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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아이리스2 3편: 지식의 고고학적 공자본론과 지식의 현재학적 홍콩반환

by 마음대로다 2013. 2. 20.

아이리스2 3편: 지식의 고고학적 공자본론과 지식의 현재학적 홍콩반환

 

 

 

 

 

 

 

 

역사와 구조 중에 자본주의에 가까운 것은 공교롭게도 구조이다. 둘의 변증법적 합일에 있어서, 보다 구조에 가까워지면서 활짝 핀다. 그것은 홍콩 같다. 그리고 홍콩 영화는 지금 침묵하고, 침식한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최남선이. 상관 없지만, 그것의 방송 효과음이 침식을 보다 상기시킨다 하겠다. 장혁은 한국 만화이고, 이다혜는 의심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불분명하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가 마땅한 장면을 갖지 않는 것과 같다. 장혁이 만화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사람인데, 미국에서 활동했다. 스파이처럼 총 쏘고, 격투하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러나 우리들의 프로젝션에서는 사뭇 그렇게도 여겨짐을 당한다. 예술가는 구보하는 구령처럼,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나아간다. 그러나 신세계에서 무슨 일을 했겠는가? 그의 전기는 그래서 처음에 반짝했다가, 나중으로 갈수록 작품 수가 줄어들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아는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무슨 쾨헬이니 아니니 하면서 숫자를 숫자를 잔뜩 낳은 것과는 상반된다. 그의 교향곡 삼번은, 피로함의 영채 같다. 그리고 호주 영화 샤인하고도, 영채는 영채끼리 어울린다는 공식에 따라 연속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는 우리의 편안한 저녁 햇빛을 초대하고는 이런 남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 중에 과연, 그런 라흐마니노프 만한 사람이 나오겠는가? 윌리엄 포크너나 핏츠제럴드 같은? 그들은 어려서부터 개미가 진딧물의 물을 먹으면서 지내는 박물지의 칼라 사진처럼 지냈던 사람들이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남들이 많이 먹을 때 적당히 먹고, 남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우애를 다질 때, 대화하고, 편지하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반드시 모짜르트를 좋아하고, 플라톤의 대화록을 읽는다. 그것의 비성경성. 우리말로 안성경성. 지식의 고고학이란 다름 아니라, 독서와 대화이다. 그것은 한국어이고, 영어이다. 그런데 갑자기 홍콩이 진딧물의 영채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에서조차 놀라운 오리엔탈리즘이고, 아름다운 홍콩 바닷가이자, mei처럼 예쁜 궁녀들이 삼천 명이나 절벽으로 뛰어내리면서 거머쥐었던 중국 남방 불교의 꽃이었다. 그러면 그와 같은 치열한 양명학을 건물 짓고, 거리를 만들고 했으니, 영국계 대학이던지, 중국계 대학이던지, 문학과나 철학과가 명성을 날릴 때가 된 것이다. 메이는 슬프게도, 사로잡힌다........ 그녀는 아이를 나을 수가 없다.........

 

 

이다혜는 한국 만화를 사랑하고, 한국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갑자기 중국제라는 것이 들통나고, 조나단 스위프트 같기도 하고, 로렌스 스턴을 닮은 사람을 쏠 수가 없는 것이다.

 

 

총쏘기는 지식과 상관이 없고, 지식은 액션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영문학을 무시하고 홍콩 달러를 사용하던 시간이란 것은 어느 순간에는 자기들의 한 없는 추문회가 되었던 양심의 시간을 갖게는 했기 때문이다.......

 

 

 

 

도학위룡은 위난성 학생들은 돌볼 수 있다. 그것은

 

 

 

 

 

북경에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