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고스트라이터' 1편이자 어쩌면 독립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내게 물을 것이다. 언제나. 경기도 어딘가에서. 혹은 경상도 남해 어딘가에서. 문학작품은 위계가 있는 것인가? 나는 대답한다. 위계가 있다. 대위법이 훌륭한 글을 읽으면, 군대에서 대위가 될 수 있다. 카운터포인트라고 하는데, 카운터펀치와 같다 하면서, 집 근처에 있는 권투연습장에서 그것을 연습을 하면, 분명 그 사람은 건강해지고, 클레멘타인, 대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벽돌과 정성을 안다. 문학에는 위계가 있고, 대위 위의 계급을 연습하면 또한 그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위 위의 계급이 없는 것이 히트이다. 사람들은 로린마젤도 있고, 이런저런 패밀리 레스토랑도 있고, 샐러드 바도 있는데, 고작해야 군대의 대위가 가장 높은 계급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군대에는 대위가 가장 높은 계급이라는 것을. 계급이 넘어가면, 사병들과 행군을 하지 않는다. 짚차를 타고 다닌다. 일단데후. 나는 그렇게도 짚차가 타고 싶었다. 지금 타고 있는 데이스타도 어쩌면 그때의 염이 뒤늦게 나를 짚친 것일 수 있다. 사병들은 대위와 같다. 만일 지나치게 계급을 강조하면, 도리어 공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사병이 대단한 것은, 군장이 무겁다는 것이고, 대위가 대단한 것은 함께 끝까지 걷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군을 시작하면서부터 새하늘을 보고, 행군이 끝이 날 때, 뿌듯과 보람의 불꽃놀이를 본다. 기독교인은 주여주여 그러고, 일반인들도 울먹울먹한다. 우리가 어딘가를 그렇게 갈 수 있을까? 그런 기분 같은 것. 이렇게 누군가 강요를 하니 걸었다는 것. 내가. 와따시. 내가. 와따시 걸을 수 있을까 같은 회의주의. 하이데거의 니힐리즘 같은 것.
위계에 있어서, 성경이 당연 으뜸이다. 그리고 우리는 숱한 대위들을 만나면서, 삶을 사는 것이다. 조선 반도는 훈고주의처럼 성경이 지배하고 있고, 일본은 한국에 있었던 사림들이 죽지 않고 또 온 것처럼 거기서 목숨이 연명되는 것도 같다. 대위들이 있다가, 없다가 한다. 대위들이 있다가, 없다가 한다. 한국 엘리트들이 일본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산다. 옛날에는 일본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랬을 때, 일본의 문화와 기술이 중화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객적인 첼로가 자리 잡고 있다. 비행기로 다녀오는 템포. 배로 다녀오는 그윽함. 아기자기함에 대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있음들. 폭력적이지 않는 건물들. 도리어 지진이 일어나면 불쌍하게 흔들리는 높이.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른 데에서는 한 방에 배앓이를 하고, 교통편이 한없이 불편하며, 먹을 것에 대한 기대심리 자체가 하루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도 먹고, 저기서도 먹고, 다코야키도 먹고, 오코노미야키도 먹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한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그렇게 반겨주는 나라는 세상에 별로 없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여배우가 이라샤마세할 것 같다. 금강산이 아름다운 예술이라면, 일본은 분명 식후경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대위들. 셀 수 없는 카운터포인트들. 문제가 있다면 식후경 다음에 있어야 할 예술적인 추진력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가게가 깨끗하고, 공부를 늦게까지 하고. 다만 예술적인 추진력이 없어서, 건물에서도 다만 그것으로 그치는 듯한 아이보리색의 점퍼차림의 소형 스쿠티안 아저씨.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충분히 높은 대위 엑스제이알천삼백이었지만, 한국에서 살아남아서 보면, 빅네이키드를 타는 스쿠티안 아저씨인 것이다. 일종의 이중 카운터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일드 고스트라이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출판에도 몸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게도 하고,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스쿠터 타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렇게 삼박자?를 이루고는, 저녁에 고기 태운 냄새와 함께 비르를 마시고는 잠이 드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카레를 좋아하는 것은, 다만 맛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카레의 종류도 엄청나다. 갠지즈강의 모래만큼이나 많다. 강황 성분 때문에 먹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의 지식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에는 신이 많은데, 실은 지식소가 많은 것일 수 있다. 강황 성분이 몸에 좋다는 것이 크게 유행을 타서, 그만 아이보리 색의 점퍼가 조금은 노란색이 진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것의 출판의 고통은 끝이 없다. 어쩌면 김종욱 찾기라는 한국 영화는 무의식이 전이가 되어서 창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대위들은 많은데, 한국의 상사들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 과연 한국에 중령 대령이 있는지 우리는 의심스럽다. 스타가 있는지 스타크래프트, 알 수가 없다. 일본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중령 대령이 소설을 읽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와이라고 하는 친미 경향의 기독교 유네스코로 빠지다가, 미국의 대공황 시대로 역사성의 영어 마을이 그만 견고해질 것 같다. 그게 뭐라고? 대체? 미국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장성급의 교양을 좋아하겠는가? 하와이에 있는 사람은 좋아하겠는가? 죠셉 켐벨과 같은, 지젤 번천 같은, 그런 사람이 좋아하겠는가?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은 하루이다. 그리고 하루는 다음 하루의 연속이다. 그와 같은 연속적인 원통형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대공황 시대 때의 미국사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 내가 왜 하는지도 모르고, 누가 나를 위협하는지도 반성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사랑하는 일본, 그리고 그의 드라마 고스트 라이터는 깊은 밤 시간에 강원도 산악의 급경사를 사병들과 내려오는 중대장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들은 수많은 카운터포인트를 들고,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육공을 어깨에 짊어질 때는 하늘을 원망했지만, 그것의 무게가 다만 첼로의 선율만으로만 남아 있는 기억의 뇌구조 안에서는 그저 영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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