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과 신중현의 문학 세계. 선할 뿐인데 배타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정신적 욕구의 시기......
어쩌면 지금의 내 블로그의 제목과 가장 일치하지 않는가 한다. 전화받을 때의 중국어 웨이가 상해풍이라고 했었는데, 그것은 영어 way를 동시에 가리킨다고 하지 않을 수 효린 없는 것이다. 나의 갈 길, 너의 갈 길, 그리고 네가 지금 목소리로서 나를 찾아온 길. 그런 쌀뜨물 같은 말은 우리는 기본 된장국 속에 있지 따로 하지 않는다. 낙타 눈물. 그러나 중국의 인문학자들은 신중하다 죽은 사람처럼, 난약사, 선비나 학자를 가리키는 사가 아니라 신중사 하는 것 같다. 나는 중국인들이 얼마나 한국에서 많이 죽어갔는지 모른다고 했었다. 몸살 감기가 났을 때 소주에다 고추가루 뿌려서 마신다는 민간 요법은 바로 중국인들이, 공자의 사대주의 사상을 지옥처럼 이어받은 결과이지, 그것을 우리가 따라하는 것은 역사의 돼지꼬리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했었다. 이렇게 복잡하게, 그리고 덧붙여서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시황제의 고전은 소년이 아래에 있다는 뜻에서 보이저 같다. 부자들은 늘 배부르고, 매점하거나, 자르고, 담합하거나 없다고 없다고 말하는 화법으로 넘어간다. 집 바깥에서는 없다고 말하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 마음 착한 사람은 신경 써 보겠다고 하고, 집 근처의 자기 사람에게는 돈주머니를 건네고, 새로 인사를 받고, 하울쯔, 시샤팡마, 아주 친한 사람에게 저녁 마시기 전에 술을 한잔 얻어마신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자식들이나 아내에게는 돈을 영산강이나 요단강처럼 쓰는데, 자기가 돈을 더 쓰기 때문이고, 선한 사람의 징표를 마음의 종교로부터 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모습마저도 선한 사람처럼 비친다고 할 것이다. 이 정도도 못하는 것은 우리가 문턱을 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도 없어서일 뿐이다. 집은 그래서 무엇일까? 살집이나, 계집인가? 아니면 그나마 교회의 집사님들인가? 특히 사찰 집사님. 우리가 덕기 주인공의 삼대를 싫어하는 이유도, 갑자기, 고맹, 그와 같은 유럽 연합 때문이다. 입은 옷은 문학이지만, 펼쳐지는 풍경은 다분히 전근대적인 것이다. 부자의 아들은 책을 쌓아놓고 있고, 읽지 않으며, 가난한 학자를 먹여 살리고, 문자에 벌써 데카당스를 획득한다. 매사냥을 다니고, 홍춘이를 안다. 그들은 시니피에 처음으로 홍춘이를 알았다고 하는 기표적인 영웅이 있고, 시니피앙 예전부터 알았지만 조금은 조심스러운 이들이 있는 것이다. 나이가 겨우 열다섯 열여섯이다. 술과 기생 존재, 하늘 같은, 바깥에서 놀기, 고기 구워 먹기, 말타기, 서울의 명문 세도가에 관한 소문을 주고 받기, 어려서부터 닥달을 해서 익히게 된 시쓰기, 그림 그리기, 자기들을 가리켜 풍월도라고 하고, 그중에 돈을 조금 많이 내는 사람을 가리켜 풍월주라고 부르기, 관아에 불려가 혹시 사조직인가 조사를 받을 때는 오줌을 지려하면서 아니라고 하기, 자기들은 철저한 비정치적인 두발로 걷는 짐승들일 뿐이라고 고백하고 선서하기, 그렇게 지리산에 거대하게 내려앉는 태양은 무엇인가? 오늘은 또 이처럼 해가 크다고 해서 해태인가? 아니면 우리 토종개 삽살이인가? 삽살이 경복궁 앞에서는 앉았네 국회 앞에서는 일어섰네 인가? 그들은 억울하다. 자기들은 선생이고, 군인이며, 직장인이고, 상인들인데, 달콤한 커피 마시면서 쩝쩝거리는 말에 자기들이 문법적으로 다 속할 수가 있겠느냐고. 무슨 쌍쌍으로 들어가는 노아의 방주냐고.
신중현의 노래는 탕웨이 같았다. 웨이~ 비싼 전화기 들면서 보다 늘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탕. 웨이. 브금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타타르 사막. 동양을 두번이나 겪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신중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천성이 맑시즘이 아니나, 돌아가면 지금도 맑시즘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얼굴의 변검들이다. 신채호가 약간 비슷하다. 출신은 재래 봉건에다 브르조아 계통이나, 막말하면서 혼자되기 게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쓰라고 하면 다시금 그 숱한 중국의 웨이들이 된다. 물론, 글쓰고, 출판하고, 하는 것들은 선인이고 선발이다. 그러나, 읽잘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서 나의 고독이 더욱 부채질되고, 경제적 가난의 유럽 연합이 되지 않는가?
맑시즘의 역사는 동양학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오늘 프로그램은 그것을 프로그램식으로, 파노라마식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사진들은 서로 다른 것들끼리의 대화와 같은 영화 기법을 따르고 있다. 영화에 보면, 다른 시공간의 사람을 마치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여주는 트릭이 있다. 없나? 그런 것이 신기하고, 별 것에 다 숨가쁘게 하는, 포로적인 숙명이 영화의 기술에는 사실 은밀하고 넘친다. 우리는 한국적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지배적인 문화 현실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예술적인 높이에 비추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케츠 프레이즈는 오직 천재에게만 해당하는 지시적 시니피에였다. 그리고 마치 지식인의 맹한 거울적인 높이의 영화처럼, 신중현은 유명인 중에 이름이 매혹적인 것의 십 걸 안에는 들었다. 백낙청. 김우창. 안병무. 이렇게 보면 도청이나 시청 관공서. 기무사령부. 병무청 그렇게도 수학적인 연행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개미들은 얼마나 파편 같은 재산이었지만, 문지니, 창비니 하는 말을 좋아했는가? 늙은이처럼 또 말하지만, 성경의 인명 같은 또말, 말또말, 사상계 같은 것. 정말 그것이 아직까지 유지되었다면 얼마나 우러러볼 만한 것이었을까? 결국은 물화나 무화가 되고, 사상계는 무화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 또 무궁화라고 해라, 봅슬레이를 타고 우리 무도 사람들이 습기와 샴푸의 스크린이라는 무감각적인 표시로서 흘렸던 눈물은, 무화가 된 사상계만 있었던들 내가 서울대 대학원에 떨어지거나, 소설들이 연거푸 낙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다잉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끌어안고 있는 여성주의 은희경과 신경숙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직관에서는 나를 배타하는 운동의 형식이 된다는 것일 것이다. 계속해서 그러하고, 계속해서 그러하면, 저마다의 작은 신중현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신중현의 노래를 부르다보면, 듣다 보면, 무지해지고, 생각이 떨어지며, 이광수의 흙에서처럼 시골에 두고온 처녀와 결혼하면 돼지 하는 현실추수주의 가장 매혹적인 듣기에 따라서는 그것을 행하게끔도 된다. 그러나 신중현의 노래가 있어서,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팔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가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의 수학은 누구도 풀 수 없는 고등수학이며,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거지처럼 분장하고 서울 시내를 오가던 백낙청의 슬픈 독백 같은 것이었으나,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쏘다니는 수많은 자동차 중에 그것의 방정식으로 엔진이 운동하고 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는가? 인터넷 지도 보기에 고속도로나 국도의 씨씨티비를 보는 것이 있다. 나는 포항 근처를 보았고, 부산이나, 화성 근처를 보았다. 보고 반응하는 것은 어떠한 기표인가? 그 멍때림 같은 것은. 그리고 정읍이나, 가까운 광주의 진입하는 구간을 보았다. 내가 다니는 곳도 다닐 수 없는 곳도 보았다. 그렇게 고속으로 질주하는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말못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 누나가 그렇게도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만일 집이 음식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있는 부자였으면 아마도 돼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차도 있고, 결혼도 했지만, 어린 자식은 벌써부터 마음에 들지 않고, 아내는 음식도 맛없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사람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삶에 별로 불만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옛날에는, 검정색 교복에, 음식 재료가 귀해서 그렇게도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먹었었다. 신중현의 노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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