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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과연 비닐하우스의 세상으로 사람들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by 마음대로다 2017. 5. 29.

과연 비닐하우스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인간의 삶은 단순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세상을 지향했다. 지옥은 나쁘고, 천국은 좋은 것이다. 우리는 좋은 곳에서 살고, 좋은 곳으로 나아가며,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을 기독교 신앙 제일원칙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옛날에도 그랬을까?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는 대체 무슨 책들로 가득 차 있어서, 성경이 나타나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나자, 우리 인간사에 그런 아프리오리는 없다면서 불타버렸던 것일까? 


과연 지옥은 견딜 만한 곳인가? 


우리는 기자 플라토우가 저절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들의 기자들이, 중동의 가자지구나, 기자 플라토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별로 상상하지 못한다. 아니면 기자 플라토우가, 다만 이름만이 아니라, 그 모래사장까지도, 한땀한땀 이태리 장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그리고 한국의 기자들이 부역을 떠나서, 누구는 낙타몰이로, 누구는 낙타로, 그렇게 약학 대학의 그림들을 그리고 돌아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굉장히 심리적으로 가까운 것인 것일까? 비행기만 타면 되니까. 나는 우리나라 유행하는 깡패 영화들이, 그것들의 숱한 배리에이션들이, 실제로는 영어로도 대본이 되어 있고, 영어로도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찍고, 한국어도 찍고 한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영어를 생존 영어, 실용 영어, 회사 영어 다양하게 할 수 있겠지만, 깡패 영화들을 찍는 댓가로, 그렇게 찍힌,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깡패들이, 성경말씀처럼 가죽만 남겨지고, 살과 뼈 한 점도 없이 원룸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그들마저 영어를 잘한다고는 별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로제타 뭐어쩌고처럼, 고대 그리스어를 잘한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이집트 상형문자를 비상하게 잘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얼마나 일제 시대는 기능상 저질 친구들의 경기도 양천구 비상구 같았던 것일까? 저질이 되고 싶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주자를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마음 착한 이씨도, 주자를 한 서너 번 괴롭히고 나면,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그리고 집에 시계들이 한 비싼 것들로도 백 개가 된다. 그와 같은 미신이 돌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계가 하나면, 시간이 빨리 올 것 같고, 시계가 백 개면 귀신들이 그것들을 모두 돌리고 오기 때문에 늦게 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못한 양씨가 주자를 괴롭히는데 동참하기도 한다. 그들은 기록이 없다. 그들은 붉은 악마에도 나가고 싶어하고,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영화를 찍고 싶어하고, 방법론적인 오블리비온에 빠지고 싶어하고, 특히 미국 영화를 그렇게, 좀비물이든지, 에일리언물이든지, 순전 미국주의적이던지, 트럼프 같은 것에 동질적인 목숨을 건다. 어떤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사람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삶의 연장의 에스떼틱한 훼노메논이 될 것이다. 그에게 기자 플라토우에서의 고통은 없다. 그는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지 않으면,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 보면,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시간이 닥친 것으로, 그렇다 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다섯 시간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하느라고? 원고를 쓰지 못했던 것이, 일사천리로 쓰여지는 경우가 있더란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그의 글도 단순하고, 그의 정신도 맹목적이고, 아무런 이념도, 목적도, 사회적 관계도, 없는 것 같다. 최순실이 악마적 최순실의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면, 그는 내 눈에는 그냥 착한 최순실의 대표적인 사례만 같다. 


지옥이 처음부터 넓지 않았을 수 있다. 기자 플라토우들이 처음부터 그것을 의식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상형문자 같은 것은, 수메르인의 쐐기문자 같은 것도,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지옥이 무엇이며, 나와 어떤 관계이고, 이기심과는 어떻게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정리하지 못해서, 지옥이 점점더 넓어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높고 아름답게 보던 것이, 점점더 깎여서, 다섯살 정도면 지옥의 소문을 듣고, 최순실과 기자 플라토우를 듣고, 마땅히 떠올리는 건축물은 하나도 없고, 하다 보니까 말이다. 마침내 그들은 지옥에 빠지고, 사랑에 빠지고, 애민 사상에 빠지고, 지옥에서 돌아오고, 의리를 생각하고, 지옥에 남은 자를 떠올리고, 친구를 떠올리고, 여자를 멀리하고, 음악도 멀리하고, 책도 멀리하고,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며, 애민 사상이 있어야 하고,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하고, 더 큰 지옥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늘 역사적인 기록으로다가 사람들에게 텅을 과시해야 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늘 이씨와 양씨처럼 주자를 괴롭히는 무량대수 회오리 바람에 보이지 않게 동참하고,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은 대단히 의리가 많고, 이미 불사신과 같아서, 경험의 밀도가 그냥도 뛰어나고, 정의가 있고, 말을 짧은 혀로다가 잘한다. 우연히 섹스를 하면 하늘을 날게 하고, 정신도 잃고, 의식은 꺼진다. 그들과 살다 보면, 늘 오늘 죽는 것으로다가 살다보니까, 하루하루가 귀하게 느껴지고, 삶은 삼국사기처럼 전쟁의 연속이고, 자기는 죽은 왕의 배다른 아들이고 손자 손녀인, 그런 기가 막힌 도시의 첨탑이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인간 사회는, 그와 같은 새로운 지옥 세상에의 완벽한 적응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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