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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우리 시대 건축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가?

by 마음대로다 2015. 9. 25.

우리 시대 건축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홀스.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니. 우리는 이 정도의 정신과 관념의 간극만 가지고서도, 집 밖을 나갈 수 있다. 어느 내가 좋아하는 휘트니스 셀리브러티가 자기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집이 싫어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집이 싫다는 적극적인 느낌이 아니라, 집이 특별히 좋을 것이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 말이 묘하게 뇌를 진동시키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곱창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소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죽기 전의 앙상블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들의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문장은 분명히 호불호가 있다. 곱창을 뜨겁게 먹다가, 호호 부는 것은, 좋다는 것이다. 불고 불고 계속 불기만 하는 것은, 불호,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이제는 불다가, 내려놓겠는가? 그와 같은 한 죽음을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한 한 연구. 대학생 시절, 약간 표정이 그렇게 호감이 없던 국문과 친구가 그것을 고르고, 책을 읽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한국 사람이 쓴 노자 연구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제니, 이름도 잊어버린 모양. 이름표를 갖고 있다가, 아파트 촌 옆에 나 있는 소나무 동산에 다녀오면서, 잃어버린 모양. 아무튼, 그런 과장된 제스쳐와, 전진하지 못하는 문장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들 중에 석영질이나, 규소, 뭐 그런 망간 재질의 사람들은 읽을 수가 있다. 공통분모가 있고, 공통분자?가 있는 것이다. 나는 늘 공통분모를 좋아했고, 그것을 모르거나, 유난히 그런 것이 싫은 남학생들은 공통분자를 찾게 되어 있다. 만일 그와 같은 사림적인 법망에서도, 송유관, 혹은 성균관 대학, 기름이 터진다면, 우리 옛시절의 박정희 석유 시추 사업처럼, 나름 괜찮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순인 것이다. 다만 공통분모 위에 있다는 뜨거운 양철지붕의 현실. 무분별한 문자주의. 지리산 자락의 게스트하우스. 남해의 펜션. 내가 경복궁에서만 잠을 자는 이유는, 내 생명에 대한 기호 뿐만 아니라, 다만 인구가 그리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제니, 이름도 잃어버린, 소나무 언덕, 어떤 별로 능력 없는 한국 철학자의 젊은 시절의 요약 논문, 노장 철학을 아주 재밌게 읽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이런 일은 별로 없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생 때는 배부를 일이 별로 없는데, 사회생활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마침내 곱창을 불다가 불다가 술도 취하고, 그만 내려놓는 일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학생 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건국대. 단국대. 이화여대. 상명대. 동국대. 경제과. 문창과. 서울예대. 연극부. 애니웨이 가능하다. 그럴 때는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학생이 아니야. 학생은 늘 부족하고, 마치 공부 잘하고, 집안이 가난한 것처럼 연기가 되는데, 뭐야? 아버지가 피던 담배도 끊으셨는데, 나는 곱창이 곱창이

 

그와 같은 디아스포라. 디아도라. 유니클로는 명동으로 나아가는 단독자의 자의식을 훼파한다. 우리는 거기서, 외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한국의 천주교는 바로미터이다. 그들이 늘 건축상에 머리를 내미는 것을 호불호, 불다가 불다가, 먹을 필요도 없고, 배가 고픈데 내려놓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내게 천주교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꽃이 피는 것처럼 유희열을 느낄 것이다. 유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믿음이 좋다고 한다면, 나는 궁예가 전쟁 중에도 사랑했던 아내를 만난 듯, 오직 불경의 기호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 기쁨을, 기여코 표현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물론, 개신교 빼어난 학생에게는 늘 눈엣 가시이지만, 조금만 돌이켜 보면, 그 또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돌아다니는 것을 저변이라고 한다. 캐스팅은 마침내 석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종교적으로 석고가 되었는데, 석고대죄, 나서서 하나님께 잘못을 빌어도 될 정도의 아픔이고 슬픔인 것이다. 그와 그녀는 믿음이 좋다. 누군가 그것을 강제로 입혀줬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나?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너무 맛있게 먹었다. 기도처였었는데, 토스트, 달걀......

 

아무튼 우리 빛나는 소주와 곱창의 아우프헤붕으로 나아가면, 이미 서 있는 서울의 건물과, 그것의 그림자를 호불호 싫어하고 배아파할 것도 말 것도 없다. 처음부터 그것에 맞춰진 삶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그들은 나의 친구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서울시 건축상이라는 극단적인 표제어는 비극이고, 희극이며, 일종의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세워야 할지를 모른다. 그들은 남미에서 지갑을 도난 당하고, 한국 영사관이나 대사관에 가면, 그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로 변해 있거나, 조로의 마적단들에게 너무 좋았으~ 집단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이나 목격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대장금을 사람들이, 세계 인민들이 사랑했던 것도, 한복에 피를 쏟으면서 모란 그림을 그려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의 탄생 수학이,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세계 인민들의 티비에서도 감지가 되는 것이다. 캄차캬 반도. 쿠릴 열도. 소치. 대치. 오픈 프라이머리........

 

우리는 납치 당한다. 우리는 우리 안의 부조리와 비주류, 결과적인 의미에서의 성악설을 숨기고 다닌다. 티비를 보고, 다만 이영애가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탤런트를 무시하는 듯, 접수해주는 것이다.

 

문학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다. 서울시 건축상. 회기는 이름 자체가 서울시 건축상이다. 그러나 회기에 무엇이 마땅히 있지도 않다. 밤섬. 그것은 정말이지 거대한 꽃이다. 그러나 플로팅 아일랜드는 민어의 비닐만 같다. 서울시 건축상은 미운 천주교 건축상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그것의 관계를 씨엔엔은 침출수 같은 영어 플루엔시로, 어딘가 막혀 있는 듯한 혀관절 같은 것으로, 규명할 수가 없다. 그것의 지연은, 아이들을 섬망으로 이끌고, 생각의 차단을 상설시장으로 만든다. 늘 언제나 말했다. 바로미터라고 했다. 바로미터가 pope k 매직 드래곤처럼 우뚝 서야, 그것의 호불호를 울고불고 눈물을 삼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것. 그것의 한길은 로로로이다. 출판사이다. 한국의 과두정치가 정한 것을 개개인이 가타부타 카나라즈 언급할 개제는 없는 것이다. 다만 문학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문학으로 나아가서, 곱창에 소주를 일주일에 한번씩을 꼭 한번 해서, 마침내 곱창과 내선일체가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우레시이. 그것도 또한 아닌 것이다. 소악마 권력은,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고, 많이 주고, 많이 먹인다. 우리의 뇌는 곱창처럼 되어 있다. 내가 이런 말을 장황하게 하는 것은, 꼭 어제 새벽에, 포미닛 전지윤양과 뽀뽀를 한 것 같은 착각과 여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포미닛은 다섯명인데, 모두 개성이 있다. 혼사장애, 혹은 생의 비극은 거기에서 탄생한다. 주인공은 남지연양을 좋아할 것처럼 굴었다. 지윤양은 쿨했다. 그런데 졸업할 때 되니까, 일종의 서울예대를 배경으로 하자면, 전지윤이 좀더 날씬해지고, 전지윤과 사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지연은 부더링 하이츠가 된다. 부자가 된다는 것. 그것이 문학을 하는 부르조아라는, 나름의 아름다운 인테그러티가 부서지는 풍경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거짓을 입고, 차 문을 닫을 때, 텅텅 거린다. 나는 내가 차를 한번 몰아본 적도, 소유한 적도 없는데, 차문을 닫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공부를 많이 했을 때는, 공허함으로도 나아간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곱창 먹고, 그런 케이스, 아침에 뇌 활력도 좋지 않는데, 차문을 닫고 있으면, 정신이 그만 나가버릴 것 같았다.

 

 

 

이번 2015 서울시 건축상은 단층짜리 벽돌건축물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본질주의. 그리고 솔리데러티는 향연이고, 건축이며, 건축상적인 향연이다. 어쩌면 물망에 오른 것 자체가 이슈였는데, 핫잇슈, 대상까지 거머쥔 것을 볼 때, 얼마나 아프고 고민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으면, 저녁 풍경의 슬픈 탱크에 들어간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하자면, 나는 a4bl 강남 공동주택에 관심이 갔다. 그것도 건축상 물망에 오를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부에서 깨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