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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용의자 엑스의 헌신(2012): 눈물의 수많은 나라(같은 일본). 브금은 레이디 칼리프......

by 마음대로다 2012. 10. 21.

용의자 엑스의 헌신(2012): 눈물의 수많은 나라(같은 일본). 브금은 레이디 칼리프.....

 

 

 

 

 

 

 

 

코스모 폴리탄들은 말하길, 피투성이 되어서, 피투성이라는 말이 아니라, 강요적으로다 두번 사는 삶을 살 때에, 외국 사람들로의 전변 같은 것, 같은 게 있고 다른 게 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같은 것은 배가 고프면 뭘 훔치고 싶다는 것. 훔치지 않는다면 몸이 아프다는 것. 눈물의 혹성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것은 치명적이다. 우리는 한식만 갖고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아침이면 밭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면 돌아와서 티비 보고, 공부하고, 전원적인 패스토랄, 잠을 잔다. 교회 나가고, 여행도 조금 하고. 돈이 있으면 이런저런 요리를 해먹고, 반찬도 많이 만들고, 특히 반찬, 돈이 없으면 밥을 밥을 많이 먹는다. 볶음 김치. 볶음밥. 그것의 탄생은 결코 능동적이거나 적극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분식집의 황태자, 김치 볶음밥이 임금님이 국가의 정신을 새로 개창하기 위해서 대장금에게 명령한 게 아니라, 프라이 팬과, 그것의 가난의 바닥, 기름과, 코에서 나오는 것도 콩기름으로 해줄 수 있는지, 김치를 넣고 볶다가 밥을 넣어 볶았다. 맛은 스트레이트와 같았다. 카레 맛이 나거나, 갈비 맛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김치 볶은 것에 밥이 버무려진 것. 그러나 폴리탄들은 먹다가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여름날의 폭풍이 부는 소나기처럼 나왔다. 이 돈이면, 이 재료면, 이 돈이면, 이 재료면....... 그러나 클러치 되는 것이, 돈이 있어도 못해먹고, 돈이 작아도 못해먹고, 돈이 있다는 것이 그러니까 많다는 뜻에서 그렇게 있다고 해도 못해먹고........

 

가장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맛이 한국과 비슷하다. 지금 우리는 직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자동차는 질주하고, 사람들은 세 끼니를 먹을 뿐이다. 다운타운 삼백을 타고, 해가 질 무렵에 서울로 진입하는 라이더는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모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다. 일본에서 누군가 삼겹살집을 개업했는데, 일본 여인이 먹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정보는 그 정도에서 국정원한다. 정보는 과장과 해석의 프라이팬을 만나느냐 마느냐, 용의자 엑스의 헌신의 무대에 오르느냐 마느냐 사거리 갈림길에 선다. 해석이 없는, 밥과 반찬 사각형 그릇들로 진행할 수 있고, 씨비사백의 브이텍을 터뜨리느냐 마느냐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눈물은 수상하고, 개인은 죽음과 같다. 우리가 그렇게도 육군 본부 같은 곳에 가려고 하는 이유가, 개인의 차가운 죽음과 비극에 직면하느니, 사람들을 사지에 대신 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을 위대한 다윗왕 밧세바의 꿈이라고 부른다. 만일 타자가 훌륭하다면, 우리는 그대신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돌볼 의무가 있다. 듀티. 그 삼겹살 찬양의 여인은 아부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폴리탄과 일본인의 구분되지 않는 경계선이었을까? 한국말을 잘 못하는 한국계 일본인. 일본은 신간센도 빠르고, 거리는 굉장히 깨끗하고, 잘산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가난하고, 신분을 숨기며, 음식들은 냄새난다. 아버지는 어둡고, 돈이 없었으며, 성장기 동안 겪었던 불만의 모든 에이도스였었다. 사람은 별로 넘어지지 않으나, 꼭 누군가 그런 별스러운 것을 갖고 조센진이니 마니 따지고 드는 경우가 있다. 어느 철학자가 그와 같은 멱살잡이를 견디겠는가? 더구나, 개별자, 소승불교의 한 문파도 아닌, 겨우 한 사람일 경우엔. 실낱 같은. 아주 얇은 진실 같은..... 종합은 판단이 아니고, 다만 가두는 것일 뿐이다. 친구따라 한국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그것은 처음 먹어도 그러하고, 혼자 지내다가 옛날의 몇 시 몇 분처럼 먹어도 그러하다. 한국 음식에는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 음식의 자랑, 삼겹살을 먹게 된 경우에, 처음 먹어도 그러하고, 두번째 세번째로 먹어도 그러한 것이다. 너무나 조화롭고, 세련되며, 동시에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신의 아들 딸들로서, 동시에 정신을 맑게 하는 음식을 최종적으로는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하루키가 예전에 보여주었던 남미의 안데스 산 아래의 풍경도 있었다. 외국인 교수가 한 명 살고 있었는데,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말은 소설가들이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지만, 내 눈에는 모든 게 약간 그렇게 보인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천하의 나도 조심하게 된다. 그 부분의 빛깔과 습기는 일치점이 많았다. 그리고 하루키가 보여주었던, 산토리니는 아닌데, 슬픈 외국어의 바람 부는 지중해변의 풍경도 있었다. 하나와 가와이에 집착하는 일본인의 병증은, 시각적 심미성의 배고픔에도 닿아 있다. 내가 옛날에 어딘가에서 글로 쓴 적이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픽션인가 펙션인가 하면서, 어떻게 왕족의 대군들 이름이 진평이고 안평일 수 있는가 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사람은 평가를 안할 수 있다. 그는 학식이 있고, 결혼을 약속한 사대부집 여인도 있다. 책을 읽으면 밤을 세울 수도 있고, 절에 부부가 함께 가보자고 하면 마치 봇짐에다 치마저고리를 단단히 쓰고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야밤에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평가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놓고, 특히 유명한 사람들을 놓고,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왕은 무엇인가? 그리고 대군이란 무엇인가? 왕은 국군통수권이 있고, 반역이 있을 시 삼족을 멸할 것을 명할 수 있었다. 안평은 그러니까,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에반젤리컬리즘 같은 복음 절대주의가 아닌가? 나는 학교 다닐 때에 그와 같은 본문이 나를 어떻게 사로잡는지를 경험했었다. 미국의 시문학중심주의와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순교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어떤 자유와 초월적 가능성만이 있지. 그러나 기독교는 그들의 본문 중심주의 같은 것이 심란한 집안 사정 같은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따를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절대성. 필연적인 삼박자와 같은 시간성. 그리고 한신대는 늘 바깥으로 텍스트를 동시 연구했어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본문만 파고, 본문이 가져다 주는 질서에만 자기를 실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캠퍼스 한구석에 몇 그루의 나무처럼 있었다. 요원했지만, 이요원처럼 한없이 요원하지만은 않는....... 예수님은 달밤에 나오라 하신다. 정신은 맑고, 잠이 들 수 없다. 다니엘은 불구덩이에 들어갔는데도 천사들과 함께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세파가 사나운 것 같고, 늘 한결 같은 말씀으로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는 것 같다. 그리고는 얍삽하게 꾸짖으신다. 어째서 믿음이 없는 게냐. 그런 말. 영원한...... 영화는 아랍의 거리도 비추고 있었다. 우리의 아파트는 복도가 좁고, 걸어서 내려가는 계단이 별로 없다. 그것은 아랍이나, 유럽의 것과 비슷하다. 옆 집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일본이나 중국이 비슷하다. 우리는 고시원이 조금 그렇고, 보통의 주택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건축학적 가난이다. 그리고 폴리탄들의 보고에 의하면, 중동의 화약고가 화약이 터지는 곳을 제외하면, 알제리부터 시작해서 요르단 시리아 터키나 타츠키스탄까지 너무나 여성적이고 괜히 뛰어가다가 주저 앉아서 눈물 흘리는, 우리의 여의도의 여인들 같은, 여성적인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로마 장군 벤허는 기와를 떨어뜨려서 운명의 수레바퀴를 겪어야 했다. 바로 그 테라스 옆에는, 프리지아 화분이 함께 놓여 있었다. 여인들의 아편 그러니까 내편 전쟁에서는 남자란 모름지기 한 나라의 장군이거나, 노예선의 노를 젓는 사람으로 양분된다. 아이들에게는 오와 열을 명령하고, 단추가 잘 잠궈졌는지 검사하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손의 인대가 늘어나도록 무거운 물건들을 날라야 하고, 잠깐 잠을 청할 틈도 없이 저녁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시끄럽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대학교 강사인 자기 남자 친구가 타거나, 어느새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더글라스 가문의 사람처럼 보이는 남편이 탈 때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