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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공공의 孔子. 공공공. 공고로공공......

by 마음대로다 2015. 10. 3.

공공의 孔子. 공공공. 공고로공공......

 

 

 

 

 

 

 

 

 

 

 

 

 

 

 

 

 

 

 

 

 

 

 

 

아무리 생각해도, 공자의 한자는 너무한 것 같다. 우리가 슈퍼맨이 되고, 우리가 아키라가 되고. 어린 시절의 우상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망또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우리 동양의 풍속에서는 없다시피 했다. 고구려의 벽화에도 없었고, 아스카 문명에도 없었다. 서양은 그런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체 누가 세탁을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의 심각한 낭비를 키아누 리브스의 헐리웃 영화 드라큐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모든 생각들은 친구였지만, 그것을 아는 것조차 너무나 공연하다 싶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고통 중에 본다.

 

오늘도 가뇽. 벨 아스트르......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전분적으로,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취직한다. 그것의 지능과 반응은, 약간은 히치엔 하이크 가상현실 컴퓨터 게임을 닮았다. 그것이 툼레이더, 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더욱 많은 비를 맞고, 병만족의 수상가옥 짓기처럼, 물에 많이 빠진다. 강호동과 사람들도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약간의 기독교 정신을 갖고 빠지는 것이 눈에, 슬픔에 가득, 기억이 되고 남는다. 이 모든 것들이 강병철과 삼태기, 이치현과 벗님들의 연속이지만, 경험의 상대적 절대성에서는 우위를 따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달리 보면, 업그레이드가 분명한 것이다. 우리는 업그레이드란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유상으로, 그러니까 우리 돈을 들여서 하는 것도 좋아하고, 알 수 없는 정보 복지 정책으로 인해서, 그냥 있는 내 것이 업그레이드가 되면 그것의 현대적인 기쁨을 표현할 방도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묘하게도, 개인화를 닮았다. 그렇지 않는 것인데, 그 이상으로 가지 뻗지 못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지식은 개인의 첨단이다. 전분적으로 많은 것을 알아야 우리는, 육이오 전쟁 이후의 현대에 겨우 도달한다. 어제는 저와 같이 아시아문화의 전당을 둘러보고, 서부 전선이라는 한국 영화를 보러 갔다.

 

 

이것은 음악적 과장이 아니다. 가뇽의 엘러지.

 

 

잡다한 것들을 아는 것은 우리들의 숙명이다. 글은 쓰지 못해도, 말은 많이 한다는 것도 인간의 불품 없는 헌 술의 새 부대 같은 가죽이다. 우리는 잡편에 빠질 수 있다. 잡편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전분적인 지식을 가져, 현대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시집 장가도 가지 못할 백척간두의 위기인 것이다.

 

젊은 남녀가, 스펙을 얻는 대신, 지나치게 전분화가 되어서,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할 위기인 것이다. 어떻게, 상설시장의 도움으로다가 데이트를 하는데, 그래서 사랑 영화, 공포 영화, 왜냐하면 공포 영화의 인식소는 사랑의 것에 많은 것이 비슷하다는 말을 어제 누군가에게 했었다. 그렇게 많이 보고 결혼에 성공한다고 치자. 그로 인해서 두 개의 객관적인 사실이 남는다. 하나는 그래도 자기의 영혼과 육체는 완전히 자기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의 치열한 증거. 겨우 가정 법원에서나 사줄 수 있는. 아이는 그냥 태어나는 것이고, 둘 사이를 진지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의미에서는 부모님이 되는. 부모님을 강요하는. 공공공. 공고로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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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한국의 중산층 이상의 가정, 개체 X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것도 중요치 않는데, 남자라면 짐작이 쉽고, 여자라면 이야기적인 가치가 생길 것이다. 간략한 요약 저 위의 것을 통과하여 남는 것이라곤, 병만족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가제는 게편. 개편. 주마가편, 때리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식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 밖에 순서가 없다.

 

광주 아시아문화원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문화원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 소재 한국문화원이라야 자의식이 비로소 철학적으로 꽃이 피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문적이고, 전분적인 지식은, 학생, 사무실, 그리고 공장의 데스크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것의 잉여 노동은 맑스의 방정식에 따르면, 비로소 우리의 건물이고, 시스템, 창호, 도로와 항만, 자동차와 비행기가 되었다. 너무 노동을 대립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의 생각은 쉽게 고착되고, 항공기 연착된다. 다시금 벨 아스트르.......

 

 

전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계속 가지려는 딸이 항공기 연착에서 보면, 굉장히 인형처럼 예쁘고, 숨어있는 비급 영화 꼭두각시처럼 무섭게도 생겼다.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목에 망또를 두르는 애니메이션의 세상에 가야하는가?

 

 

부는 자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차의 부도 자기 것이 아니다. 이차의 부가 있어서, 공공의 건물이 서게 된다. 아이들은 가난에서도 성장하고, 부에서도 성장하며, 이차의 부에서도 상당 부분 성장한다. 그것이 멈췄을 때, 자기의 가난 이상의 가난을 일부로 만들어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혹시 개인의 부. 가족의 부. 친척의 부라는 질 들뢰즈에서 벗어나서, 이차의 부, 이차돈과 헤겔의 영역으로 나아가면 도리어 멈췄던 성장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어느 생각이 지리산 보다 깊은 사람은 판단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가장 슬픈 음악을 다오. 내가 빠지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을 다오. 두렵지가 않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쓰려다가 만 대사 중에서

 

서양은 멈췄고, 우리들의 가난과 우리들의 핍진한 부 사이로, 갑자기 이차의 부가 들어선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광주 안의 서울. 누군가 만족스럽진 못해도, 있는 재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도 스펙을 좋아했다. 계림국민학교. 동신중학교. 금호고등학교. 한신대학교. 정원이 가난한 학교는 가본 적이 없다. 나의 문장에서는, 언제나 관능적인 좋을 好가 엿보인다. 금파공고와의 의리도 엿보이고, 수원대와 아주대 장안대를 좋아한 것처럼 느껴진다. 총신대. 장신대. 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 않고, 그런 식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도, 어떤 호사가들은 내가 전남대학교를 출강?하지 않으니, 아시아문화의 전당이 생겼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전분적인 지식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결단이나, 아프리오리가 좋아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학원 문학인 것이고, 그것은 자칫 성경마저도 위태롭게 하는 비밀 중에 비밀, 다시 말하는 음악적인 즐거움으로서의 위대한 탄생적인 게츠비적인 비밀인 것이다.

 

 

 

 

스페이스 A 성숙     

 

ㅇㅇ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ㅇ

 

 

 

 

 

 

*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다.

 

그러면 아오지탄광으로 자발적으로 걸어가게 된다. 그것의 잘 모르는 방식은 여러가지이나, 결과는 하나인 것이다.

 

 

 

웃음이 터지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