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소녀
나는 바하의 여러 수난곡이 친구였다. 전쟁 이후에
나는 마땅한 직장이 없었고, 일을 하고
나름 생활을 하고자 하면 다시금 이런저런 혼자만의
연구주제가 생겨났다. 나는 늘 슬펐고,
돈이 있으면 술을 마셨고, 돈이 없으면
슬펐다. 그래서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 그것이
늘 그렇게 빨랫줄의, 전깃줄의,
보도블록의 이런저런 선들에 쟁여지는
것이었다. 영어로 어레인지먼트......
인사소녀와 결혼하라.
그것은 소설적인 요한수난곡인 것이다.
우리는 전쟁 이후에 값이 싸지고
철학보다는 소설이, 시적인 영웅보다는
산문적인 생활세계가 잘 보이지 않는
저 죽음 너머에 어울리는 것이 되었다.
애초에 철학이 없고,
별로 영웅적이지 않는 사람은
다만 그와 같은 골목길 끝에서
일정 시간만 되면 이상하게
헛구역질이 나와서
헤비메탈 가수처럼 머리를 흔들면서
고개를 숙이는, 서태지처럼
고개를 숙이는
그런 인사소녀와 결혼하는
끝장 소설이 도리어 시처럼
반짝이고, 철학처럼 낯설게 하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합천은 동시에
순천이 되는 것이다. 결혼이 연극 같고
미친 짓 같고, 반드시 인용하지 않더라도
결혼이 다만 드라마 같고, 실제와 같지
않아서, 세상 호랑이처럼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저기에는 실제로
며칠을 지내던 달동네와
한 가구가 있다.....
하지만 인사소녀는
그런 프레임 바깥을 모르기 때문에
나를 이제는 헛구역질을 하지 않고
다만 그림자를 쫓아
각도까지 체크하면서
다시 한번 불러내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