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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이여송 장군의 성공과 실패의 스테레오 카세트 타입.........

by 마음대로다 2015. 5. 31.

이여송 장군의 성공과 실패의 스테레오 카세트 타입.........

 

 

 

 

 

 

 

 

이여송 장군 때문에, 무등산이라는 이름이, 정확히 그 이전에는 무슨 이름이었고, 무등산이라고 이름이 확정 판결이 된 때는 언제였는지 모르겠으나, 징비록에서 묘사된 케이비에스 이여송 장군 때문에, 그 화려한 마상 질주의 모습의 안타까움에서도, 무예 무 武등산이 되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주사위를 이렇게 던졌으니, 무예 무의 종주국은 어디인가 한번 따져볼 일이다. 징비록은 최대한, 케이비에스, 만나면 좋은 친구, 논쟁의 난맥상을 묘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것은 어제 만들어서, 오늘 찍는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옛날에 봤던 것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어느 부분의 카세트 테잎, 한신대학교 내 친구의 자취방에서, 나의 자취방에서, 걸어서 서해까지 이르는 길의 또한 어느 평안한 사람 사는 청년 지식인의 서재에 박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서재라는 말. 서재필.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득한 일이다. 지금은 인구수가 늘었고, 사람 사는 곳이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아파트까지 있어놔서, 개인의 방의 체적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벌판은, 특히 겨울 벌판은, 걷다가 얼어죽기 적당하였고, 시골집이라도 해도, 불을 땐 부분으로만 사람들이 있었지, 창고나 이런 저런 쓰지 않는 방들은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극단적으로 서해 유성룡처럼 늦추워질 때, 그런 곳에서도 어린아이처럼 들어가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머리와 의식에, 뇌막이 스크린처럼 덮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사의 지위에 오른 사람인 경우에는, 사람들이 사투리를 쓰고, 친구 찾아 막걸리 마시는 사이클로 하루 왠종일을 도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귀촌이니, 귀농이니 많은 인구가 생각하고 있지만, 자동차라는 이동의 근육과 더불어, 개인의 교양적인 양명학이 확장하여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도시의 그 작은 방에서도, 사람들은 네 명도 자고, 다섯 명도 자고 했었다. 마치 꽃이 피어나듯, 광주에서는 동명동 같은 부촌에서부터, 집들이 커졌고, 방들이 커졌으며, 피아노를 들여놓고 했던 것이다. 이여송 장군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평양이라는 이상도시에서 벗어나, 현실권력의 도시에서는, 사람은 삼십 평생을 라이어 게임을 하면서 지낼 수 있고, 그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겠지 여기는 나머지 삼십년을 환갑으로 채우면서 또한 라이어 게임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점집의 주문처럼, 혹은 부적처럼, 바울의 로마서를 십독 하면, 백독 하면,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고, 신지츠이다. 백독을 하는데, 백제, 다만 백독만 하겠는가? 이여송 장군은 스테레오 타입 하나가, 목에 꼽혀 있다.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기도 하고, 주변의 생각이기도 하며, 중국인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멈춤이 된 상태로, 다시 한번 중일전쟁으로 재현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부딪히면 깨질 운명이라는 저급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예 무라는 것. 그것은 무슨 프랑스 말 같기도 하다. 무예 무. 예자를 빼고, 무술 무라고 해도 그렇다. 그것은 무슬림처럼도 들린다. 한국 사람들은 무슬림을 만나지 못해도, 무슬림을 매우 좋아한다. 참이슬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포차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은 계속 마셔도 좋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할거야 노래를 언제까지 해도 좋다. 

 

 

이여송 장군은 어떤 문학적 배경을 갖고 장군까지 되었을까? 전장에서 두루두루 공을 세우면 당연히 실력을 인정받게 될 것이고, 그것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신립 장군이 광주 신씨이고, 성경을 읽고 장군까지 된 것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도, 평생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끼리 텔라파시로 전해지는 내용일 것이다. 아무리 평산신씨라고 해도, 사람들은 평산이 어딨어? 황해도? 하면서, 광주의 여러 성씨 중에서, 산포적으로, 혹은 선별적으로, 혹은 자수성가적으로 신시썽을 부여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려서 신씨가 되어서, 장군까지 된 것으로 아는 것이다. 누가 지리산의 내리는 해처럼 자기를 연마하는 사람이 있을까? 산청 사람들은 알고 있다. 진주 신씨이며, 순천 이씨이다. 가문적이고, 관가의 통계적으로 신씨에 속한 사람으로부터, 다시금 신씨를 인정받는 사람인 경우에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대게의 신씨는 다른 성씨와 똑같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냥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떨어지고. 은행나무 가득한, 나뭇잎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렵에, 덕수궁 돌담길에 합격자 명단이 펼쳐지면, 많은 수의 신씨가 있는 것도 아니요, 자기 아는 신씨는 떨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씨. 이씨. 박씨. 최씨. 심지어는 신씨가 합격자에 없는 때도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무슨 말인지 알지 않은가? 다만 그렇게 접혀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이씨가 최고이다. 신씨는 너무하다는 느낌, 너무 마태복음하다는 느낌이 있다. 누가복음 정도가 되어야, 사람들은 너무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이씨이다. 중국의 전등신화 고소설집에서도, 이장군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어쩌면, 그렇다. 장군의 모습이 가장 잘 묘사된 것이, 바로 그 전등신화에서의 이장군이 아닌가 한다. 무예 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무등산이란 정말이지 금동대향로 같은 것인가? 그 크고 뜨겁고 아름다운 붉은 원이 지리산으로 천천히 내리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정말이지 저처럼 문무가 하나로 되는 사람이 있을까? 감격해 하게 된다. 중국의 소림사를 보자. 이연결을 보면, 그것을 찬기파랑가처럼 채우려고 했다. 그것의 원을 내가 계림극장에서 보았다. 나는 뜨거웠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고, 복수결정체, 스크린의 고통과 나의 감각이 구분될 수가 없었다. 계림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세상이 그처럼 부처님의 장엄한 신화 속에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무예 무가 아직, 모든 소년 존재에게서처럼, 바로 눈 앞에서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부하면서, 탁구를 곧잘 쳤던 것도, 그와 같은 간격을 메우려는 파리 존재의 애타는 비행이었는지 모른다. 우연히 들어온 백제의 파리가 아니라, 막걸리 냄새가 나고, 파리끈끈이가 붙어있는 곳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파리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간다고 해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늘 예수 현상학이 터지고 마는. 관계의 무한한 언밸런스........

 

 

사람들은 삼국지며, 수호지, 치양지 같은 것이 있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것에 대고, 꼭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잘 대답한 것처럼, 다른 방식이나 루트의 라이어 게임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세계 정신은 어느 정도, 두 개의 벽돌에서 갑자기 새로운 지평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헤겔의 철학사이며, 한국에 번역된 것은 그리스의 것들인데, 다른 하나는 누가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전이다. 후자의 책이 우리 정신에 만연한 것은, 그들의 삶이 공히 희극이던지 비극이던지 했지만, 몇몇의 경우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다. 티비로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많다. 허다하다........

 

 

 

 

어떤 시점.....

 

 

새벽 버스를 타고, 제부도에 내려, 그 긴 길을 왠지 모르게 다리에 힘이 좋은 듯한 장미인애양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

 

 

 

 

 

 

 

 

 

bgm. 라비니아 메이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