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토바이를 타기 좋아하는 것은 폴리탄들에게 도움이 된다.
사람은 누적만 있고, 망실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수학의 영역이다. 철학이나 문학의 영역이 아니다. 철학은 아남네시스의 독재이고, 문학은 그렇지 않아도 약간 물에 찬 것 같고, 기대하는 바가 없으며,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거북선을 만들어서, 다른 데는 보지도 못하게 하고, 제작과 송출의 일만 하게끔 하는 것의 부속으로서, 작가가 있고, 그들 작가에 의해서, 동병상련, 전투능력이 없으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끔 하면 좋겠다는 그 옛날 대각국사의 기도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할 수 있다. 대도 조세형을 보면, 부처님의 뙤약볕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절충주의는 사실 충성심의 우주가 없는 사람들의 비무등등주와 비슷하다. 비무상주. 절 아래 술집이 있고, 사람들이 술집을 좋아하는 것은, 절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저변은, 절과 막걸리의 혼합 믹스, 같은 말이지만 칵테일 빠걸 같은 것일 수 있다. 정신이 혼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에 화투를 쳐서 돈을 따면 기분이 좋고, 몇 만원씩 잃으면, 그것이 일상다방사이며, 바깥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고독한 뭔가 영화적인 홍상수틱한, 그런 용감한 형제들이라는 칭호를 교황 성하에게 받고 싶은 전체주의.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나치 선동 구문 같은.
그러나 이것은 누적만 있던 때의 형이상학일 수 있다. 나찌즘을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독일 철학자가 독일에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독일 사람들이 스킨헤드족 같겠는가? 처음에는 스킨헤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이데거의 나치의 종북세력 같은, 군부독재의 낭만주의 같은 것이 있었다.
화이트헤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수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이력만 아는 것은, 내가 수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자위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능력 같은 탯줄을 잡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에덴 동산의 축출과 같다. 자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숱한 계단을 갖고 있다. 계단은 저 아래를 향해, 숱한 관념들과 개념들, 가치들, 기억들, 공동체 의식 같은 것들을 함께 끌고 나아간다. 우리가 고깃국을 좋아하는 것은, 고기도 부드러워서 맛있기도 하지만, 고기에 있는 영양분이 국물에 빠져나왔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과 실제가, 그릇의 모양과 일치한다.
공부를 잘하고, 대화가 이성적이며, 참고 인내하고, 상대방의 선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에게는 사실 성경은 불필요한 지 모른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수많은 하나님의 징벌을 보면서도, 타협하기를 거절했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있고, 반대급부로다가 이성주의의 화신 같은 생각도 든다. 다윗이 피난을 하다가, 부자와 만났을 때도 같은 양상이 벌어진다. 부자에게 사병들이 있어서, 날카롭게 대치했다는 것도 아니고, 사울의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마다 배치되어 있어서,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것도 아닌데, 부자는 다윗을 업수이 여기고, 그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가, 다윗이 그 모두를 죽이고자 하는데, 부자의 아내가 아름다운 말로써 남편을 설득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 다윗은 그 여인을 축복한다. 약간은, 독재자나, 지배계층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정신질환자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모세와 아론이 무서운 병장기를 갖고, 지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라 하는데, 버티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그 뒤를 졸졸졸 따라가서 마침내 모두 죽고 만다는 것은 강감찬 장군의 살수대첩처럼 뭔가 깔끔하지 않고, 해석이 불분명하며, 아무튼 자위를 멈추지 못하는 수학의 영역이 되는 셈인 것이다. 다윗을 박대하던 부자도, 가난하면, 말을 잘하고, 자위를 많이 할 것 같고, 움직임이 둔할 것이 분명한데, 여기까지 왔다는 심보였을 것이다. 아내가 다윗을 사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백낙청. 임마누엘 하나님처럼, 자위를 많이하건 안하건 하는 것은 우리 안에 먼저 아주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부자들과의 타박적 왕따적 연대의 힘을 과신함으로써, 파멸을 초래할 뻔한 것이다. 아내가 몇 명 있고, 자주 하지만, 아내를 동시에 두들겨 팼던 모양이다. 부자의 아내는 그래서, 성적인 불만에 피아노 연주처럼 솔직하고, 듣기에 분명하며, 주자학과 성리학을 두루 알고 있는 젊은 신학자에 미래를 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학적인 의미에서 망실은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학문이 수학이 되는 순간에는, 망실은 최종적으로 보고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 돈을 두고 많은 걸림돌을 경험하자, 산수나 수학도 못하게 되는 경향을 경험하였다. 둘이 관계가 있는지는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나 약간의 수학적 망실이 아우프헤붕의 차원에 있다는 것은, 이런 삶은 수학적인 측면에서는 따지고 보면 매우 객관적인 셈인 것이다.
이터널 오브엑트......
차라리 러시안 소년들처럼, 독재자를 피해, 관념의 왕국으로, 북극으로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는, 무조건, 언컨디셔널리, 나아가는 것이 차라리 나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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