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
지금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옛날 남한은 참 미국과 친했다.
그것의 하우스도미토리 분위기를 어떻게 다 그리고
채울 수 있을까도 싶다. 세상의 영원한 우방이 있다면, 한국은
미국이 바로 맹방 중에 맹방이었고, 블레이드 러너......
흑인과 백인의 바둑판적인 구조주의를 깨닫고 나면
한국은 미국에서 선을 위한 내전에도 임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외 국가였다. 그러니까 그런 식의 상상력의 장. 스페이스.....
미국은 새롭게 초고속 비행기가 개발되면, 한국에 먼저
방문하고 싶다는 식의 묘한 성층권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의 포천
그것의 의정부, 그것의 용산 등의 분위기는 사뭇 절정이었고,
미군들은 서울 시내로 나들이를 다녀오고 나면,
멀쩡한 산에 타워가 무시무시하게 솟아오른 것을 멀뚱하게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양명학적으로 피를 봐야만 집중력이
생기는 의식의 사이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주사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대게의 한국 사람들도
그렇고, 그렇게 보면 전 세계 인민들이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 그것의 세계관적인 직관을
행하기가 어렵다. 미국은 다만 자본주의적인 패전? 패배?
패권 국가였고, 사람들이 서로 국가의 영화를 넋이라도 있고 없고
본다는 사실을 잘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승진하고 싶어하는데, 회사건, 군대건 간에
그것은 일종의 영화와 같은 것이다. 미국이 블레이드 러너를 만들 때만 해도
리들리 스콧, 굉장히 나카토미, 승진의 일로에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아직도, 한국 사람들이 비오는 날에 소주와
시원한 어묵탕을 먹고 싶을 때는, 친구처럼 함께 보고 싶은
무비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그들의 승진을, 승전일도, 승전가를
승전가도를 지켜보고, 그것의 우주적인 미크로그램을
부산에서도 불을 켜고, 학생들은 가방에 넣고 집에 가고
아무 것도 아닌 앰블럼이지만 보다 광택나는 것을 선호하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한국 문단의 등단 실패와 함께
지금은 신경도 쓰지 않는 대상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동시동작적으로
미국 영화는 더 이상의 승진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내 승진해서, 상무도, 대표 이사도, 사외 이사도
씨이오 했던 것들까지 이내 의심스러워지게 된 것이다.
승진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에는
정신을 포기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런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다가온다는 소리인가? 그나마 성실하고
종교의 힘을 빌릴 정도로까지, 산에도, 절에도
교회에도 다녀오는, 그런 양적인 쿠폰 도장들,
전부일 수는 없으나,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 조심하고, 가장 좋은 시집을 언급하고,
다보탑과 같은 철학적 항목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그것을 나름 집중력을 갖고,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굴려보고
그랬던 사람이 승진하는 팔할의 구조에 걸쳐,
그것의 구슬이 예상치 못하는 냄새와 함께 깨지는 것은
그래서 보다 정확한 확률이 되는 것이다.
한국 영화는 승진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영화는
이전의 승진 영화들이 모두가 다 정신의, 친구를 향한
데드싸인이었다는 고백과 폭로의 시간을 걷고 있다. 누군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청년 정신을 갖고,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여행도 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두번을 살아도 랜드로드나 랜드레이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콜리그, 그러니까 워즈워드에게는 코울리지,
워즈워드에게는 여동생이 있어서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오직 학우로만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영문학적으로 전통이 있는 그런 낭만주의적인 혁명을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몇 명의 학우마저도
엠비에이, 혹은 씨엔엔, 엠알아이, 유씨엘에이,
씨놉시스, 마이클엔젤로(미켈란젤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거창한 양명학이 반드시 주자학을 거스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분황사에 들러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음악을 아주 구슬프게
클래식 음악으로, 혹은 뉴에이지풍으로, 그렇게
진하게, 내일은 없다는 것처럼 듣는다 해도, 그것을 끄면
다시금 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승진의
아름다운 문법의 탑을 지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힘이 넘치고, 양명학이 주자학이다는 말까지 하면서.....
그런데 누군가가 과거의 미쿡 영화를 보면서
거창한 양명학은 모두가, 학문도 아니며
다만 보여주기식으로다가, 우연이고
그것들은 마지막 주자를 뿌리뽑기 하는 데에나
이용될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아무리 그렇지 않는 식과
논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지금 우리의 삶이 눈에 비치는 대로
모두 그러해서 조금도 대항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