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나는 이런 기억 밖에 없을까?
나 없는 사이에 다른 전쟁이 있었던 것일까?
내게 죄가 있다면, 당시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참고서 살 돈으로, 말 한 필과 스쿠터엔 스타일, 멋진 장수 복장을 해입었던 것이 전부일 것이다. 어머니는 등골 브레이크. 아주 없는 살림에, 돌아가시려고 했다. 그러나, 내게 만화가 허영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험도 보고, 무과에도 합격하고, 합격한 상태로 근무지를 알려주지 않으니, 합격증과 소문과 그 이전부터 갖고 있던 인지도를 갖고, 관아에도 놀러가고, 정자에서 술마시고 있으면, 이상하게 인기가 붙어서, 상석에 앉고, 시문을 읽고 했던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본어로 난다요, 난다요, 전쟁이 난다요. 어린아이들이 동요를 부르고 다니면, 나는 혼내키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동요를 빌미로, 칼이나 활이나 마구 장비들을 후원받기도 했었다. 나는 육군인지, 해군인지 정해진 바가 없었고, 하룻밤 사이에 광주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대전으로 가기도 했었다. 다시금 하룻밤 사이에, 말이 지치지 않는 이상, 수원으로, 수원에서 서울로 가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작심만 하면 나흘 안에 광주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의 말의 힘이었다. 어떻게 말은, 해를 받으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고, 저녁에 달이 비치면, 알 수 없는 힘을 얻어 지치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서 늘 다시 태어났고, 해가 지는 것처럼 이런저런 미닝들의 오아리를 만들어냈다. 나는 사진 같은 것을 상상했었다. 한번은 붉은 장수 복장을 하고, 실전이 없었으니 아주 빛이 나고, 광이 나고, 왠지 모르게 늘 새옷 같았는데, 이런저런 언덕에서 큰 바람을 받다 보면, 내가 너무 멋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상하게 아무도 없었고, 사진기 같은 검정 사각형 기계를 공중에서 상상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유성룡이 나를 전라도 지역 해군 제독으로 임명하였고, 나는 조금 의아해하다가, 수락했었다. 김수락이. 그런 개그 프로그램의 돈호법이 생각난다. 무슨무슨 마을 김수락이. 그래 무슨 일로 서울에 왔노? 나는 공부도 하고, 글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여자들과 사귀면서 지내다가 그런 임명을 받고는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군사 교육을 철저히 시켰고, 남는 시간에 사병들 하나하나에까지 고등교육을 시켰다. 그들은 교과서라는 것을 처음 받아보았고, 남정네들인데도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일본군들은 기가 막힌 옷을 입고 내방하였는데, 다들 비까번쩍하고, 내가 하는 말에 잘 웃고, 한국어를 잘했었다. 먹을 것도 가지고 와서, 한 달 동안을 놀다가 간 것이 몇 번 되었다. 그것이 임진년 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 가물가물하다.......
^^
거북선을 누군가 만들었는데, 그가 예술가여서, 나는 한 대 정도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돈이 굉장히 많고, 주변에 사람도 많고, 할 일이 없어서인지 엄청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조선인이었는지, 놀다가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었는지 그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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