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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마의' 최근편의 임프레션과, 고전인가 본질인가의 케케묵은 백제식의 논쟁을 두고

by 마음대로다 2012. 10. 25.

'마의' 최근편의 임프레션과, 고전인가 본질인가의 케케묵은 백제식의 논쟁을 두고

 

 

 

 

 

 

 

 

탤런트 박진희가 에코 운동도 하면서, 의상 디자인 공부도 해서, 내가 오토바이 여행을 홀로 떠나던지 시내에서 사람들을 만나던지 좋은 옷을 해입히면, 그것은 어떤 고구려의 기분일까? 민중 백제들은, 경건한 신라는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그와 같은 여래장의 극치에서는, 민주주의도 신앙생활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합으로서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예민하지 못하면, 연장처럼 행복한 일이나,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게 되면, 마음은 스틱해 혹은 스커드 어두운 방 안에 혼자서 사막해.....지게 되는 것이다. 현진영고진영고, 마치 현진영 고등학교도 있고, 진영 고등학교도 있다는 것처럼, 혼자서 피식 웃는...... 배가 고프고, 해가 기울면 우리는, 밥을 먹으면 되는 일이나, 좀더 기울이면, 일본 순정 애니의 제목 같은, 조금 더 기울기를, 지는 노을을 먹고, 실제로 노을 빵이 있었다 해도, 헝가리안 광시곡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지 드레드, 혹은 드라코, 우리는 한번 결혼한 후에 총각이 되고 처녀가 되는지 모른다.

 

닌자들이 얕은 개울물을 두고 싸우면서, 넘어지고, 다시 싸우다가, 쫓아가는 편에서 기운을 얻어서 외치는 소리가, 소코마데다, 소코마데..... 한다......

 

 

*

 

우리의 학교 교육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아노 방울 소리까지 어떻게든 가게끔 한다. 아주 달달 볶고, 그 안에서 해탈을 경험하며, 배신자는 처벌을, 저녁 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광주를 연출한다. 그 시간에 집에 가서 씻고 잠이 들 수는 있을런지. 딸기잼이 들어 있는 도넛을 먹는 것처럼 티비를 보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는 숱한 청소년들을 본다. 그것이 나이가 들고, 틀이 잡히면, 잡히는 날에 바로 사라지는 학생향 문자향일지라도, 때마침, 그와 같은 때에 듣는 피아노의 트랜젠덴탈한 음악들이 좋은 것이다. 지나가는 기차의 문을 열고, 터널 안에서......

 

 

 

가수 박지윤이 노래를 잘하고, 피아노도 잘치고, 휴우케 외로운 곳에까지 나와 함께 가는 함께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산에 사는 사람은 산에다 불을 내고 싶을 정도의 불교적 불만의 표상이다. 대개의 경우, 의식은 클러치 되고, 물반 물반 되는 것이 존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는 처음에는 마의를 보지 않았으나, 우연이 미친 듯이 말을 타고, 말이 되어 뛰어들어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리산에는 궁궐이 있다. 물론 설악산에도 있다. 합천에 살던 주영이라는 친구와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한신대학교라는 전세계적인 절대적 비존재의 학교를 다녔고, 더구나 본질적 신학과를 다녔으며, 공부를 민간인들이 바라보는 화랑대처럼 잘했었다. 지리산에 오르면서 꿀린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옛날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본 적 있는 계곡과 단풍 풍경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매우 비슷하였다. 준비도 안하고, 갑자기 오르는 산행길에, 그 꼭 같은 곳을 보고 싶은 것은 조금은 어려운 일이다. 물이 어마어마하게 맑고, 푸르고, 바위는 밝고 깨끗하며, 공기는 뜨겁고, 차갑고, 시원하였다. 영화 속에서 숱한 옥녀들이 유혹하고, 선비들이 한숨을 돌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반응은 마치 내가 나이를 사십 먹은 것과 우리 민족이 동시동작적으로, 다행히 비생산성을 면했지만, 한줄기 주자를 핑계로 양명이 깊어지고 말았다. 어차피 양명 속에서 개인의 주자를, 가르치지도 못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로 우리는 불만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은 맛없고. 그냥 먹으면 될 일을 블로그에 담갔다가 확인하는 식으로, 그와 같은 전문적인 식감으로는 성공할 케이스가 별로 없는 것을 억지로 걷는 것은, 불만이야말로 개별자를 확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의 전작들이 있었다. 그것의 비판과 현실, 소코마데에다 먹을거리를 담는 작은 사랑의 기름들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순간적인 힘과 같이, 가수 싸이의 가사처럼, 마의는 묘하게 삼국사기에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문제는 반드시 말을 단순하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마태복음에 아기 예수가 말구유에 놓여졌다는 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