그것이 그려려니 하지만, 이태임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거기서 헤어지고, 인디오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감추어져 있다. 여자들은, 용모는 서울대학교이지만, 습관이나 예법은 코스타리카만 하고, 왜냐하면 브라질이 너무나도 크게 있어서, 헤어짐은 논개(cannon)처럼 맺음 없이 끊음만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남자의 잘못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남자의 하늘이란, 성취하는 것을 흉내낼 수는 없고, 그것의 끊는 장면만은 눈에 들어오고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러피안 인디오들은 더더욱 흰 색이 되기를 갈망하였었다. 그것에 지식의 진리, 에일리언 같은 선하고 만능적인 조절 가능한 괴물이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모더니즘의 세계든지, 포스트 코스타리카든지, 훌륭한 기계 장치로써 괴물 영화를 보고, 눈이 뒤집히고, 로키와 안데스를 하나로 접어버리는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은, 일종의 철학적 야망의 역린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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