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날 부르는 곳에 갔다. 낙타. 혹은 은마......
둘은 학생이다. 모범학생. 이 순간, 기억이 있는 사람은 클래식이 꽉찬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나, 나이 어린 아이들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도 인문학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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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의 프로타고니스트들은 도덕적으로나마 꽉차려고 했었다. 이 모든 것은 지명들이다. 아니 지산.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저마다의 간난방을 흐르던 제비 환영은 한국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전칭 명제, 한국 사람들은 다 그래와 같은 유니버셜 프로포지션이었을까?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거짐 마지막 임금 고종처럼, 짜증이 났었다. 이 입각점. 이 현경함.......
사람들은 하일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을 수 있다. 나는 책을 미쳐 읽지 못했다. 그리고 먼저, 동호는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본다. 얼마나 바다가 드넓고, 해수욕장인지 어부들의 논과 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참으로 누군가의 말마따나 休전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나를 대신하는 남자 배우를 찾지 못하지만, 그때는 문성근과 이런저런 일치점이 많았었다. 몇 개의 작품들이, 경제적이고 경주적인지는 모르나, 내 마음에 자리잡았었다. 그것은 지식인의 저낙과 음파나 파동 면에서 일치한다. 우주선에 가면, 바닷가, 서해의 너른 갯벌에 가면, 사람이 음파나 파동으로도 얼마든지 유사 섹스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경마장 가는 길을 찍었다. 그것은 모더니즘. 생긴 것으로나, 문예창작, 문예사조면에서 그러하다. 철학은 모더니즘에서 문예학과 만나는데, 가다머가 사유의 틀을 거덜냈다면, 바우하우스와 구겐하임, 그림을 그리고는 자기가 소설가라고 주장하는 일단의 아방가르드에 의해서, 잭슨 폴록과 앵포르맬이 완전히 바닷가와 지평융합하는 것이면, 모더니즘은 스트림 오브 컨셔스니스로서 제법 그 안까지 걸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카시, 철학적인 차원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우리가 문학에서 제임스 조이스니 버지니아 울프 카프카 포크너의 특히 사운드앤퓨리까지 아울러서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 작가는 식민지 이후에, 그것과 동시성적으로, 모더니즘의 화신이었다고 부를 수 있다. 사실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사조와 분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막걸리 문창일지라도 저마다의 뜨거운 불성이 중요하였었다. 우리는 민주화 투쟁을 했었는데, 그것은 그와 같은 막걸리 문창의 저변과, 국적을 알 수 없는 클래식으로서의 밝은 빛의 검은 까마귀들, 연신이네 감신이네 한신이네 하는, 뜻모를 진지와 어쩌다 보니 함께 하는 스크럼, 최루탄은 우리를 하나 되게 했고, 심정적으로는 북한과도 통일이 되었었다. 아무튼 그것과 동학과 동학 근대주의에 대한 논문적인 성과들이 하나가 되고, 왠지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불국사의 승려들이 내려와서 동국대, 알리야가 물론 감성의 알리야지만, 지식의 알리야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유난히 지적이 매력적이었던 데리다의 맑스 스펙터즈들처럼 떠돌아다녔었다. 그렇다고 북한의 사주를 받았느냐? 그것은 아니고, 심정과 진리, 공명과 저마다의 진실한 잔명들이 그리하였었다는 것이다. 백낙천 같은 백낙청도 한몫을 했었다. 빌리브오아낫의 보고에 따르면 다만 학생이었던 나도 광주 속에는 있었다고들...... 바로 그때, 장정일과 하일지가 모더니즘의 키치를 들고 등장한다. 제법 깃발처럼 날렸고, 우리가 도덕적인 축소주의로만 빠지지 않는다고 공동체적으로 반응하였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중에 신경숙류나, 은희경, 어떤 남자의 작품들이..... 마치 물에 빠진 나처럼 숨이 막히고, 힘이 없는 것일지라도, 서울 한복판에서.......
장정일은 영화와 작품, 하일지는 영화로 보았었다.
유하도 끼워달라는......
나는 별로. 젠젠. 그의 영화 감독적인 변신이 훌륭하다고, 그의 가족 경제적인 착각 속에서 말해줄 수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낙타도, 은마도 꼭 그들이 쓴 것 같다.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것이다. 그러나 친구 콩 심은데, 같은 단어군이 나오고, 유식 불교의 한 표현들처럼, 사람들 만나서 웃고 떠들고 하는 패턴과 유사 방정식이 그러한 것이다. 낙타와 은마가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심즉리 같은, 장정일과 하일지가 가졌던, 지적인 포부와 그래프를 한국적으로 끝내 불태웠다고나 할까? 나는 은마를 보면서, 내가 어째서 오지 않는 것인가? 자문하였었다. 내가 장군인가? 아니면 의식인가? 그 여배우를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자 친구와 살면서 그녀의 벗은 몸을 많이 본 것이 아니라, 유식과 확률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자 연예인들과 훈습하였고, 습기하였었다. 아주 나중에, 여자 친구와 강원도의 힘을 비행하였고, 겨우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말이 그렇다는 것, 말하고 나니까 이런 억지 표층이 있다는 것, 확인할 수 있었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생주자를 통과하지 않은 소년의 양명 군자 수준이었던 것이다. 철학적 보편 높이의.
**나는 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가주고 싶었다.....
형이 나이가 먹고, 살이 찌고 해서 얼굴이 그렇다 했었는데, 나도 나이가 먹고 살이 찌니 형의 얼굴과 거의 같아졌다? ^^
동호에는 어쩌면 가장 잘 나온 사진이란 뜻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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